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함의 여러 결
독일어를 배운지 꽤 됐지만 여전히 실수를 하고, 말을 하는 중간 중간 단어가 생각 나지 않아서 답답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내 말실수를 보고 얕잡아볼 것 같아요. 독일어를 하는 게 언제쯤이나 좀 편안해져서 모국어 수준으로 유창해질 수 있을까요?
다니던 (멀쩡한) 독일어 학원에서 (기꺼이) 퇴사하고 프리랜서 1:1 독일어 코치/강사가 되고 나서, 수강생들에게 레벨과 국적을 막론하고 가장 많이 듣게 되는 그들의 문제, 고민이자 수강 동기이다. 지난회에서도 자세히 밝혀 썼지만 수강생 개개인이 처한 마음 가짐에 따라 이 고민의 깊이와 아픔은 각각 다르다. 당연히 나도 이들의 고민과 바램 모두를 이해하고도 남는다. 한때, 나 역시 피해갈 수 없었던 바램이자 고민이었다.
모든 진화의 과정이 현상태에 대한 생산적인 문제적 진단에서 출발한다는 것 역시 당연하다. 다만, 이 고민을 바라보는 나 자신의 시선과 자세, 그리고 '유창한 말'에 대한 나의 생각이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배우는 사람에서 가르치는 사람으로 내 역할이 바뀌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백이면 백, 거의 모든 수강생들이 토로하는 저 '문제적 상황들'에 대한 나의 접근방식과 마음 가짐 자체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유창 유감
유창한 말들이 도처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이 들려온다. 미리 반듯하게 준비되고 정교하게 빈틈없이 채워져 말의 최종 결과만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달성해내려는 한 치의 결함 없이 미끌미끌한 말들. 일국의 검찰총장이 범법행위를 무릅쓰고라도 위헌 소지를 운운하며 내란수괴 피의자 신분의 단 한 사람을 석방하기 위해 준비해 했었던 말들이 대표적인 경우다. 헌법을 파괴하는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국민 헌법수호 당부에 관한 말은 또 어떠했나.
이들 말의 유창함 앞에서 나는 어떤 끔찍함을 느낀다. 이들의 달변은 듣는 이와 말하는 이 사이에서 오고 가는, 서로에게 스며드는 의사소통의 '과정의 말'이 아니다. 이 유려함의 배경에는 스스로를 요새화하고 정당화시키는 일방적 의도가 숨어있기 마련이다. 이 모든 과정으로서가 아닌, 일방통행의 '결과로서의 말'들을 나는 반사적으로 불신하며 본능적인 반감을 갖는다.
연단 위의 히틀러의 말에서도, 항공기 기내 안내방송에서도, 미리 써 놓은 대로 줄줄 읽어내려가는 데 그치는 발표보고도, 이들의 수려함이 주는 지리멸렬함과 파렴치함은 정도의 차이만 있지 본질은 같다. 이들의 말은 전시되어야 할 결과일 뿐, 발화 과정 속에서 듣는 이인 나를 진지한 고려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때문에 듣는 이인 나를 애초부터 동등한 대화 상대로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때문에 나는 독일어를 배워 유창해 지고 싶다는 내 수강생들에게 진심으로 묻는다. 독일어를 잘한다는 게 당신에겐 실제로 어떤 의미인가요. 왜, 유창해 지고 싶은가요. 왜, 실수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나요. 배우는 와중의 외국어를 하면서, 실수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은 얼마나 스스로에게 가혹한 일인지도 수강생들 스스로도 잘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들의 독일어는 '말의 과정' 안에서 실수가 있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인데 왜 실수 없이 유창한 '말의 결과'를 목표를 삼아 스스로를 괴롭게 만드는가가 내 물음의 요지다.
실수 없는 말
외국어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유창함이라는 자신의 목표가 당연한 것이라고 스스로 믿고 있는 바가 너무 큰 나머지 나의 반문과 문제의식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수강생들도 물론 있다. 이분들껜 이해를 돕기 위해서 아주 쉬운 숙제를 내 드린다.
