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감을 찾고 글을 쓰기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글쓰기의 방법 중의
하나는 '묘사'이다.
어떤 대상을
마치 보이는 것처럼, 만져지는 것처럼,
사진을 찍는 듯이, 영상을 보는 것처럼
글을 써라.
선생님께서
흑백 인물 사진 2장을 보여 준다.
그 인물에 대한 배경지식을 배제하고
사람의 겉모습을 글로 그림을 그리듯
자세히 써 보기로 한다.
배우 윤여정 님을 선택했다.
비교적 고르게 잘 물든 흰머리와
눈가와 입가의 주름살을 쓰고 나니
쓸 말이 없었다.
평소 책을 읽을 때의
나의 습관이 떠올랐다.
스토리에 치중하며
빠른 전개를 선호한다.
묘사가 나오면
대강 휘리릭 읽어 치우고 만다.
아무래도 관심이 있는 것은
스토리이다.
배경 묘사나 인물 묘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묘사'적 글쓰기가 힘들었다.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막혀 버렸다.
그리고 그 막힌 장벽을 뚫고
배우의 일생이 머릿속을 지나쳐 갔다.
안 돼.
아직 네가 나올 차례 아냐.
들어가.
지금은 묘사의 시간이야.
최대한 감정을 넣지 않으려 애를 쓰며
묘사를 이어간다.
그런데 그 사진을 보는 나의 마음이
쬐끔 들어가 버린다.
이런, 이건 묘사가 아닌데?
글쓰기의 시간이 끝나고 발표의 시간.
한 수강생이 손을 번쩍 들어
먼저 발표를 한다.
묘사의 정석이라 할 만한 모범 사례가
나온다.
자신의 감정은 쏙 뺀 채
윤여정이라는 배우가 아닌
사진으로 만나는 나이 먹은 한 사람의
얼굴이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윤여정의 배우라는 아우라에 굴복했다.
나처럼 묘사를 하다가
그녀의 일생으로 넘어간 사람들이 많다.
이런 이런.
1차는 보이는 그대로 묘사.
2차로는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은 특징을 잡아서
글을 쓰는 것이 가능하다.
의미를 더 잘 전달하고 강조한다.
2차로 가기 전에 선행되어야 할 것이
1차의 보이는 그대로 묘사이다.
나에게는 1차 묘사가 어려웠다.
글을 오래 쓴 사람들에게
나타날 수 있는 습관이라 한다.
자신의 머릿속의 말이, 감정이
그대로 막 튀어나오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사실을 바로 뛰어넘어
감정과 느낌의 세계로
바로 진입하는 사람들이다.
바로 나.
1차 묘사의 세계에 좀 더 머무르기로 한다.
마음을 가다듬고
사진 2장 중 다른 한 장의 사진 묘사를
찬찬히 해 본다.
배경지식은 빼고
묘사만 하기로 해 본다.
한 청년이 활짝 웃고 있다.
길쭉한 얼굴에 전체적으로 살이 없어
웃느라 올라간 광대가 도드라진다.
움푹 들어간 보조개도 보인다.
눈썹은 어쩐 일인지 짝짝이이다.
왼쪽은 진하고
오른쪽은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연하다.
쌍꺼풀이 없는 눈이 웃느라
옆으로 기다랗게 늘어났다.
입을 역삼각형으로 벌리고 웃고 있다.
함박웃음을 짓느라
삐뚤삐뚤한 커다란 윗니가 보인다.
당나귀 귀인지 요정 귀인지
귀가 커다랗고 불쑥 솟아나 있다.
머리에 무언가를 발라서
가르마를 타고 옆으로 빗어 넘겼다.
하지만 머리카락은
머리통에 찰싹 붙지 않고
가운데 부분이 봉긋 솟아올라 있다.
하얀 셔츠에 연한 색의 넥타이를 하고
짙은 정장을 입고 있다.
이 청년은 32살의 이봉창이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 왕에게 폭탄을 던진 의사 이봉창.
많은 의사들이 거사 전날
잘 차려입고 사진을 찍었다.
그중 유일하게 이를 온통 드러내고
활짝 웃는 사진을 남겼다.
사진의 아래쪽 양손에는
수류탄을 든 채로.
"이제 영원한 쾌락을 즐기러 가는 길".
웃지 않을 수가 없다.
의사 이봉창의 사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