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유노 삼성?"

by 대륙의 변방

나 역시 최근 꽤 유명한 재계 인사의 사망기사를 접했다. 좀 놀랐다. 가끔 궁금하기까지 했던 소식인데도.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의 시구처럼 나는 혼잣말을 읇조렸다. 재벌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사실 충격적이기론 어느 해인가 현대가의 2세가 사무실 창문으로 뛰어내린 소식이었는데도. '삼성공화국'란 시니컬한 별칭도 있는 터에 사실 삼성이 한국인에게 각인된 이미지는 실로 '제국'에 가까우니까.


박노자의 한 칼럼에 따르면, 한국인이 한국 국적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밝힐 때 그 근거는 발달된 자본주의라고 한다. 맞는 말일 거 같다. 삼성이 어려워지면 한국경제가 위태로워진다고 믿는 이들도 많다고 알고 있다. 그럴지도 모른다. 아이가 한국에서 초등학교 다닐 때, 학급에서 '나의 장래희망'이었는지 '나의 꿈'이었는지 모를 주제로 그림이었는지 글이었는지 가물가물한 발표에서 한 아이가 그랬다. 자기 아빠처럼 삼성 직원 되는 거라고. 한국인에게 삼성은 그런 위상이다. 아빠를 자랑스럽게 여기게 하고 나아가 나라를 자랑스럽게 만드는 그런.


해외에 사는 한국인에게 삼성은 어떤 의미일까. 한때 해외에서, 한국에서 만든 차를 발견하면 감격하여 사진을 찍는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북미 도로에서 굴러다니는 상당량의 자동차가 '현대이'인 세상이다. 또 사람들이 사용하는 티브이며 노트북 컴퓨터, 핸드폰은 '삼성쩨'가 널렸다. 시장에서 애플과 당당히 맞짱 뜨는 경쟁자로서.


"Do you know SAMSUNG?"

이곳 캐나다에서 수년 동안 살면서 이 말을 정확히 똑같이 두 번 들었다. 여러 소음들이 뒤섞인 중에도 모국어는 정확히 귀에 와 꽂히게 마련이다. 또한 같은 모국어 사용자가 하는 외국어도 같은 현상을 보이는 모양이다. 안 보고도 어떻게 아느냐 하면 억양의 높낮이가 별로 없는 한국인 특유의 액센트가 그렇고 우리만이 '쌤성'이 아니라 '삼성'이라고 발음하니까. 그리고 한국인만이 그 질문을 하지 않겠는가. 알겠지 그럼. 그들의 핸드폰이 거기껀데, 혹은 얼마 전에 산 티브이가 그렇거나 아니면 노트북일 수도 있겠고. 질문을 받은 사람은 그럴지도 모른다. 아는데 그게 왜? 질문을 한 사람이 뭘 말하고 싶은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흔히 한국에서 외국인을 만난 한국인이 영어로 대화를 하면서 외국인을 당황스럽게 하는 질문이 "What's your favorite color?" 또는 "What do think about Korean food?"라고 하는 걸 티브이에서 본 적이 있다. 이제 해외에 있는 한국인들에게 "Do you know samsung?" 이 생겨난 걸까. 두유노 김연아? 두유노 류현진? 두유노 비티에스? 처럼? 사실 '이케아'가 스웨덴 기업이라거나 한때 많았던 '노키아'가 노르웨이 기업이라거나 하는 걸 애써 챙기는 사람은 별로 없지 않을까. 중요하지 않고 의미가 없는 일이 아니겠느냐 말이다.


삼성이라는 내게 무관하고 무해한 그 거대기업은 마치 정사가 있고 야사가 있는 하나의 왕조같이 느껴진다. 한국이란 나라가 세계 속에서 위상이 거의 바닥일 때부터 꾸준히 기술력을 키워가면서 세계 속에 훌륭한 제품들을 내놓고 있고 어쨌거나 한국 경제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는 -좋은 의미든 부작용이든 막론하고- 측면이 하나의 정사라면, 기업의 오너 가족들을 비롯해서 그들이 정치권력과 맺는 아름답다고 볼 수 없는 상호작용들, 기업 운영 시스템 안에서 펼쳐지는 수많은 구리고 구린 이야기들은 야사로서 엉키고 엉켜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난 적어도 그 거대기업과 그들이 만든 제품들을 절대 '국뽕'이라 여기며 바라보지는 않을 작정이다. 낯선 곳에서 살아가는 내 존재가 너무도 작게 느껴지는 어느 날 어물쩍 그런 마음이 피어올라도 절대 경계할 일이다. 그들의 사람을 부리는 방식이나 기업윤리에 핏대 세우며 비판을 하지도 못하는 일개 해외 거주 한국인으로서, 죽어도 "두유노 삼성"만은 못하겠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삼성 같은 기업이나 제품들을 국격으로 바라보는 순간 우리의 인간으로서의 격은 급 추락하는 것이 아닐까. 삼성은 삼성일 뿐 '대한삼성공화국'이 되어서는 곤란하지 않겠는가.

keyword
작가의 이전글코로나속 명절쇠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