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가장 두려운 말
삶에서 가장 두려운 말은 무엇일까.
나는 '진단'(diagnosis)을 꼽겠다. 진단이후로 세상이 달라보이고 내 삶의 모든것이 달라진다면 얼마나 무서운가 말이다. 한참전 스티븐 호킹을 다룬 전기영화를 보면서 생각했었다. 정신이 멀쩡하고 몸에 장애가 있는게 나은가, 반대로 몸은 멀쩡한데 정신작용에 문제가 생기는게 나은가. 비슷한 질문을 해볼까. 암에 걸리는게 나은가 치매같은 병에 걸리는게 나은가.
참 심성이 고약하다고? 세상은 넓고 인생은 아름다운 것이거늘 어찌 그리 말도 안되는 설정을 들이대냐고?
남다른 총명함을 가지고 하버드대 교수를 지내던 중 50세 언저리의 나이에 조기성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여자의 이야기, <still Alice>를 읽었다. 총명함은 물론 두루 완벽함을 갖춘 그에 견주어 공통점이라고는 연령대밖에는 없는 내가 초반부터 몰입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진단'에 갖는 나의 유별난 두려움 때문이었다. 앨리스는 실제 그런 생각을 한다. 차라리 암에 걸린거였으면 좋았겠다고. 그러면 맞서 싸워볼 수나 있지 않겠나 하고.
그러다가 결국 병마와의 싸움에서 지게되면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떠날 수나 있지않나 하고.
그러나 계속 나빠지기만 하는 병. 계속 자아를 잃어갈 수밖에 없는 그 병 앞에서 앨리스는 당황해하고 낙담해 한다. 단순하고 사소한 것도 기억해내지 못할 지경에 이르면 차라리 자살을 택하리라 결심하고 자신에게 주는 지시사항을 적어 컴퓨터에 파일을 만들어두지만, 읽고는 돌아서면 그것마저 기억이 안나 이행을 할 수 없는 처지.
그는 어느날 자신과 같은 병에 걸린 환우들 앞에서 연설을 한다.
나의 지난날들은 사라져갑니다. 그리고 나의 앞날들은 불확실한데, 그럼 나는 무엇때문에 사는걸까요?
나는 하루하루를 위해 살아갑니다. 순간순간에 살아있습니다. 내일이 되면 나는 내가 당신들앞에 서서 이야기했던 사실조차 잊어버리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오늘 매순간 살아있던게 아닌것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나는 오늘을 잊어버리겠죠. 하지만 오늘이 아무것도 아닌건 아니에요.
어느날 갑자기 그 무서운 '진단'을 받아들고 절망에 빠지는 사람들은 예방법을 몰라서 혹은 실천하지 않아서일까. 운명의 저주나 장난인 것일까. 불행엔 이유가 없다. 그러니 어떻게 하면 혹은 무엇을 갖추면 반드시 행복해진다고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흔히 몹쓸(?)병에 걸리면 대개가 '왜 하필 내가..'하면서 원망과 분노의 반응을 한다고 한다. 작가 박완서 선생의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었을때 성당에서 '왜 하필 내 새낍니까' 하면서 울부짖는것을 조용히 지켜보던 수녀님이 말했다지.
'왜 당신 새끼면 안됩니까'
누구든, 언제라도 '진단받을' 수 있는게 인생. 무슨 도전이며 패기인가를 호기롭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다만 아무런 진단을 받지 않은 지금, 안도의 평화만을 느낄 수 있을뿐. 째째하고 시시해보이지만 사실이다. 또 누가 아는가. 진단받지 않았지만 아직 모르고 있는 것일뿐일 수도.
인생이란... 오.직.살.뿐. 하루하루 순간순간.
'I live for each day. I live in the moment' 앨리스처럼.
놀랍지 않은가. 인생에 임하는 이 저자세!
한 해를 거의 다 살아내는 즈음, 그리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즈음에 새기는 나만의 사자성어는,
감지덕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