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남자와 장거리 연애는 처음이라 ep.10

짧고도 긴 장거리 연애의 끝

by 뉴욕꼬질이들


지난해 4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그를 뒤로한 채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약 3년 반 전에 한국을 떠날 때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큰 차이가 있다면 전 남자 친구가 한국에 있는 한국 사람이었고, 이번에는 미국에 있는 미국 사람이다.


외로워서, 보고 싶어서 울기도 하고,

대체 온다는 건지 만다는 건지 알 수 없어서 화가 머리 끝까지 나기도 하고,

우리가 정한 시간에 전화가 울리지 않으면 하염없이 기다리다 기분이 상한 채로 잠들기도 하고,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관계의 불확실성과,

서로의 사랑이 식지 않을까 싶은 불안감에 종종 떨었다.

기념일이 뭐냐 먹는 거냐 할 정도로 하릴없이 보내기도 하고,

희로애락은 화면 너머로밖에 전할 수 없었고,

손도 한 번 못 잡고, 따뜻한 포옹 한 번 못해주고

그렇게 10개월이 흘렀다.


이 사람하고는 장거리도 해 볼만 하겠다고

당당하게 장거리 연애도 한 번 적어보겠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대화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장거리 연애는 생각보다 강적이었다.


"최대한 많이 만나세요."


장거리 연애의 꿀팁이라는데,

14시간 100만 원의 기회비용은 쉽게 마련하기 어려웠고,

'곧 만나니까 참자.'는 생각으로 서로를 위로했다.


민익씨는 내가 떠나고서 한 동안 그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들을 만나고 즐겁게 놀았다.

나도 한국에서 민익씨와 비슷하게 지냈다.


아침에 울리는 전화벨에 잠이 깨는 것은,

그는 잠에 들며 나의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내 하루가 끝날 때 그의 하루가 시작되는 것은,

화면 너머로 매번 비슷한 얘기만 하다 이내 지루해지는 기분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민익씨의 느긋한 성격 탓(?)에 나는 대체 한국에 오겠다는 거냐 말겠다는 거냐 하며 농담을 던졌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꾹 참고 마음에 삭혀두던 묵은 섭섭함이 결국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자기는 우리가 언제까지 이걸 계속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내가 뱉어놓고도 등골이 오싹해진다.


학기가 시작하는 것은 3월이라 부지런한 학원들은 6개월 전부터 선생님을 찾기 시작할 텐데 늦게 시작하면 할수록 경쟁력이 높은 곳은 붙기가 어려울 것이다.


민익씨가 여름 즈음부터 정신을 차리고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12월 중순에 자격증을 땄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2개월 남짓 남은 시점에 인터뷰 기회가 많을 리가 없다.


그래도 나는 민익씨가 영어를 잘하고(?) 똑똑한 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가 금방 일을 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민익씨도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생각보다 한국에서(특히 서울) 영어 교사를 구하는 과정은 굉장히 까다로웠다.


우선 4년제 대학은 필수이고,

6개월 과정의 교사 자격증을 수료해야 하고,

(코스는 대학교 수업 뺨치는 과제와, 실습까지 포함하고 있다.)

비자를 위한 서류들을 준비해야 하고,

리쿠르터들에게 개별적으로 연락해 그들과 1차 인터뷰를 봐야 하고,

리쿠르터는 학원과 신청자의 다리 역할을 하며 인터뷰 스케줄을 잡아준다.


인터뷰는 영상통화로 이루어지고, 대략 20-30개의 질문을 하는데, 생각보다 질문의 개수가 많을 뿐 아니라 심도 있고 체계적이고 어렵다. 내가 임용고사를 보기 위해 공부하던 질문들과 비슷한 것들도 많다.


인터뷰를 쉽게 생각하던 민익씨는 경험이 적다, 나이가 어리다, 진지해 보인다(?) 등의 여러 이유로 거절을 당했다. (한 군데는 합격했지만 서울과는 많이 멀어서 가지 않았다.)


똑똑한 그를 믿고 마냥 기다리고 있었는데,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니 나까지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인터뷰 준비는 좀 했어?"


"응."


"어디 한 번 이야기해 봐."


나도 2차 임용고사를 볼 때 고사장 근처에 있는 모텔방을 잡고 엄마와 입이 부르트게 연습한 이력이 있다. 한국에 온 이후 한 동안 원서 접수를 할 때도, 나이 때문에 진작 서류에서 떨어진 경우는 있어도 면접까지 가기만 하면 백 프로 합격했다. (결국 자발적 백수를 택했지만요. 잘한 지 못한지는 두고 봐야 알 것 같습니다.^^;;)


모의 면접 시간을 가져보니 민익씨는 정말 기본적인 몇 가지 질문만 준비했고, 그 대답마저 처참하다.


" 한국에서 교사가 되고 싶나요?"


"한국 영화와 문화를 좋아해요."



'아니, 왜 선생님이 하고 싶냐고...'



마음의 소리는 불만이 많았지만 꾹 참고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이 남자는 나 때문에 팔자에도 없던 교사에 도전하고 있다. 불친절하게 굴지 말자.


"방금 그 답변도 괜찮은 것 같긴 하지만... 무엇보다 모든 질문의 답변을 교육과 연관을 짓는 게 좋을 것 같아. 어쨌든 자기는 영어 교사를 하고 싶은 거니까. 한국을 좋아하는 이유와 교사가 되고 싶은 이유를 교육에 연관 지어서 설명해주면 더 좋을 것 같아."


