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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라벨 Aug 29. 2018

소소한 싱가포르 생활기 2

- 도마뱀과의 대면

싱가포르에 오기 전에 걱정했던 것 중에 하나는 위생이다. 일 년 내내 습도가 80%에 육박하고 기온은 30도 내외이니 세균과 곰팡이들이 번식하기 좋은 환경이다. 한국에 있을 때 집안 청소에 그다지 부지런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여름이면 집안 청소에 특별히 신경을 썼다. 음식물도 잘 상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그때그때 버리지 않으면 냄새가 진동을 하며, 화장실에 곰팡이가 스멀스멀 피어나니 말이다. 싱가포르가 한국의 여름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더운 날씨에 매일 청소만 하다 진이 빠지는 거 아닐까 하고 걱정했다. 그러나 싱가포르에 오자마자 날 괴롭힌 건 곰팡이도 세균도 아니다. 도마뱀이다!!   


싱가포르에서 집을 구하기 전에 2개월을 레지던스 호텔에 머물렀다. 여기 와서 처음 보는 작은 도마뱀들은 한국에 있을 때 갑자기 나타나는 바퀴벌레들처럼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어느 날 호텔 방문 바닥 틈으로 한 3센티미터 정도 되는 도마뱀이 들어와서 거실 카펫 한가운데서 두리번거리며 있었다. 어떻게 다시 밖으로 내보낼까 고민하다가 얇은 잡지책을 쓰레받기 삼아 쓸어서 밖으로 내보낼 심사로 도마뱀을 잡지로 밀었다. 그런데 도마뱀이 잡지에 쓸려 뭉개져 버렸다. 피부가 너무 얇아 얇은 잡지책으로도 쉽게 으스러진 것이었다. 파충류인 도마뱀이 피부가 그렇게 얇을 줄이야. 도마뱀을 손으로 만지지 않아도 만진 것 같은 느낌에다 의도치 않게 살생을 하였으니 충격과 당황스러움 그 자체였다. 나중에 여러 번 도마뱀을 경험해 본 결과 그 도마뱀은 무척 어린 새끼였다. 도마뱀이 어느 정도 커서 한 5~6센티미터만 되어도 사람이 다가가면 요리조리 잘 도망가서 잡기 어려워진다. 그때 그놈은 아직 세상 물정 모르고 인간이란 존재를 경험해보지 못한 것 아주 어린 미숙한 놈이었나 보다. 불쌍한 새끼 도마뱀이 싱가포르에서 도마뱀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는 인간에게 죽임을 당한 사건이었다.


그 이후로도  도마뱀은 수시로 내 눈앞에 나타나서 나를 주시한다. 지금 사는 집에도 도마뱀은 어김없이 나타나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그리고 얼른 내 시야에서 안 보이는 곳에 붙어서  ‘내가’ 사라지기를 기다린다. 아니 내가 어디론가 사라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게 분명하다. 내가 몰래 숨어서 지켜보니 그제야 움직인다. 도마뱀과 숨바꼭질을 하는 기분이 들어서 내가 작은 도마뱀과 뭐 하고 있나 싶을 때도 있다. 싱가포르에서 도마뱀은 퇴치할 수 없는 같이 살아야 하는 존재이다. 에어컨 바람 나오는 곳에 들어가 살기도 한다. 싱가포르 사람들은 도마뱀은 깨끗한 동물이다, 도마뱀이 있으면 바퀴벌레가 없다는 식으로 말하며 도마뱀의 출몰을 받아들이며 산다. 싱가포르 기념품 파는 곳에 가면 도마뱀 열쇠고리, 도마뱀 모형 등 도마뱀 관련 물건들이 여럿 있다. 해충인 바퀴벌레와는 엄연히 다른 취급을 받는 존재이나 불쑥불쑥 나타나 놀라게 하는 걸로 치면 나에게 새끼 도마뱀과 바퀴벌레는 동급으로 생각된다. 엄밀히 말하면 싱가포르도 오래전부터 도마뱀의 터전이었으니 어떡하랴 갑자기 나타나더라도 놀라지 말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집에 찾아온 손님이라고 여겨야지. 


싱가포르에 오기 전에 걱정했던 위생, 세균, 벌레들에 대한 대처는 한국에서 살 때와 비슷하다. 매일매일 먼지 청소하고 여기저기 물기 없게 신경 쓰는 것 외에. 그러나 피부에 상처나 감염엔 좀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습도와 기온이 높아 상처가 아무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자칫하면 곯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딸아이가 겨울에 한국에서 귀를 뚫고 싱가포르에 돌아왔었는데 귀가 잘 아물지 않아 거의 6개월 넘어 한 일 년은 신경을 써야 했다.

어느새 더운 날씨와 습한 기후에 내 몸과 마음이 적응하여 한편으론 받아들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들은 그럭저럭 무시하면서 산다. 인간도 알고 보면 적응의 동물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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