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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라벨 Aug 28. 2018

소소한 싱가포르 생활기 1

- 어쩌다 우리가 싱가포르로 이사를....(feat.딸래미)

싱가포르로 가기로 결정하고 이것저것 준비하고 오는데 3, 4개월 정도 걸린 듯하다. 중3인 딸애가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터라 쉽지 않은 결정이었고 더군다나 싱가포르행을 내켜하지 않는 딸을 설득해야 했고,  딸이 다닐 학교를 급하게 알아보고 지원서를 넣고, 집 알아보고.....


남편은 한국에서 외국계 회사를 다녔다. 지금도 다닌다. 외국계 회사의 아시아지역 본부는 주로 싱가포르에 많이 있다. 그래서 싱가포르에서 일하는 건 region job을 맡는 것이라  업무영역이 넓어지고 승진의 기회이다. 또한 글로벌 회사의 윗사람들과 접촉할 기회도 많아진다. 아주 적은 가능성이긴 하지만 글로벌 회사의 본사로 가는 것도 점쳐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물론 싱가포르에 와서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남편은 딸의 진학 문제가 있어서 50:50으로 싱가포르행을 고민했고, 우리 부부는 싱가포르 국제학교의 교육과정에 대해 알아보고 입시위주의 치열한 한국 고등학교 과정보다 딸애가 덜 스트레스 받고 즐겁게 공부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싱가포르행을 결정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딸아이가 싱가포르 행을 내켜하지 않은 데 있었다.


고입을 앞둔 딸아이가 싱가포르행을 반대했다고 하면 주변에서 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주변에선 한국의 입시경쟁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딸애는 생각이 전혀 달랐다. 친구들이 당연히 거쳐가는 고교시절이 자신만 빼놓고 지나가는건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듯했다. 마치 자기 인생에서 고교 3년의 공백기가 생기는 것처럼. 딸아이의 삶의 터전은 한국이고 아직 한국에서 기대해야 할 것이 많은 나이이다. 지옥이든 천국이든 고등학교 3년은 짧은 자기 인생에서 무엇보다 기대되는 중요한 시기였다. 그 속에서 자기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했으나 해외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건 상상해보지 못했고 기대 같은건 해보지도 않았으니 싱거포르행을 내켜하지 않은 것도 당연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딸애가 생각하는 고등학생으로의 삶과 내가 예상한 딸의 고등학교 시절은 차이가 있었다. 나는 한국에서의 고등학교 시절은 소모적인 경쟁과 스트레스가 가득한  대학이라는 출구를 향해 매진하는 시기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딸아이에게 고등학교는 새로운 학교, 새로운 친구들과 선생님, 그리고 대학입시 등 고등학생으로서의 '삶 그 자체'가 놓여 있는 곳이였다. 딸아이에게 자신의 인생에서 한 번뿐인 한국 여고생으로서의 삶이 바로 앞에 놓여있었다. 대입을 위한 수단으로만 존재하는 우울하고 지옥 같은 시기만은 아니었다.


까마득히 오래된 내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려보면 지겨운 공부에 대한 기억 보단 다른 기억들이 더 많다. 세월이 많이 흘러 흐릿해졌지만 떠오르는 친구들 얼굴, 좁은 교실, 여고 앞 깔끔한 분식집, 야간 자율학습 때 깜깜한 운동장에 나와 친구들과 장난치던 순간들 그리고 학교가 신촌 대학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 겪어야 했던 최루가스 때문에 흘렸던 눈물 콧물(지금의 아이들은 광화문과 촛불을 기억하겠지만)등 희미하게 떠오르는 다양한 장면들이 있다. 지금의 고등학교 시절이 지옥같은 입시경쟁에 속에 있으나, 그 속에도 친구들과의 우정, 경쟁, 빽빽한 교실, 학원가 문화, 방과 후 맛있는 간식, 유행하는 음악과 미디어, 게임 등 같은 시간대, 같은 환경에서 겪어 나가는 공감대는 그 속에 속해 있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다.


암튼 우리 부부는 딸애가 아직 어려서 시야가 좁다고 생각하고 딸애를 설득하는 과정에 돌입하였다. 싱가포르의 많은 국제학교들 중 마음에 드는 학교 하나를 찾아냈고, 거기서 운영하는 IB 교육과정이 어떤 것인지 인터넷으로 검색해보고, 그 당시만 해도 몇 안되었던 IB학원 하나를 찾아가 IB 교육이 어떤것인지 딸아이와 함께 이야기를 들었다. IB교육과정이 아이의 성장에 도움이 과정이라는 확신이 들었고, 딸애도 수긍을 하였다. 딸애에게 한국에서의 고등학교 3년 시절은 없어지지만 다른 경험으로 채워지는 고등학교 생활이 있을거라고 딸애를 설득했다. 딸아이는 부모 말을 잘 듣는 편이라 설득하는 걸 크게 걱정하지 않았으나 남편은 그래도 반드시 딸애가 가겠다고 해야 낯선 환경에서 잘 적응할 수 있다고 해서 우리는 딸애의 의사를 중요하게 생각했었다. 어쨌든 아이의 동의 끝에 우리는 새로운 곳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싱가포르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딸아이는 새로운 낯선 환경에 적응을 잘하는 편이다. 새로운 친구들, 낯선 음식 등 잘 받아들인다. 학업도 스스로 잘해간다.  미국에서 초등학교를 잠깐 다닌 적이 있었는데 언어도 다른데 잘 적응해서 놀랐던 적이 있던 터라 싱가포르에서의 아이의 적응을 크게 걱정하지 않았었다.

그래도 여전히 딸은 한국인으로서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 새로 나오는 노래들, 예능 프로그램 등 한국 문화와 사회문제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늘 업데이트를 한다. 자신에게 한국에 대한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말이다. 그리고 말한다. 오늘은 JTBC 뉴스나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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