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처음 글쓰기 수업

by 미르

평생학습관에 글쓰기 수업 신청을 했다.

16명 정원에 17번째로 신청을 하고

컴퓨터가 공정하게 추첨해 준다는 이야기에

기대를 조금만 했다.


컴퓨터, 너 아주 공정하구나.

합격이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

한 달에 두 번 하는 독서모임이랑

아쉽게도 시간이 겹친다.


10년 넘게 독서모임을 이끄는

시크한 멋쟁이 독서 회장님에게

글쓰기 수업에 당첨되고

시간이 겹친다고 고백했다.


아무 걱정 말고 마음껏 잘 다녀오라

인사를 해 준다.


참석한 지 1년이 넘은 독서 모임이다.

모임 초기의 혼란스러움이 사라지고

내게 맞는 옷처럼 편안해진 시간들.


아쉬움을 살짝 뿌려놓고 3개월 뒤에

다시 만나기로 했다.


난생처음으로 해보는 글쓰기 수업.

강좌의 제목은 <표현과 성찰을 위한 글쓰기>.

흥미롭다.


지금 나에게 적절하게 필요한 글쓰기 수업이다.


어제 첫 수업에 입고 갈 원피스를 고이 세탁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창문에 비가 살짝 흩뿌리고 있다.

아, 어디서 본 적이 있는데?

데자뷔 인가?


작년 이맘때 첫 독서모임의 상황이다.

나는 왜 첫 모임에 원피스를 입고 가고 싶을까?

우아한 50대를 아주 어필하고 싶었나?


내 안의 나.

나는 바뀌지 않는 것인가?

역사는 반복되는 것인가?


작년이랑 비슷한 상황이다.

원피스를 준비하는 나와 당일의 비.

어이가 없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다.


급히 베이지 바지와 화이트 블라우스로

대체했다.


출발.

어제는 33도의 여름,

오늘은 26도의 가을.

숨 쉴만한 착한 바람이 분다.


가로수들이 이어진 길을 걸어간다.

숲 속의 오솔길을 걷고 있는 것처럼

괜히 고개를 들어 나뭇잎들 얼굴 쳐다본다.

얼마 전에 본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주인공처럼.


보기만 해도 기쁨으로 물결치던 벚꽃 나무들은

벌써 갈색 나뭇잎들을 떨구는 중이다.


봄을 일찍 맞이하더니

가을도 일찍 느끼고 있다.

성급한 녀석들이다.


비교적 가까운 옆 동네에 위치한

평생학습관이다.


나의 산책이나 달리기의 종점 동네이지만

지금은 글쓰기 수업 가는 중이니 버스를 탔다.


버스에서 내려 어디로 가야 하나

방향을 점치고 있는데

나랑 같이 내린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우르르 몰려 간다.


같이 가 볼까?

조금 걷다가 이 방향이 맞나 싶어

앞에 가던 사람에게 길을 물어보니

자신도 글쓰기 수업에 가는 길이란다.


첫날 수업 전에 아는 얼굴이 생겼다.

내향인은 아주 기쁘다.


게다가 예전에

다른 글쓰기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

유경험자이다.


알고 보니

버스도 같은 곳에서 타고 왔다.


나중에 수업 시간에 이야기를 하다

알게 되었다.

나이도 나랑 같았다.


같은 동네, 같은 나이.

와, 이런 인연이 있구나.


유경험자 친구 덕분에

길 헤매지 않고 바로 교실로 들어갔다.


길 찾기 능력이 요즘 꽝이다.

원시시대에 살았다면

정처 없이 산속을 헤맬 각이다.

고마운 친구이다.


글쓰기 수업은

과연 어떤 수업을 하는 것일까?

기대감이 모락모락 퍼져 오른다.


첫 글쓰기 수업을 하러

교실로 입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