"나는 영화 중에서 올드보이 좋아한다고까지 이야기했는데. 헤헤."


불친절해지지 않기 위해 이성의 끈을 다급하게 붙잡았다.


"나올만한 질문을 쭉 뽑아서 카테고리화를 시켜 봐. 그리고 비슷한 카테고리에 대답할 수 있는 구체적인 경험이나 자격 같은 것을 모아서 만능 답변으로 만들어보는 거야. 어떤 질문이 나와도 적용해서 대답할 수 있도록 말이야."


"응."


게다가 민익씨는 아버지와 같은 회사에 다니는데, 아버지에게 한국에 가는 이야기를 했다. 아버님은 회사에서 민익씨의 한국행을 동네방네 이야기하시는 바람에(민익씨 아버님도 그가 쉽게 합격할 거라고 생각하신 것 같다.), 민익씨는 적어도 2월 말에는 회사에서 나와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내가 한국에 가는 게 인터뷰에 합격하고 확실하게 결정되면, 가족이나 회사에 말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는데, 결국 온 가족과 회사 사람들은 확실하지도 않을 때 모두 알게 되었다. 이런 현상을 보고 있으면 마치 우리 엄마가 아빠에게 입조심시키던 것이 생각이 난다.


그가 나 때문에 한 결정에 백수가 되어 한국에도 못 오고 직업도 잃으면 어쩌나 걱정이 솟구친다.


하루는 전화를 하는데 민익씨 목소리가 코맹맹이다.


"울었어?!"


"... 어떻게 알았어?"


"목소리 들으면 알지.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응. 리쿠르터가 2월부터는 학원들이 거의 다 고용을 해서 기회가 지금처럼 없을 거라고 해서..."


1월이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다.


괜찮을 거라고 어차피 인생 한 방이라고 아무렇지 않게 위로했지만 마음이 벌렁거린다.


개인적으로 인터뷰를 신청할 수 있는 웹사이트를 알아보고, 한국에 있는 리쿠르터들에게도 연락할 수 있는 링크와 함께 보냈다. 심지어 친구 아들 학원에 함께 상담받으러 갔을 때(친구가 영어 선생님들이나 학원 분위기가 어때 보이는지 봐달라고 함께 가자고 하더라고요. 저도 얼굴만 봐서는 잘 모르는데 말이죠;;ㅋㅋ) 민익씨의 연락처도 남기고 왔다.


오지랖도 이런 오지랖이 없다.

내 인생 앞가림하는 것도 바빠 죽겠는데, 나보다 남자 친구 상황이 더 안 좋아 보인다.


게다가 앞으로 내가 일할 때 필요한 제품들을 민익씨에게 국제 소포로 보내달라고 부탁했던 택배는 아무리 기다려도 올 생각이 없다.


나중에 민익씨의 실수가 있었다고 판명이 났지만, 우체국에 전화를 해 보라고 아무리 말해도 그는 자기 앞 날만 챙기느라 자꾸만 내 부탁을 잊어버린다.


"우체국에 전화 안 해줄 거면, 내가 곧장 한국 주소로 다시 주문하려고 하는데 나한테 돈 보내줄래?!"


사정이 딱한 걸 아는데도 성질이 난다.

택배비가 100불이 든다길래 대신 부탁한 일인데, 70만 원에 가까운 제품을 또 시키게 될 줄 몰랐다. 우체국에 연락해서 어떻게 된 건지 사정을 파악해주기만 하면 되는데 대체 뭐가 그렇게 어려운 것인지 내가 사람이 아니고 만두나 김밥이었다면 이미 속이 다 터졌을 것이다.


어언 10개월 동안


절망에 절망에 절망에


분노에 답답함에 서러움에 슬픔에 절어서


시국을 타개할 방법을 모색하는 일환으로


인간관계, 심리, 독서, 운동, 요가, 명상, 좋은 강의 듣기


별 짓을 다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그러지 않았다면 헤어졌을지도 모른다.


'가장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을 등지지 않겠다'는 새해 결심을 남자 친구에게 적용하게 될 줄 몰랐다.


그래도 아직 그의 곁을 떠나고 싶진 않다.


서로 보이지 않는 지친 마음이 극에 달한 어느 밤,

여느 때처럼 그에게 전화가 왔다.



자기야, 나 합격했어.
서류만 보내면 된대.
곧 만나.



떠날 때 흘리지 않았던 눈물이 멈출 줄 모르고 흐른다.


가끔은 스스로도 속을 정도로 의연하고 태연한 척 했지만,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과 함께 10개월을 지냈다.


사랑이 뭐라고.

사서 고생한다.

네가 대체 나이가 몇 살인데,

이십 대 때 군대 간 남자 친구에게도 안 하던

평강공주 노릇을 못해서 안달이니.


잊을만하면 들려오며 내 머릿속을 헤집던 스스로를 향하는 비난의 목소리가 희미해져 간다.


최근에 들어서야 문제는 내게 있었음을 깨닫고

조금은 감정 조절을 하며 마음을 비우고 있지만,

그간 장거리 연애는 쉽지 않았다.


다시는 안 하고 싶지만,

한 것에 후회는 없다.



어차피 인생은 한 방이니까!



그리고 이제는 내 남자 친구가 가상의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니까!!








흔히 말하는 '현자 타임'이라는 것을 연애를 하면서 가장 많이 느낀 시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오랜 기간 응원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당!(하트하트백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