엄마의 프로필 사진에 처음 보는 남자가 등장했다.

미스터트롯, 엄마를 '덕질'로 이끌다

by 민진킴

우리 엄마가 달라졌어요

- 미스터트롯에 푹 빠진 엄마와의 대화



# 영웅이 찾아서 노래 한 번 들어봐


엄마의 프로필사진에 처음 보는 남자가 등장했다. 열심히 하트를 하고 있는 이 남자. 엄마의 프로필 상태로 짐작컨데, 저 사람은 미스터트롯에 나오는 '임영웅'인가 보다. 도대체 저런 배경화면은 어디서 구했는지, 저런 배너는 또 어떻게 띄웠는지, 이제 나보다 더 카톡 사용을 잘하는 엄마의 프로필엔 '미스터트롯'의 흔적이 가득했다. 엄마는 간간히 연예인을 보며 '잘생기지 않았냐'며 묻곤 했지만, 저렇게 프로필 사진에 (가득) 띄울 만큼 열성적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엄마가 그저 신기했다.



엄마도 미스터트롯 보나?

다 봤지. 요즘 푹 빠졌다

ㅋㅋ 엄마도 빠진 줄 몰랐네. 문자투표도 했나 ㅋㅋ?

어. 당연하지. 영웅이 찾아서 노래 한 번 들어봐.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보랏빛 엽서랑 바램

ㅋㅋㅋㅋㅋ 알았다. 나중에 들어볼게



사실 나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별 관심이 없다. 한창 오디션 프로그램이 유행할 땐 꼬박꼬박 챙겨보기도 했지만 이제 그 포맷들이 다 식상하게 느껴져 별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심지어 '미스터트롯'은 주제가 '트롯'이지 않은가. 아직 트롯을 즐길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하여 더더욱 내 관심밖에 있었다.


하지만 연일 갱신되는 시청률을 보니 화제성이 엄청난 듯했다. 시청률이 30%나 된다니. 요즘 같은 시대에 말이 되는 시청률인가. 근데 웬걸. 엄마의 프로필 사진이 저렇게 바뀌고, 엄마가 저런 열성팬 모드로 들어선 걸 보니 시청률 30%가 무리는 아니겠구나 싶더라.




# 다들 어찌 그래 착한지 몰라


얼마 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택배 아저씬가- 하고 받아보았더니, 막내 숙모였다. 명절 때 인사를 주고받긴 하지만 숙모와 통화를 해 본 건 난생처음이었다.


엄마, 며칠 전에 막내 숙모한테 전화 왔었다?

숙모가 왜?

숙모가 나한테 '미스터트롯' 콘서트 티켓 예매 부탁하시더라. 내가 저번에 나훈아 티켓팅 해드렸었거든 ㅋㅋ 근데 그게 생각났나 봐. 세상에 막내 숙모한테 이런 전화를 받을 줄이야. 미스터트롯이 진짜 인기긴 한가보다. 엄마는 콘서트 관심 없어?

어. 나는 다 좋긴 한데 영웅이가 부르는 노래가 좋아서.

왜 다른 사람들은 별로야?

아니, 다른 애들도 좋지. 다들 어찌 그래 착한지 몰라.


로 시작된 말을 듣고 있자니 엄마에게 아들이 열명쯤 더 생긴 것 같았다.




# 영웅이는 노래를 진짜 내 스타일로 한다


그리고 며칠 전, 나에게 메일이 하나 왔다.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온 메일이었는데 5곡 정도 음원 결제가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엄마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쓰지 않아서 꼭 듣고 싶은 노래만 음원을 구매해서 듣는다.


엄마 얼마 전에 노래 샀어?

어. 영웅이 노래.

근데 미스터 트롯은 다 트로트 아냐? 엄마 트로트 좋아해?

전부 다 트로트는 아니고. 근데 영웅이는 노래를 진짜 내 스타일로 한다. 나는 그렇게 간드러지는 뽕짝은 별로 안 좋아하는데 얘는 참 노래를 잘해.


일 년에 몇 곡 살까 말까 한 엄마였는데 연이어 5곡을 사다니. (엄마의 프로필 사진으로 처음 뵙게 된) '임영웅'씨의 노래를 들어본 적은 없지만, 다른 트로트 가수들과 다르게 노래를 '담백하게' 불러내는 모양이었다. 엄마는 그것을 '내 스타일'이라고 표현하고 있었지만.




# 내가 영웅이 노래 들어보라 했잖아~


엄마가 저렇게 열성적인 팬이 된 이유에는 코로나가 제공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몫을 한 것 같았다.


엄마와 아빠는 주말부부이고, 나와 동생은 나와서 살고 있으니 엄마는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일주일에 한 번 보는 아빠도 못 보게 되었고, 가끔 본가에 들르던 나와 동생의 발도 꽁꽁 묶여버리니 엄마가 홀로 보내는 시간은 평소보다 더 많아진 것이다.



집에서 심심하겠다.

그렇지. 빨리 코로나가 잠잠해져야 되는데. 근데 니 저번에 내가 말한 노래 다 들어봤나?

무슨 노래?

내가 영웅이 노래 들어보라 했잖아~요즘 내가 영웅이 노래 듣는 맛에 지낸다

어우~ 알았다!



기승전영웅. 어째 새로운 형제가 생긴 기분이 듭니다? 임영웅 씨에 대해 하도 듣다 보니, 내적 친밀감이 샘솟을 지경이었다. 임영웅 씨에게 이렇게 심심한 나날에 엄마의 삶의 낙이 되어주어 고맙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이런 시국에 '미스터트롯'이 엄마의 심심함을 달래줄 수 있어 참 다행이다.




