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라는 감정에 관하여 (부제: 질투의 화신 꼬질이)
저금통 속 동전은 연인 간에 믿음이 생겼던 경험과도 같아서 하나하나 쌓일수록 저금통의 신뢰도는 차곡차곡 늘어간다.
나는 그 저금통을 채우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 이유는,
질투가 많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질투가 어엄청 많은 편인 것 같다.
그런데 질투의 종류가 좀 희한하다.
물건이나 돈, 다른 사람의 성공 등과 같은 것에는 질투가 안 난다. 그래서 SNS를 하면 상대적 박탈감이 든다는 친구의 말에 공감하지 못했다.
다만 최근 집을 샀다는 친구의 소식을 듣고
"어머, 너무 축하해!"라는 말과 함께 몇 초 후,
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 우울해지긴 했지만, 이내 다시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그 집을 장만하기 위해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한 친구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경외감이 들었다. 내 친구는 축하받아 마땅하다.
이렇게 각종 시험이나 재력처럼 눈에 보이는 지표가 매겨지는 것들에는 별로 질투심이 생기지 않는다.
누군가의 외모나 성격에 있어서도 '저 사람 저 부분이 참 예쁘다, 멋지다'라고 내가 생각하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감탄할 수 있을 만한 마음의 여유 공간이 있다.
그런데 그 여유롭던 공간이 갑자기 무제한으로 좁아지는 시점이 있다.
그것은 측정값을 매길 수 없는, 남자 친구의 관심과 사랑이 나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 향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과장을 조금 보태어 심장이 발랑거리고 눈앞이 깜깜해진다.
희한하게 남자 친구가 아닐 때는 그런 감정이 1도 없다가, 사귀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어떻게 갑자기 소유욕이 생기는지 모르겠다. 가끔은 스스로도 피곤해서, 질투라는 감정을 꺼버릴 수 있는 스위치가 어디 달려있었으면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민익씨는 가끔가다 나에게 악의 없이(!) 그러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
디즈니월드로 여행을 갔을 때 엄청나게 피곤해하며 나하고는 한 마디도 하지 않다가, 놀이기구 옆 자리에 우리와 함께 탔던 여자가 말을 걸자 희희낙락하며 즐겁게 이야기를 하던 모습이나, (플랫폼으로 돌아와 내리기 직전에는 둘이 양손을 번쩍 들고 "예~"하며 환호성을 지르기까지 했다. 순간 나는 기구에서 내리는 민익씨의 엉덩이를 발로 뻥 차 버리고 싶었다.)
민익씨네 어머님 집에서 형제들, 그리고 그들의 여자 친구들과 모여 게임을 할 때, 나는 제쳐두고 동생의 여자 친구 옆에 앉아 다정하게 게임하는 방법을 알려줄 때, (영어로 된 상식 게임이어서 내가 하기에 어려웠다. 결국 나는 그의 곁으로 쪼르르 달려가서 도움을 요청했다.)
오피스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민익씨가 1등 선물인 티브이에 당첨되었을 때 테이블로 들어오면서 내가 아닌 다른 여자 직장동료에게 볼뽀뽀를 한 뒤 나에게는 하지 않고 내 옆에 그냥 앉았을 때(물론 그 직장동료와 이상한 사이는 아닌 걸 알지만 정말 민망했다.)
그때마다 나는 맥박이 빨리 뛰면서 피가 거꾸로 솟고, 땅이 푹 꺼져서 한 없이 빠져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그 자리에서 당장 빠져나와 집에 가고 싶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을뿐더러, 그렇게 한다 해도 두고두고 곱씹으며 점점 더 화가 날 것을 알기에, 생각을 정리하고 하루가 가기 전에 그에게 털어놓는다. 가끔은 이야기를 하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나올 때도 있다. (ㅠㅠ)
사실 내게 상대방이 누구냐, 정작 그가 어떻게 행동하냐는 중요하지 않다. 상대의 진심은 도저히 내가 알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에, 그저 내가 질투라는 감정을 느끼면 그만이다. 결국 그 감정의 원인은 내 안에 있는 것이다.
