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글쓰기 선생님은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은
내 나이 또래의 여자분이다.
수업 중에 나이를 알게 되었다.
한강 작가님이랑 같은 나이에
한강 작가님처럼 국문학 전공이다.
처음에 작가님의 책을 읽고 엄청 놀랐다 한다.
동갑인데 이런 멋진 글을 쓰다니.
한강 작가님이 젊었을 때부터
많은 문학 생도의 기를 죽이고 다니셨구나.
노벨상 수상자의 위엄이군.
수강생들은
20~60대 정도의 여자들과 청일점 한 분.
용감하고 대단하시다.
열정이라 불러 마땅하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한다.
10년 넘게 시를 써서
몇 백 편의 시를 소장하고 있다는 예비 시인.
20년도 전에 쓴 일기장이 낡아 부스러져서
컴퓨터로 옮기고 있느라
글쓰기를 배우고 싶다는 사람.
그 일기장에 과연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얼마 쓰지 않은 나의 일기장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이제라도 일기를 한번 써 볼까?
무엇을 해야 하긴 하는데
무얼 할지 몰라 각종 수업을 듣고
여러 가지 자격증을 가진 사람.
나는 가끔씩 눈물을 흘린다로
대표되는 싸이월드 시대에
감성적인 글을 적으면 오히려 눈치가 보여서
글을 멀리했다는 전업주부.
저마다의 이유로 찾아온 글쓰기 수업이다.
첫 시간은
글쓰기에 대한 오리엔테이션 시간이다.
글을 쓰기 위해
우선 글이 무엇인가부터 시작한다.
글은 매개체이다.
나를 연결하기도 하고
세상을 연결하기도 하는 것이다.
글쓰기는 결국 삶과 연결되어 있다.
좋은 글이란
이해를 넘어 공감하며 행동으로 나서게 하고
결국 삶의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글이다.
그 글쓰기의 첫걸음은
'메모' 또는 '일기'로 시작한다.
"쓴다 그리고 쓴다"라고 말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계속 쓴다.
한 시간의 오리엔테이션이 이어지고
본격적인 글쓰기의 첫 수업 시간이다.
글이 어렵다면 단어부터 쓴다.
'여름'이라는 단어를 제시하고
떠오르는 단어들을 쭉 나열해 본다.
해변, 해운대, 수영, 휴가, 비행기, 여행, 설렘.....
그리고 자신들이 쓴 단어들을 발표하기.
수박을 비롯해서 과일 시리즈로 이어간 사람.
더위, 짜증으로 시작해서
에어컨 사랑으로 끝난 사람.
신기하다.
단어들만 읊었을 뿐인데 그 사람이 보이는 듯하다.
여름에 신나게 풍성한 여름 과일을 만끽한 사람.
길고도 긴 더위에 지친 사람.
단어만으로 이게 가능한 것인가?
살짝 가능한 듯하다.
다음은 '나'에 관한 단어 딱 3개를 쓴다.
역시 단어 3개로
그 사람의 성향과 인생이 얼핏 보이는
마법의 순간이다.
책과 글, 정직, 성실, 신의, 배려......
단어들이 마구 춤추는 바다였다.
그 바다들 위에 고고하게 떠있는
몇 개의 단어들이 흥미로웠다.
그 단어들 뒤에 숨은 이야기들이 궁금했다.
그중 하나는 '뱁새'.
자신이 보기에 다른 사람들은 다 황새,
자신은 그들을 따라가려는 뱁새.
이야기를 들어보니 20대의 젊은 아가씨는
지금 휴직 중이다.
자신의 상태와 마음을 잘 알고 나타낸 단어이다.
적절하고도 딱 들어맞는 표현이다.
단어 말하기도 힘들어하는 서툰 수강생들에게
그럴 수도 있다며
선생님은 다정한 격려를 보낸다.
아름다운 여배우 'O지현'에서
한 획이 빠지는 'O시현'이라고
자신을 부끄럽게 소개하는 수강생에게
"아이고, 한 획이라니!
정말 멋지다.
아마 많은 사람들은 O지현에서
4획, 5획, 6획,... 말도 못 하게
빠지는 구석이 많은데
1획밖에 빠지지 않으니 정말 다행이다.'라며
너스레를 떠는 선생님이다.
고운 마음이다.
다정하고 고운 마음을 가진 글쓰기 선생님과
함께 하는 8번의 수업.
벌써 다음 주 수업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