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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놀 Mar 03. 2022

첫눈이 돌아왔다

-영화 <첫눈이 사라졌다>를 보고-

첫눈이 돌아왔다

-영화 <첫눈이 사라졌다>를 보고-     



오래전엔 눈이 살았다     

흰, 그들은

차고, 따뜻했다

흰, 그들을 보면

반갑고, 행복해졌다

오랜 세월, 눈을 믿었던 사람들은

이제, 다시 눈은 내리지 않을 거라  

결론지었다   

  

푸른 숲에

검은, 눈이 내리고

검은 눈이 내린 날

특별한 능력을 얻은

한 소년은

자라

마을로 내려왔다  

   

그는 숨을 내쉴 때마다

몸을 가볍게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를 만난 사람들은 그의 손길에

몸이 가벼워지고

마음은 푸른 숲을 다녀와

힘을 얻고 행복해졌다

온 마을에서 그를 찾고

그에 의지하며

그를 질투하기도

사랑하기도 한다


어느 날

그는 마술처럼 사라진다     

마을에

눈이 내렸다

흰, 눈이

전설처럼 전해오던

흰, 눈이


첫눈이 돌아왔다



          


영화 첫눈이 사라졌다(Never Gonna Snow Again)는 77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노매드랜드’ 최고 경쟁작이다. 영화는 현실과 꿈의 경계가 모호하고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넘나 든다. 주인공 제니아는 체르노빌 인근의 우크라이나의 프리피야트 지역에 살았다. 방사능 누출 사고로 어머니를 잃고, 검은 먼지(방사능 낙진)를 검은 눈으로 알았던 소년은 슈퍼히어로가 되겠다고 외쳤다. 그가 어른이 되어 검은 숲에서 나와 폴란드 바르샤바의 고급 주택지에 들어서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어깨엔 간이침대를 메고 깊은 눈매와 미소를 잃지 않는 그는 물질적으로 풍족하나 고통받고 있고, 불행하며 정서적으로 소외된 그들을 치유한다. 마사지와 최면으로 치료를 하는 그는 “검은 시냇물이 발밑에서 흐르다가 몸과 머리를 통해 제 손으로 전달된다.”라고 말한다. 육체적 고통을 어루만져 몸에서 사라지게 하고, “숨을 내쉴 때마다 몸이 가벼워집니다. 먼지처럼”이라고 말하며  최면으로 그들의 정신적 치유를 돕는다. 마을 사람들은 그에게 매료된다. 그를 찾고, 사랑하고 질투한다. 그런 그들에게 제니아는 위안과 치유의 손길을 거두지 않는다. 그가 마사지와 최면을 통해 아픔을 소멸시킨 것처럼 크리스마스에 다시 눈이 내린다. 그리고 제니아는 사라진다. 이 영화의 감독은 “육체의 관계가 결국 영혼의 관계로 바뀌는 이야기를 표현하고자 했다.”라고 말했다. 마사지사 겸 최면술사가 세상을 구하는 영화의 맥락과 맞닿아 있다. 평론가에 말을 빌리면 제니아는 바르샤바에 온 예수다. 기적을 행하고 사라진 예수. 성서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으며, 지구온난화 기후위기의 임박한 재앙, 현대 사회와 유럽의 문제, 핵 공포 등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영화다. 나는 ‘눈’의 상징과 은유에 주목했다. 다시 돌아온 눈이 축복이 되기를 바란다. 절망 속에서도 버리지 말아야 할 희망, 간절함이다. 전쟁의 고통과 공포가 현실로 된 요즘에 내 마음에 들어온 ‘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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