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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욕꼬질이들 Feb 19. 2018

뉴욕의 패션학교가 당신에게 결코 가르쳐주지 않는 것들

뉴욕패션주립공과대학을 갓 졸업한 사회 초년생의 따끈하고 뜨끔한 이야기

'떠난다'


꿈을 꾸는 순간부터 두근거리며 한국 땅을 떠나는 순간까지 약 10년이 걸렸다.


준비하기까지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나는 정말 이 일을 좋아하는 걸까?'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떠날 만큼 가치가 있을까?'


이 세상에 태어나 자라면서,

나는 내가 원하는 일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학교가 싫었고, 모든 과목들도 하나도 재미가 없었고, 선생님들도 싫었고, 친구도 귀찮고 다 싫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아지려고 유쾌하고 재미있는 학생인 척 코스프레를 했다.

선생님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도 해보고, 부모님 마음에 들기 위해 공부도 나름 열심히 했다.


하지만 사실 나에게 매사는 하기 싫은 일들 투성이었고, 언젠가부터 마음 한 편이 공허했다.

남들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재미가 없었다.

겉으로는 모든 것이 다 안정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보였지만 내 마음속은 대혼란 그 자체였다.

정신적으로 피폐의 끝을 달리고 있을 무렵, 대학교 1학년 때 영어공부와 패션잡지 보기에 재미가 생겼다.


하지만 그간의 나처럼 많은 것이 망설여졌다.

시키는 공부만 하느라 급급해서 내 적성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없었던 나에게

삼수까지 뒷바라지를 해 주신 부모님께 이제 와서 또 진로를 바꾸겠다고 하는 것은 할 짓이 못 되는 것 같았다.

내가 돈을 벌어서, 좀 더 한국에서 배워서, 좀 더 자신감이 생겼을 때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약 9년이 지나 미국행을 결심했다.

 

그래서 지난 12월 나는 졸업을 했다. 그리고 처절한 패션산업계의 현실을 쓰라리게 맛보고 있다.

지금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을 결코 정답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어떤 누군가는 자신만의 느낀 점이 다를 수도 있다. 혹은 자신이 추구하는 바가 나와는 다를 수도 있다. 다만 아직 취업시장에 뛰어들기 전 나와 같았던 학생들에게 나는 이런 점들을 느꼈다고 공유하고 싶은 마음과, 그들이 내가 한 실수들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그리고 나를 되돌아보고 다잡는 것을 목표로 이 글을 끄적여보고자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인턴십에 이 한 몸 다 바치기


2. 불친절한 학교를 최대한으로 이용하는 방법


첫 번째로, 인턴십은 뉴욕의 패션학교에서 최고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인턴십이야말로 취업의 길로 이어지는 고속 패스이기 때문이다. 학교는 대체로 당신의 취업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저 누가 내 말을 잘 듣고, 누가 데드라인을 잘 지키며, 누가 이 반에서 제일 열심히 하는가. 이 정도에만 관심이 있다. 나는 당신이 학교가 관심 있는 것들에 초탈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 미리 방학 동안 준비를 했던지, 아니면 아예 관심을 끄던지. 학교는 방학 동안 만든 포트폴리오를 기간에 맞춰 던져주기만 했으면 한다.


왜냐하면 인턴십에서는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은 무한한 것들을 배울 수가 있다. 상사의 마음에 들어 나중에 취업의 기회로 이어지는 꿈같은 현실이 이루어진다면 더 바랄 것 없이 좋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진짜 인더스트리에서 작업하는 방식을 배울 수 있다. 그들이 일하는 방식, 그들이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절차, 기준 등은 학교와 너무나 다르다.

학교는 아직도 그림만 그린다. 실제 인더스트리에서 그림은 10퍼센트도 안된다. 실제로 만들고 입히고 사진 찍고 고치고 다시 만들고 하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한다. 어딘가에서 인스퍼레이션을 받는 처음의 과정, 그리고 그것을 실제로 만드는 과정에 거의 모든 시간을 쏟아붓는다.


하지만 학교는 정반대의 교육을 한다. 인스퍼레이션을 얻는 과정은 너무나 간단히 가르치고 그림을 그리는데만 집중하며, 실제로 만드는 과정은 개나 줘라 식이다. 학교만 열심히 다니면 그것의 문제점을 전혀 알 수가 없다. 학교는 절대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인턴십을 늦게 시작한 데다, 시작하고 나서도 학교를 너무 열심히 다녀서 그것을 잘 몰랐다. 사실 열심히 다녔다기보단 학교에서 시키는 것만 열심히 하거나 같이 다니는 학생들보다 조금 더 했다. 하지만 그걸로 취업을 노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학교 공부는 방학 때 하고 나머지는 인턴십에 모든 힘을 쏟아부었어야 했다.


