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수업의 숙제
글쓰기 수업의 숙제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오랜만에 받아 보는
숙제이다.
이런 약간의 강제성이
나를 발전시키는 시간이 될 것이다.
'~보았다, ~들었다,~하였다'로
시작되는 3줄 감상 일기 쓰기를 쓴다.
집에 뒹구는 아무 노트 말고
'아이 예뻐라' 느낌이 드는 노트를
직접 골라서 잘 나오는 펜으로 써 보기이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아이 예뻐' 노트를 하나 샀다.
얇디얇은 공책.
두꺼운 공책은 아직 부담스럽다.
화요일부터 시작해서
꼬박꼬박 성실하게 노트를 채운다.
생각해 보니 나는 상당히 성실하구나.
어렸을 때 학교에서 선생님이
모르는 단어 10개를 찾아
뜻풀이를 적어 오라고
숙제를 자주 내주셨다.
표준 전과에 나온,
내가 모르는 단어의 기다란 풀이를
정성스럽게 꼬박꼬박 적어 갔다.
어느 날, 짝꿍을 보니
긴 풀이를 쓰기가 귀찮아
길이가 짤막한 놈들로만 간단히
숙제를 해치우고
당당하게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 뒤로도 그 숙제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이런 꼬박꼬박 성실함.
이런 성향이
살아오면서 장점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자유롭지 못한 경직된 성향은
또 다른 내가 알지 못하는 어려운 상황 속으로
나를 들이밀게 만들었을 것이다.
어쩌겠나.
이것도 저것도 내가 만든 상황이다.
앞으로 꾸준히 성실하게
그러나 어느 정도 융통성을 가지고
잘 살아 봐야지.
화요일부터 금요일 밤까지의 기록이다.
노트 한 장을 가득 채웠다.
일부는 며칠간 소중한 글감이 되어
이미 천 자를 꽉 채운 글이 나왔다.
3줄짜리 감상 일기이다.
20250923 화요일.
영화 <인투 더 와일드>를 보았다.
'자신에게 향한 엄격한 도덕적 잣대'라는 말이
계속 기억에 남는다.
좀 더 자신에게 너그러워질 용기가
당신도 나도 필요하다.
20250924 수요일.
이슬아 작가의 책 <가녀장의 시대>를 보았다.
발칙하고 유쾌하고 아주 통쾌하다.
이 젊은 작가를 좋아할 듯하다.
20250925 목요일.
대형 마트에서 갈색의 기다란 인조 모피 코트를 보았다.
입고 산에 가면 곰으로 오인받아 총 맞을 듯하다.
영화 <나니아 연대기>의 도입부가 생각이 났다.
20250926 금요일.
솜뭉치를 잘게 잘게 뜯어
규칙적으로 뿌려 놓은 듯한
보송보송한 구름을 가진
하늘을 보았다.
구름 속에 들어간다면 어떤 기분일까?
한없이 밝아 보이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슬픈 북소리가 있듯이
폭신하게만 보이는 구름 속에도
축축한 기운이 있겠지.
쓰다 보니
더 길게 길게 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지금은 3줄이지만
아마 좀 더 익숙해지면
나의 마음을 더 길게 적절하게
풀어놓을 수 있을 것이다.
일상에서 글감을 찾고
3줄로 감상 일기를 쓴다.
이렇게 숙제를 한다.
꼬박꼬박 성실함.
이런 성실함이
반드시 반짝반짝 재치 있는 문장으로
연결되리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이렇게 쓰다 보면
짧은 문장이라도
그 반짝임을 조금이나마
나타낼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