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삼시 세끼

by 미르

수술 후 깊은 잠을 자지 못했다. 진통제 덕분인지 아프지는 않았다. 하지만 불편했다. 왼쪽 귀에 커다란 헤드폰 동그라미 같은 거즈와 이를 고정시키기 위해 머리통 전체에 휘감아 놓은 붕대, 그리고 코에 꼽은 산소줄이 불편했다. 쉬이익 쉬이익 산소가 공급되는 소리. 낮과는 다르게 나의 귀에 커다랗게 들리는 소음이 머릿속을 계속 흔들었다. 계속 끼고 있으라는 산소줄을 살짝 빼고 한 두어 시간 눈을 겨우 붙이면 아침이 되었다.


첫날 저녁의 충격적이게 맛이 없었던 잡채덮밥 이후로 받은 밥상들은 인기가 수직 상승하고 있다. 오늘의 아침상은 양반의 상이라 해야 할 것이다.



12월 25일이다. 로비의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들은 반짝이는데 병원은 별다른 일이 없다. 빨간 날이 아닌가? 손님들, 고객들, 환자들이 없는 빨간 날이다. 의사 선생님들도 쉬는 날인 줄 알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빨간 날을 가리지 않고 아프다. 외래 진료만 중단되었을 뿐 입원 환자들을 위한 처치가 남아 있었다.


아침을 먹고 나서 성형외과로 드레싱을 하러 갔다. 이동 침대에 누워서 처치를 받으러 온 환자가 나오고 처치실로 들어갔다. 아이돌을 닮은 의사 선생님이 드레싱을 해주었다. 절개 부위 3cm. 사진을 찍어 보여 준다. 귓구멍 경계선을 따라 머리카락보다 가는 매끈한 실로 11방이나 촘촘히 꿰매져 있었다. 교묘한 절개선 선정과 절묘한 꿰맴이다. 다 나으면 흉터가 별로 보이지도 않을 곳이다. 잘 꿰매지고 잘 나아가고 있다고 한다. 고마운 말씀이다.


드레싱을 하고 나서 한쪽 눈을 짓누르며 사선으로 매어진 붕대를 단발 앞머리 스타일로 감아 주었다. 이것만으로 좀 더 멀쩡한 인간이 된 듯하다. 심지어 살짝 안면 거상이 된 것 같아 숨어 있던 쌍꺼풀이 또렷하게 보인다. 30년도 훨씬 전에 의느님께서 만들어 주신 쌍꺼풀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러워지고 작아지고 작아져서 나 쌍꺼풀 있어요 하고 말하기 전에는 보이지도 않은데 이런 예쁜 쌍꺼풀이 보이다니. 이런 신나는 일이. 머리통 붕대에 이런 장점이 있었네. 밖에서 계속 감고 다닐 수도 없고 아쉽구나. 병원에서 잠시의 쌍꺼풀을 보고 즐거워하기로 하자.


커진 쌍꺼풀과 함께 가벼운 마음으로 병실로 돌아오니 벌써 점심시간이 되었다. 별다른 한 일도 없는데 점심이다. 입원의 시간은 바깥과는 또 다른 흐름으로 흘러간다. 경건한 마음으로 넷플릭스의 영화를 신중하게 선택하고 최적의 각도를 잡아 휴대폰을 세팅한다. 밥 메이트 넷플릭스와의 즐거운 시간이다.



오후의 시간은 부드럽고 조용하고 나른하게 지나간다. 휴게실도 다녀오고 잠시 침대에서 졸기도 한다. 침대의 위쪽을 지이잉 들어 올려 아래쪽의 밥상 겸 책상 위에서 영화를 보기도 하고 시를 읽기도 한다. 종이 뒷면에 글을 아무렇게나 쓰기도 한다. (그때 괴발개발 갈겨쓴 글을 찾아 읽으며 이 글을 쓴다. 아무렇게라도 써 놓기를 잘했다.)


사람의 마음은 신비로운 방식으로 움직인다. 입원을 하고 나서는 통증, 열감 그리고 식사에 관심이 집중된다. 바깥의 많은 일들과 뚝 떨어진 느낌이다. 병동의 문을 열고 나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면 바로 현실과 연결되는데 몸에 달린 주렁주렁한 링거의 선들이 마음의 경계선을 그어 버리는 듯하다.


저녁 식사가 왔다. 점차 식사가 업그레이드되고 있는 중이다. 병원의 삼시 세끼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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