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한반도의 지구 반대쪽에서 있어도 소식은 대략 다 알 수 있는 혜택받은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모르기로 작심 -가끔 시도하는 일이다-하고 외면하지 않으면 시간차를 길게 두지 않고도 한반도 남녘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대부분 알 수 있다. 대략 갖는 느낌은 참 '열풍'이 많다는 것.
언젠가부터 왠 트로트가 이리 떠들썩한가 싶게 온통 트로트 열풍이더니 이게 무엇인지 남몰래 찾아봐서 알아야 했던 탕후루 열풍, 그러더니 테니스가 열풍이라고 했다. 딱 그 무렵이었던 3년 전 한국에 방문했을 때 한 만남의 자리에 참석하게 됐다. 한 사람이 늦게 오면서 테니스를 치고 왔다고 하길래 나는 무심코 '테니스를 치시냐, 요즘 테니스가 유행이라더니 정말 그런가보다.' 고 이야기를 건넸다. 그랬더니 그는 30년 됐다고 했다. 결례였다고 생각이 든 것은 시간이 지나서였다.
한때는 가상화폐가 열풍이라고 불어닥쳤고 언제는 인문학 열풍이 분 적도 있지 않나. 잠깐 에스프레소 커피 열풍도 목격한 것 같다. 그런가하면 갑자기 왠 빵 타령인가 싶게 빵 이야기가 많았다. 한참 맨발로 걷는가 하더니 곧 달리기 열풍이 거세다고 들려온다. 의대가 열풍아닌 돌풍이 불어 아직 가라앉지 않은 상태인 것 같고.
얼마 전부터는 필사가 유행인가 보다. 인터넷 서점을 둘러보면 필사하는 책이 부쩍 눈에 띈다.
요즘 부는 열풍은 단연 지브리. 일단 기사로 접하면서 아, 그런가 하면 곧 여기저기서 프로필 사진이나 본인이 쓰는 글에 삽입된 이미지들이 많이 눈에 띄기 시작하면서 실감이 난다. 아, 열풍...
평소 캐리커처 등에 관심이 많았던터라 지브리 풍으로 변환한 이미지가 재밌기는 하다. 그런데 '모욕적'이라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소회를 접하고부터는 괜히 내 마음도 편치 않다.
탕후루처럼 오히려 지속하면 해로운 것은 그냥 열풍처럼 지나가버리는 것이 나은 것도 있지만 인문학 열풍이나 지난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때처럼 출판 시장에 반짝 훈풍이 분 김에 열풍이 아니라 은근히 지속되면 좋을 것들이 있지 않을까. 그런데 반짝 특수에 그쳤다는 기사마저 접한 터. 원래 '열풍'이란 '짧고 강렬한'이란 뜻을 내포하는 것인가.
열풍이 부는 현상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고 이에 동참하는 사람들을 폄하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늘 새로운 것이 등장하고 주기가 짧고 강도가 센 현상이 경이로울뿐이다. 어줍잖은 내 혼자만의 어록(?)에 이런 말이 있다.
'해보는' 사람은 많아도 '하는' 사람은 적다.
이렇게 그때 그때 등장하는 열풍따라 경험해보면서 사는 것도 재밌기는 하겠다. 늘 바뀌는 것에 새롭게 뭔가를 삶에 도입하고 경험하는 것이니까. 그런데 한때 '지속가능'이란 말을 붙이는 것마저 열풍인듯 보였던 것처럼 무언가를 지속함으로써 도달하는 경지라는 것이 있지 않나.
앞으로도 끊임없이 어떤 것이 됐든 열풍은 이어질거다. 인생을 새로운 것으로 채우며 재밌게 사는 사람들도 늘 있을 것이고. 다 좋은데 환경을 해롭게 하거나 개인들의 재능이나 노력을 한순간에 '모욕'하는 무심한 열풍은 신통찮은 호응으로 인해 이내 사그러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