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웅 영상 보다가 새벽 2시 넘어서 잤다는 엄마
누군가의 팬이라면 으레 공감할만한 말들이지 않은가요. 이 모든 것을 우리 엄마가 하고 있었습니다. 임영웅을 향한 엄마의 팬심이 불타고 있어요.
오후 10시 45분,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느 때와 같은 안부전화인 줄 알았다. 보통 이런 늦은 시간엔 전화를 잘하지 않아서 조금 의아하긴 했지만.
응
딸 뭐해?
나 누워있어.
그렇나. 니가 어제 말한 김치랑 반찬이랑 택배 보냈다.
아~ 고마워~
고작 택배 보냈다고, 이 늦은 시간에 전화한 건 아닐 테고. 무슨 일이 있나 살짝 걱정했지만, 이내 이어지는 다음 말을 들으니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딸, 근데 유튜브에서 영상 다운은 어떻게 해? 다운로드 누르니까 자꾸 뭐가 막 뜨던데.
엥 다운로드?
어. 영웅이 영상 저장해서 한 번에 계속 보고 싶은데 유튜브는 막 새로운 게 뜨잖아. 나는 내가 저장한 것만 계속 나왔으면 좋겠는데.
엄마가 말하는 것은 기기에 저장하고자 하는 '다운로드'가 아니었다. 재생목록을 만들어서 원하는 영상을 한 번에 플레이하고 싶은 것 같았다. 보통 유튜브는 한 영상이 끝나면 자동으로 추천 영상이 뜨니까 말이다.
아~ 그거 '저장' 버튼 누르고 '나중에 볼 동영상'에 체크해놓으면 돼.
그럼 '새 재생목록'은 뭐야?
그건 재생목록을 여러 개 만들고 싶을 때. 엄마가 임영웅 말고 다른 사람이 좋아져서, 다른 사람 영상을 모아보고 싶을 수도 있잖아.
아~ 그럼 나는 안 만들어도 되겠다.
확신에 찬 대답이 너무 귀엽다. 나의 최애는 '임영웅'이라는 저 확실한 대답.
작년까지만 해도, 엄마는 유튜브를 거의 쓰지 않았다. 오히려 유튜브를 보는 건 아빠 쪽이었다. 저녁을 다 먹고 TV를 보는 대신, 유튜브에 들어가 올드팝을 듣는 아빠를 보며 엄마는 '아빠 요즘 유튜브 되게 자주 본다.'라고 말했다. 본인은 그렇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말한 지 일 년도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내게 전화해 재생목록 설정하는 법을 묻다니. 엄마가 유튜브의 세계로 입문하셨다. 이 모습이 참 재밌다.
그나저나 1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이런 사소한 일로 전화를 하다니. 유튜브가 어지간히 궁금했나 싶었는데, 이내 이어지는 말을 들으니 목적은 유튜브가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니는 TV 안보나?
우리 집에 TV 없잖아.
그래도 핸드폰으로 볼 수 있잖아.
보고 싶은 것 있으면 보는데, 요즘엔 딱히 없어서.
오늘 라디오 스타에 미스터트롯 애들 나온단다. 니도 심심하면 라디오스타 한번 봐 봐~
ㅋㅋㅋㅋㅋㅋ엄맠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사실 방송 전에 심심해서 니한테 전화했어~
그럼 그렇지. 보통 이렇게 늦은 시간에 전화할 엄마가 아닌데. 반찬을 택배로 보냈다거나, 유튜브의 재생목록을 물어보는 건 날이 밝고서 나에게 말해도 될 것들이었다. 이런 사소한 것으로 전화할 시간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결국 라디오스타 방송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심심해서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이었다.
어, 딸 이제 광고 끝났다. 방송 시작한다. 방송 끝날 때까지 카톡이나 전화하지 마라.
응ㅋㅋ알았엌ㅋㅋ 재밌게 봐.
어. 니도 방탄소년단 열심히 봐라.
우리는 그렇게 쿨하게 통화를 종료했다. 아니지, '우리'가 아닌 '엄마'가 '일방적으로' 통화를 종료했다. 글을 쓰면서도 자꾸 피식피식 웃음이 새나온다. 낮에 포털사이트의 연예면에서 미스터트롯의 출연진들이 라디오스타에 나온다는 기사를 얼핏 봤는데, 엄마가 이것까지 챙겨볼 줄이야.
내가 중학교 때, 그러니까 한창 빅뱅에 빠져있을 때 오빠들 나오는 예능 한 번 보겠다고 밤늦게까지 기다린 것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간간히 본가에 내려가 같이 예능 프로그램을 볼 때도 12시만 되면 잠 온다고 들어가서 자 버리던 사람이, '미스터트롯' 출연진을 정확하게는 임영웅을 보기 위해 두 눈 부릅뜨고 기다리다니.
날이 밝았고, 어제 방송은 어땠는지 궁금해서 내가 먼저 물었다.
어제 방송은 잘 봤어?
다시보기, 어제 출연기사~~~뭐 이런거 보고있다
ㅋㅋㅋㅋㅋㅋㅋ 유튜브 영상은 제대로 저장 잘했나?
어~ 잘 저장해서 어제 라스 다보고 쭉 한번 보다가 2시 넘어서 잤다~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더니. 엄마는 늦게 배운 덕질에 날 새는 줄 모르고 있었다. 속담 그대로 엄마는 진짜로 '날 새는 줄' 모르고 영상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50대 중반에 '입덕'해버린 엄마가 너무너무 귀엽다. 요즘 나의 사소한 행복은 엄마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다. 내일은 또 어떤 귀여운 에피소드로 날 웃겨줄지 기대된다.
[엄마는 덕질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