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이라는 이야기를 전날 저녁에 들었다. 하지만 오전인지 오후인지 명확하게 말을 해 주지 않는다. 병원의 많은 일들이 그런 면이 있다. 확정적인 시간을 말해 줬다가 혹시라도 그 시간을 지키지 못하면 항의가 들어올 것을 위한 대비인 것인지 두리뭉실하게 말을 해 두는 느낌이다. 사람의 일이란 어찌 될지 모르니.
새벽 4시에 땀에 흠뻑 젖은 채로 일어났다. 수술 후의 열감, 병실의 온도 등 복합적인 이유이리라. 두터운 면 재질의 환자복의 축축한 기운이 금세 차가워진다. 오늘이 퇴원이니 옷을 갈아입을까 말까 고민을 했다. 오전이 퇴원이면 갈아입지 말까? 오후라면 갈아입고 싶은데. 세수를 하고 오는 길에 간호사 스테이션 앞의 환자복 서랍장을 열었다. 소중대. 크기별로 준비되어 있는 환자복들이 있었다. '소'를 할까 '중'을 할까 잠시 고민하다 '소'를 선택했다.
며칠 전, 수술하고 난 뒤 플라스틱 단추 없이 끈으로만 여밀 수 있었던 수술복을 환자복으로 갈아입었다. 살살 벗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기다란 링거 줄과 커다란 링거액 주머니가 문제였다. '이것들은 나의 팔의 연장이다.' 이렇게 세뇌를 하고 옷 갈아입기를 시도했다. 분명 그렇게 생각하고 링거 주머니를 넣었는데 링거 줄이 반대로 되어 버렸다. 이번에는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도전. 퇴원 날이라 반쯤 비어버려 부피가 작아진 링거액 주머니를 손에 바로 들고 겨드랑이에서 소매 쪽으로 무사히 나가 링거 다는 고리에 안착. 역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그 뒤의 과정은 스무드하게 진행된다.
편한 마음으로 휴게실에 들어가서 평소에 보지 않던 세계의 뉴스도 보고 퇴원을 앞둔 마지막의 기념으로 사람 없는 아침의 병동 사진을 찍었다.
진동으로 놔둔 휴대폰의 붕붕거린다. 지역번호 051. 평소에 모르는 번호는 가볍게 무시한다. 하지만 여기는 병원. 받아 봐야 한다. 아니나 다를까 간호사실이다. 간호사실 근처에 있어서 바로 갈 수 있었다. 혈압과 체온을 쟀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 '오늘 퇴원이시죠? 링거 지금 빼드릴게요.' 오, 링거를 뺀다.
링거를 빼니 기다란 선으로 각종 영양과 약을 공급받는 제약 있는 인간에서 가볍게 날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된 듯하다. 아침을 먹고 성형외과로 가서 마지막 드레싱을 했다. '귀 한쪽을 테이프로 꽁꽁 매매 붙여주겠어.'라는 듯한 일념을 가진 듯한 선생님이 귀에 테이프를 붙이고 또 붙여 주신다. 미라 같은 머리의 붕대는 생략이다. 그리고 일주일 뒤 실밥을 빼는 시간을 예약해 준다. 이로써 병원의 처치는 다 끝났다.
이제는 기다림의 시간. 간호사실에서 2주일치 약을 받아 들고 기나긴 설명을 들었다. 원무과에서 연락이 오기를 기다린다. 11시쯤 드디어 연락이 왔다. 정산이다. 구멍의 마무리를 한다. 퇴원이다.
내게 있던 오래된 구멍 하나를 없앴다. 이 구멍이 사라지면서 모든 걱정이 사라질 것은 아니다. 아직도 살아야 할 날들 어느 순간에 예상치 못한 구멍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러면 또 그 구멍을 없애기 위해 노력해야겠지. 그 과정들은 아마도 지금처럼 혹은 지금보다 더 힘들지도 모르지. 그럼에도 그런 과정들을 겪어 내어야지. 그렇게 살아가야지.
<나의 구멍> 이야기를 마칩니다.
퇴원하고 일주일 뒤에 실밥을 제거했습니다. 그 뒤 수술 흉터는 잘 아물었습니다. 여전사와 래퍼 스타일의 왼쪽 귀 주변의 짧은 머리카락은 긴 머리카락에 숨겨서 잘 기르고 있는 중입니다.
긴 이야기를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