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진정 나이듦을 받아들이는가
있잖아 12월이면 내가 꼽는게 있어. 햇수를 세는거지. 3년 전 나는 12월 마지막 머리염색을 한 이후 여태 안하고 있거든. 그러니까 염색중단 석삼년이란 말이지. 때때로 해야하는게 귀찮았고 두피의 자극이 느껴졌고 환경문제가 걸려서 결심했었지. 처음 시작할 땐 한 2년이면 '완성'될 줄 알았어. 완성이 뭐냐구? 완전 변신 말이지. 좋든 싫든 완전 옮겨갈 줄 알았단 말이야. 머리염색 분야에도 그 몹씁 저주가 적용되더만. 남들은 예상대로 순조롭게 착착 잘만 진행되는데 그들과 달리 나는 생각같지 않게 지지부진한거 말이야. 젠장.
감추려고 할 때는 두피 가까이에서 빼꼼이 모습을 드러내도 철렁하고 크게 보이는데 아예 나올테면 얼마든지 나와봐라 너희들 세상이다 하고 문을 활짝 열어두니 이것들이 그러지도 못하는지 영 생각같지 않단 말이지. 그니까 어쨌다는 거냐고? 결론은 여전히 어정쩡이란 말이야. 그리고 이게 흰머리와 기존 머리가 고르게 분포되지도 않아요. 젠장.
며칠 전에는 은행에 가야했어. 캐나다엔 한국처럼 종이로 된 통장이 존재하질 않거든. 난 이게 좀 이해가 안되는데, 캐나다가 뭐든 앞서가는 데가 아니예요. 근데 이것만은 완전 온라인화를 했다고? 웁스~ 본의 아니게 캐나다를 깠나 내가? 하하하 암튼 말이지. 몇 달 전 통장내역을 확인할게 있는데 온라인에선 기간이 한정되어 있어서 창구에 가서 얼마간의 기간동안의 사용내역을 프린트 해달라고 했어.
기냥 받아들고 와서 집에와서 펼쳐봤다? 근데 디따 큰 폰트로 프린트 해준그야. 왜 그거 있잖아 '어르신'용. 충격을 좀 받았지. 약병같은데 붙어있는 성분표시는 못읽어도 일상의 글자를 못읽는건 아닌데... 은행 창구에 있는 직원은 나름 판단을 했겠지. 머리가 희끗희끗한 분이 보려면 이 정도는 돼야겠다고 말이야.
다음날은 뭘 살게 있어서 나가는데 어제의 그 원치않는 '어르신' 대접이 생각났어. 잠깐의 외출이 될텐데 굳이 꽃단장을 하고싶지 않았지만 하기로 했어. 한국에서는 아줌마들이 집앞 수퍼에만 가도 화장을 한다고 하더라? 그게 얼마나 부지런하고 단정한 자기관리의 자세인지 잘 알지. 남의 눈을 의식해서만은 아니라고 보던 사람인데 나도 꾸역꾸역 그러게 됐지 모야.
필요했던 물건을 들고 계산대 앞에 섰어. 그런데 점원이 묻는그야. 'senior discount' 카드가 있냐고. 오메 그게 뭐여 시방. 어르신용 폰트를 넘어 '경로우대 할인'을 묻고 있네 이 청년이! 오늘은 얼굴도 좀 매만지고 왔구만!! 그래도 안되는거? 아... 나 그렇게 늙어보이나? 동양인은 나이를 짐작못한다고 하잖아. 맞다구 그것도. 그런데 왜 갑자기? 억울했어. 부당하다고도 느껴졌어. 그들이 야속하다고도 느꼈고. 이게 다 이 뷰티의 한 영역인 염색의 은혜를 받지 못한 나의 자연그대로의 머리털 때문이다! 라는 깨달음이 강타했지.
집에와서 애들에게 이틀간의 에피소드를 막 얘기했다? 어쩜 그럴 수 있냐는듯이. 그리고 마치 스스로의 진정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자의 처량함을 어필하려 애쓰면서. 그랬더니 애들은 내 기대와는 다르게 시크하게 그러는그야. "그러려는거 아니었어?" 그거 감수한거 아니었느냐는 사실에 입각한 지적이 나를 부끄럽게 했어. 아 이것들이 사정없이 돌직구를 날리구 있네. 아 그렇네, 흰머리를 굳이 감추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뭘 바란건가... 알고보면 너네들이 잘못 보는 것처럼 그리 젊지는 안단다 하면서 커밍아웃하듯 머리를 내보이기로 했으면서도 나를 늙게 보지는 말아라? 푸핫. 내 안에 있는 순 지맘대로의 모순을 발견한그야.
흰머리는 인종 막론하고 인류 보편인 현상이더라고. 검은머리나 금발이나 흑인특유의 곱슬머리나. 그런데 나이를 짐작키 어려운 동양인 외모에도 흰머리를 장착하고 있으면 그들 입장에선 그걸 어떻게 봐야겠느냐고. 참 나. 흔히 나이듦을 받아들인다 라고 하잖아.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진짜 제대로 받아들이는 마음자세는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됐어. 거기다 나의 엄청난 착각도 깨달았지. 언젠가 무슨 유투브 동영상에 넙데데한 평범한 아저씨가 미용사에게 그랬어. 조지 클루니같이 하고 싶다고. 그니까 더이상 염색을 안하고 흰머리를 길러가면서 조지 클루니같이 흰머리 스타일을 하고 싶단거지. 난 그때 무례하게스리 뿜어버렸어. 두상과 얼굴의 판형, 그리고 이목구비의 레이아웃이 전혀 다른 조건에서 조지 클루니를 꿈꾼다? 언감생심, 어불성설, 노 웨이~, 히도이 데쓰요~.
그런데 영상의 그 아저씨보다 더 웃기는 건 누군지 알아? 나야 나. 왜냐하면 염색중단을 결심하면서 고무되었던 사람들은 죄다 남자였다는 것을 깨달았어. 왜냐하면 남자가 더 많잖아. 난 유명인이든 일반인이든 봐, 나름 흰머리도 멋지네 뭐. 하면서 스스로를 부추겼었지. 이게 말이지. 착각이 불러온 어마무지한 오류의 늪에 풍덩 빠지는 행위였던그야. 남자는, 아니 어떤 남자들은 흰머리를 하고 있으면 그게 곧 연륜이요 중후함이 될 수도 있어. 그런데 여자에게도 그럴까 과연?
암튼, 나는 내 안의 이 모순을 해결해야 해. 흰머리를 감추고 싶지 않으면서, 아니 정확히는 그런 수고를 피하고자 하면서, 늙게는 보이고 싶지않은 이 양립불가능한 욕망말야. 나 진정으로 나이듦을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숙고부터. 나이듦을 받아들인다 아니다는 것의 진짜 뿌리는 나이든 것이 '보이는' 것을 못 받아들이는 거 아닐까. 남들로 하여금 얼핏보아 내가 조금이라도 젊은 것으로 착각하게 하는 것을 완전히 포기하기 어려운 거지.
'젊어 보이는' 것보다 나이든 것이 있는 그대로 보이는 것에 아무런 내면의 갈등을 겪지 않는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고 살짝 연로한 이 연사 두 주먹 불끈 쥐고 소리높여 외칩니돠아~~~~~.
'젊어 보이는'게 아니고 진짜 나 젊었을 적 유행했던 김완선의 노래 가락이 내 입에서 흘러나오네.
이젠 늙기로 해요~
이젠 늙어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