인턴십에서는 일을 망치지 않도록 최선을 기울여야 한다. 일은 빠르고 정확하게 해야 한다. 노트 테이킹은 기본, 옷에 주머니가 있어서 수첩과 펜을 꼭 들고 다니며 보스가 하는 말을 하나도 흘려들어서는 안 된다. 한 번 눈 밖에 나면 다시 마음에 들기는 굉장히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마지막 학기 인턴십을 할 때 학교에서 하는 프로젝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바람에 보스의 미움을 받았다. 마지막 학기가 취업으로 이어지는 최고의 기회였는데 그 좋은 기회를 보기 좋게 날려먹은 것이다. 계속 학교 핑계를 대며 회사 일을 기계적으로 했고 학교 숙제를 하느라 밤을 새우고 회사를 나갔기 때문에 실수를 연발했다. 결국 보스는 나에게 잔심부름만 시키고 나는 딜리버리 맨이 되었다. 후회가 되지만 그로 인해 많이 배웠다. 보스가 나중에 인턴십 기간이 끝나는 날 솔직하게 모든 것을 말해줬기 때문이다. 인턴십 클래스 점수는 C를 받았다. 정말 자존심이 상하고 많이 미웠지만, 나는 그 보스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나에게 밑도 끝도 없는 교훈을 전해준 인턴십 보스들 중 가장 강력한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 생각해보면 딜리버리 맨이 되었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는 없었다. 딜리버리를 최대한 빨리 하고 돌아온 후 내가 맡은 일을 열심히 하고, 초과근무를 하더라도 나의 열정과 패기를 보여주며, 실수를 줄이고 보스가 원하는 것에 더욱 귀를 기울였다면 관계 회복은 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아는 사실들을 알지 못했던 그때의 나는 그러지 못했다.


학교는 좀 뒷전으로 밀어둬도 괜찮다. 다만 학점을 위해 대충이라도 과제를 완수한다. 방학은 놀으라는 기간이 아니었다. 인턴십을 할 수 있도록 학교생활을 준비하라는 기간이었다. 학교는 그것 또한 가르쳐주지 않는다. 인턴십은 정말 정말 중요하다.


두 번째, 학교를 최대한으로 이용하기


학교의 프로젝트는 대체로 포트폴리오 만들기이다. 포트폴리오는 취업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요소들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를 취업과 관련되도록 만들기 위해서 알아두어야 할 몇 가지를 프로세스와 함께 말해보려 한다.

우선 자기가 생각하는 최고의 브랜드를 여러 개 고른다. 미국에 머물 예정이라면 비자를 해주는 곳이 더욱 좋다. 비자를 해주는 곳은 대체로 큰 브랜드가 많으므로 자기가 좋아하는 브랜드와 겹칠 가능성도 높다.

연관된 디자인을 많이 한다. 나중에 자신의 진로를 천천히 정하고 싶은 사람은, 여성복에 비해 기회가 많은 맨즈웨어의 요소나 액티브웨어의 요소가 있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하면 더 좋을 것이다.

학교에서 요구하는 프로젝트를 할 때는 SOMETHING INTERESTING 한 요소가 들어갈 수 있도록 한다. 그것이 회사에서 학생들의 저널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다만 지금 인더스트리에서 디자인 스케치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실제로 옷을 만드는 일이다. 옷을 엄청 많이 만들어야 한다. 또한 디자인 스케치부터 시작해서 옷을 만드는 과정까지 모든 프로세스를 포트폴리오로 잘 남겨두어야 한다. 깔끔하게.

옷을 만든 후에는 모델을 구하고 촬영을 한다. 나만의 홈페이지를 구축한다.

다양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섭렵한다. 그래픽에 관한 것이나, 3D 혹은 비디오, 사진 촬영, 웹디자인, 어플 개발 등 다양한 영역이면 더 좋다.

회사는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만 잘 하는 사람은 뽑아주지 않는다. 그것은 기본일 뿐, 플러스 요인이 아니다. 뭔가 남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강점이 있는 사람들을 선호한다. 3D 프로그램 혹은 비디오나 사진 촬영, 웹디자인, 어플 개발 등 자신만의 강점을 키울 수 있도록 학교 수업을 통해 배워두는 게 좋다.

멀티태스커와 빠른 PACED에 적응할 수 있는 인재를 찾는 곳이 패션산업이기 때문이다.


학교에 다니면서 꾸준히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교내 및 교외 상을 받을 수 있는 곳을 잘 리서치한다. 거의 다 옷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옷을 만드는 것을 소홀히 하면 안 된다. 교수들에게 물어보는 것도 좋지만 옷을 사서 관찰하고 뜯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비싼 옷이라면 유튜브 동영상을 활용하거나 교수에게 물어보는 것도 좋다. 학교는 당신에게 다가와 친절하게 모든 것을 알려주지 않는다. 당신이 스스로 나서서 모든 것을 최대한으로 활용해야 한다! 교수들의 수업은 기초를 잡기에 정말 많은 도움이 된다. 하지만 시키는 대로 하는 것보다는 +알파로 해야 한다.


지금 미국은 외국인에게 극도로 불리하다. 정치적인 요인도 있고, 경제적인 요인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평범한 미국인들보다 조금 더 잘한다고 해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나만의 자신 있는 강점이 있어야 한다. 내가 느낀 부분들이 지금 열심히 학교를 다니고 있는 사람들에게 찬물을 끼얹는 역할을 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열심히 하는 것은 좋지만, 이런 부분들도 염두에 두면서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화려한 패션의 겉모습만큼 화려한 경력의, 개성이 넘치는, 끼가 있는, 창의적인 천재들이 많은 패션의 도시 뉴욕에서 살아남기란 쉽지가 않은 듯하다. 하지만 난 여전히 이곳이 좋고, 내가 한 선택들에 후회가 없고, 실패를 통해 더욱 후회 없는 선택을 해 나갈 생각이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과 함께 언젠가 작업을 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Jenn

; 옷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다는 큰 꿈을 가지고 느지막이 패션에 뛰어든 겁 없고 명랑한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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