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 나를 사랑하기 위한 작은 다짐
내가 맡은 역할은 몇 가지나 될까? 무게에 따라 적어 본다. 엄마, 직장인, 학부모, 아내, 딸, 언니, 며느리, 친구... 몸이 하나인 것이 원통할 따름. 홍길동 분신술이 간절하다. 지난 10년 간 나에게 주어진 역할을 해내느라 아등바등했다. 시기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했으나 엄마와 직장인으로서의 역할에 가장 집중했던 시간이었다.
그 시간 동안 많은 것을 얻었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아이들의 모습은 시간이 준 가장 큰 선물이다. ‘엄마 사랑해요’하고 안아주는 그 손길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 부모로서, 부부로서 함께 성장한 남편과의 사이에는 든든한 신뢰가 자리 잡았다. 직장일도 놓지 않고 해 왔다. 학교, 돌봄 교실, 학원, 어린이집과 유치원, 친정 부모님의 도움 덕분이다. 그리고 그 시간 덕에 이제는 17년 차 직장인으로 조직의 허리 정도를 담당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잃은 것도 있었다. 바로 ‘나’라는 사람. 주어진 역할을 해내느라 ‘나’라는 사람을 아끼고 사랑해 주지 못했다. 그리고 뒤늦게 깨달았다. 내가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인정과 사랑’뿐만 아니라 ‘나로부터의 사랑’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행복하지 않은 날들이 많았던 이유. “나는 분명 행복해야 하는데, 왜 그렇지 못할까?”, “나만 이렇게 유난스러운 걸까?” 스스로를 의아하게 바라보던 시간들이 이어졌다.
<워킹맘의 슬기로운 가정생활>은 엄마로, 직장인으로 주어진 일을 잘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한 사람이 행복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혼자서 가정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대신, 가족과 함께 나누고 팀이 되어가는 과정을 담았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챙기며, 나만의 즐거움을 만들어가려 노력하는 모습도 쓰여 있다. 엄마로서 행복을 만들어 가기 위한 소소한 방법이 잘 전달되었길.
직장인으로서 새로운 시작을 앞둔 지금,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본다. 첫째를 낳고 돌까지 휴직, 3년 뒤 둘째 돌까지 휴직, 다시 3년 뒤 첫째 초등학교에 입학하며 휴직. 일 좀 한다 싶다가 쉬는 일을 반복했다. 멈췄다 섰다 멈췄다 섰다를 반복하는 지하철을 탄 속도랄까. 그러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둘째를 위해 남편이 처음으로 육아 휴직을 한다.(많이 고마워요) 덕분에 나도 처음으로 4년째 쉬지 않고 일을 한다. 좋은 것만은 아니겠지만, 지하철에서 KTX로 갈아탄 기분. 이번엔 목적지까지 멈추지 않고 쭉 달리며, 직장에서도 새로운 행복을 만나보고 싶다.
이 브런치북을 쓰면서, 앞으로도 워킹맘으로 살아갈 나 스스로를 위한 지침서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방법은 글에 쓴 대로 꾸준히 잘 실천하고 있다. 또 지금은 부족하지만, 더 잘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도 글로 써 두었다. 때로는 "대단하다"는 댓글을 받기도 했고,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대단하지 않은 사람이다. 평범하고, 때때로 게으르고, 살짝 이기적인 엄마다. 하지만 나로서의 행복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나 자신'을 위한 노력을 조금이라도 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당신은 나보다 더 나으리라 믿는다.
하나의 몸으로 수십 가지의 역할을 잘 해내려 애쓰고 있는 책임감 많은 우리 엄마들이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 엄마로서 가족들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은 바로 ‘나 자신이 행복해지는 것’.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희생하는 대신, 스스로를 사랑하는 삶을 만들어 나가는 모습. 그것이야말로 내 아이에게, 가족에게 가장 큰 귀감이 되지 않을까. 나는 그것을 믿는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충분히 행복할 자격이 있다.
당신의 행복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