밖으로 나가 지하철, 버스, 길거리, 슈퍼마켓 그 어디서든 독일어가 모국어인 것으로 보이는 이들의 대화를 귀담아 들어보라는 것이다. 그들이 정말 '실수 없이', '막힘 없이' 말을 하는지. 실수를 했다면 그들은 그때 어떻게 하는지. 수강생 본인처럼 자신의 실수에 대해 부끄러워하며 심지어 몇날 몇일이고 이후에도 스트레스를 받는지, 누군가 자신을 얕잡아 볼까봐 전전긍긍하는지.
우리 모두가 실은 말을 하는 일상적인 '과정'에서 심지어 우리의 모국어로도 이른바 크고 작은 '말 실수'를 한다. 문법적 실수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마땅한 단어를 고르느라 뜸을 들이기도 하고, 한사코 특정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띄엄띄엄 말해야 하는 때를 겪는다. 더 나아가 우리는 이것은 딱히 '실수'로도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들을 언어가 갖는 과정으로서의 면모에 당연히 포함되는 것이라고 대개는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실수를 포함한 유창함
그런데 유독 당신은 모국어도 아닌, 외국어인 독일어를 하면서 갑자기 독일어자동번역기로 진화라도 한 듯 실수 없이 말하고 싶어지니 문제다. AI가 아닌 이상 사람은 말하면서 실수를 하고, 자신의 문장을 고치며 더 잘 이해받기 위해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다른 단어로 반복하기도 한다. 이것이 과정으로서의 말하기이다. 상대와 공동의 이해에 함께 도달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과정인 것이다.
물론, 자신의 실수를 실수로 알아채 인식할 수 있는 분별력이 당신의 진짜 독일어 실력이다. 당신이 어떤 실수를 하고 있는지 모르고 실수를 하는 것이 당신이 독일어를 더 배워야 하는 유일한 이유다. 실수했다고 알아챘으면 실수했음을 알고 자연스럽게 고쳐 이어 말하거나, 상대방에게 도움을 청해서라도 이해의 과정을 양방의 소통의 과정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진짜 유창함이다.
독일어가 제 2모국어가 되기까지
5년이면 될까요. 10년이 지나면 될까요. 대체 독일어 공부는 언제까지 해야 좀 편해질까요. 이 역시 많은 수강생들이 자조적으로 내게 묻는 질문 중 하나다. 두 번도 생각 안하고, 핀잔을 들을 각오 끝에 나는 늘 똑같이 답한다. "당신이 독일어를 외국어로 삼아 독일어를 하며 지내는 마지막 날까지 배움은 끝나지 않을 것이고, 끝나서도 안됩니다. 외국어인 독일어 뿐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모국어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 흔하디 흔한 '사랑'이라는 단어 하나만을 예로 들어보자. 대독어사전, 대국어사전에 기록된 낱말의 정의와는 별개로, 당신이 스스로 정의하는 이 단어의 의미는 당신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변하고, 또 변해야 한다. 사는 것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며 써왔던 말들은 물론이고, 우리가 특정한 단어로 이름붙여 사유화하고 공고하게 만들어버렸던, 이름 없이도 존재해는 수 많은 관계들을 끊임없이 의심하며 재구성하는 것이어야 한다.
어떤 한 언어를 특정한 시기에 완성될 것이라 믿지 않고 끊임없이 깨어서 벼려가며 할 수 있는 것은 사실, 외국어로 삶을 영위하는 일이 주는 선물같은 일이다. 언제라도 말의 가능한 한계에 맞딱뜨릴 수 있다는 사실과 함께 사는 것은 어떤 겸허함을 필요로 하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하는 말의 한계에서 느껴질 존재의 진공이 주는 두려움은 어쩌면 어떤 놀라운 더 큰 자유로움을 선사할지도 모를 일이다. 말할 수 있는 것만이 진실이 아니듯. 물론, 어떤 유창함을 선택할 것인가는 언제나 그렇듯 당신 스스로의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