# PC방 아저씨한테 부탁해보까?


엄마가 저렇게 열성적으로 '영업'하는 것이 웃기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엄마가 누군가의 팬이 되어서 이렇게 들뜬 모습은 태어나서 처음 보았다. 내가 열심히 '덕질'하고 있는 모습이 엄마에게 그대로 보였다. 역시 덕질은 세대를 가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미스터 트롯의 콘서트 티켓팅 날 아침, 엄마에게 카톡이 왔다.


딸, 나도 티켓 예매해줘. 두 장.

ㅋㅋ뭐야 엄마 안 간다며. 마음이 바뀌셨나?

그냥 갑자기 보고 싶어 졌어~ 애들이 다 이뿌거든

근데 내가 회사라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잠깐 외출해라

외출을 어떻게 해 ㅋㅋ 엄마도 집에서 시도해봐 ㅋㅋ 아니면 엄마 피씨방 가. 집 앞에 거기 좋아.

아저씨한테 부탁해보까?

PC방 아저씨한테?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별생각을 다해보네


회사에 있는 딸에게 '잠깐 외출하라'며 단호박을 선사하는 모습이나, 'PC방 아저씨에게 부탁해볼까?'라고 묻는 모습이나 내가 알던 엄마가 맞나 싶었다. 정말로 '별 생각을 다해보는' 엄마가 너무 귀여웠다. 난 그냥 농담으로 PC방에 한 번 가보라고 말했는데, 농담에 진담 가득 섞어서 ‘PC방 아저씨에게 부탁할 생각’으로 맞받아치다니. 정말이지 단단히 빠진 것 같다. 엄마에게 꼭 티켓을 구해주고 싶었으나.. 전국 효자 효녀들의 티켓 전쟁에서 장렬히 전사하고 말았다. (다행히 티켓팅 만렙 동생께서 티켓을 구하셨다. 얘의 티켓팅 실력은 정말 상상 이상이다.) 엄마 나는 효도하려고 최선을 다했어.




#알어~ 조영수 김이나야


엄마의 반응이 귀여워서 자꾸만 임영웅 이야기를 꺼내게 된다. 실시간 검색어에 '임영웅 신곡' 떠 있길래, 엄마에게 알려주었다.


엄마 임영웅 씨 신곡 나왔나 봐.

알어~~ 조영수, 김이나야. 어. 1등 특전으로 조영수가 곡 써주기로 했거든


보통 내가 좋아하는 가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1을 물었지만 10을 대답하고 싶은 것이 팬의 마음 아니겠는가. 나는 단지 신곡 나왔다고 말했을 뿐인데, 얼떨결에 그 곡은 1등 특전 곡이며, 작곡가는 조영수, 작사가는 김이나인 것까지 알게 되었다.




#나중엔 없으면 못 사


일상적인 안부를 주고받다가 엄마는 대뜸 이렇게 물었다. "딸, 네이버 카페 쓰나?"

뭐지. 임영웅 이야기가 나올 것 같은 이 느낌적 느낌은.


응 쓰는데. 왜?

거기 미스터 트롯 카페가 있는데, 거기서 화보 패키지 신청을 한단다.

ㅋㅋ 그래서 신청해달라고?

어. 한번 알아봐. 영웅이 걸로.


역시 내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 역시나! 예상대로! 미스터트롯의 이야기였다.


엄마 근데 이거 판매는 4월에 된다는데?

어. 안다. 그래도 품절되기 전에 신청해놔. 나중엔 없으면 못 사. 신청해놔.

ㅋㅋㅋ알았어.


없어서 못 사면 안 되니까 꼭 신청해놓으라는 엄마. 엄마는 덕질의 기본을 알고 있다. 나중에 못 사는 건 지금 무조건 사야 한다.








얼마 전 친구들과 만나 이야기하던 중 ‘미스터트롯’의 이야기를 꺼냈다.


너네 부모님도 미스터트롯 좋아하셔?

야, 진짜 장난 아냐. 우리 엄마 생전 그런 말 안 하는데, 얼마 전에 나한테 콘서트 가고 싶다고 하더라. 우리 엄마는 영탁 씨가 좋대.

오~ 완전 아이돌 뺨치는 인기네. 우리 엄마는 임영웅 씨가 좋다던데.

근데 의외로 20대도 많이 보던데. 내 주위는 다 챙겨봤어. 나도 마지막엔 본방 봤고 ㅋㅋ 보다 보니까 재밌더라.

하긴. 내 주위도 보는 사람 꽤 있었어.


미스터트롯의 인기는 중년들에게 국한된 인기가 아니었다. 인스타그램을 보면 내 주위 사람들도 심심찮게 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미스터트롯을 좋아했다면 엄마와 함께 수다를 몇 시간이고 떨 수 있었을 텐데. 이번엔 나의 덕심이 이번엔 불타오르지 않았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 엄마와 함께하는 아주 특별하고 신기한 '덕질'을 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이번에 본가에 내려갈 땐 콘서트 꿀팁을 알려줘야겠다. 그리고 엄마의 덕질 이야기도 조금 더 들어봐야지.


아, 그전에 임영웅의 노래를 꼭 듣고 가야겠다.






+ 엄마의 새로운 에피소드

https://brunch.co.kr/@minzynkim/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