내가 나를 못 믿는 것은 아닐까?
내가 나에게 자신이 없는 건 아닐까?
상대방이 아무 데도 보지 못하게 하고 무작정 나만 바라봐주길 바라는 것은 내 욕심이 아닐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타인을 향한 친절함은 민익씨보단 내가 더 지나치다.
연애 경험도 민익씨의 전무함에 비하면 내가 더 많다.
더해서 고백하자면,
디즈니월드에서 피곤한 민익씨는 탑승한 놀이 기구(롤러코스터를 타면서 사격을 하는 기구였다.)의 사용법을 몰라서 셋 중에서 꼴찌를 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동안 민익씨가 너무 말이 없자 짜증이 나서 나 몰라라하고 혼자 게임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때 옆자리 여성 분이 그에게 힌트를 알려줬고 그는 1등이 될 수 있었다. (승부욕에 눈이 먼 남자와 짜증+질투심에 눈이 먼 여자의 대환장파티라고 할 수 있겠군요.)
할로윈에 민익씨 아버님 댁에서 민익씨의 형제들과 펌킨 카빙(호박을 파내고 얼굴을 만드는 이벤트)을 할 때 나는 민익씨를 제쳐두고 그의 잘생긴 남동생 닉의 곁에서 작품을 도운 적이 있고,
민익씨의 사촌인 저스틴을 만났을 때, 그에게 여러 번 "오늘 멋져 보인다!"라고 칭찬을 던졌다. (민익씨가 "오늘 예쁘다!"라는 말을 내 곁에서 나 아닌 누군가에게 여러 번 했다면 나는 분명 화가 났을 것이다^^;;;)
그가 질투가 많은 타입이었다면 이 외에도 자잘하게 내가 신경을 거스른 부분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도 가끔 인지하지 못한 채로 주변에 지나치게 친절해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민익씨는 질투를 하거나 삐지지 않고, 쿨하게 넘기거나, 혹은 대놓고
"자기야~ 어떻게 나 말고 얘한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라고 장난스럽게 말한다. (진심으로 이건 내가 한 수 배워야 한다.)
내가 연락을 안 받아도 바쁘겠거니 하며 이해해주고, 남사친을 만난다고 해도 조금 신경 쓰는 눈치긴 하지만 나를 믿는다며 쿨하게 보내준다. (다만 클럽만큼은 싫어한다. 너는 믿지만 거기 있는 남자들을 못 믿는다나... 이건 한국말로만 들어 본 말인데, 만국 공통 마인드인가 보다.)
전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나서야 그가 얼마나 믿을만한 사람이었는지 깨달았다. 그런 일을 또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다.
요즘은 민익씨가 친구와 클럽에 가든 술집에 가든 걱정하지 않는다. 가끔 연락을 빼먹어도 이제는 웬만하면 그만한 이유가 있겠거니 한다. 우리의 돼지 저금통은 그 정도 채워졌다.
무작정 그의 연락을 기다리던 나는 이제 사업 준비도 하고, 책도 읽고, 북클럽에도 나가고, 봉사활동도 하며 바쁘게 지낸다. 일부러 바쁘게 지내는 것이 아니라 나의 발전과 흥미에 관련된 일들이다 보니 더욱 즐겁다. 그와 오랜만에 연락을 하면 해 줄 이야기도 많다.
장거리 연애는 그에게 비정상적으로 편중되어 있던 내 머릿속을 정리하도록 도와주고, 내 삶을 온전히 살아가며 나를 더욱 사랑하게 해 주고 있다. 나는 곧 죽어도 씨씨는 안 한다며 무진장 바쁘게 돌아다니며 열심히 살던 대학생 때 이후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다.
민익씨가 다시 내 곁에 온다면,
나는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사람처럼 그를 사랑하고, 진심을 다해 믿어주며, 그를 사랑하는 만큼 나 또한 사랑해주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요즘은 불교신자도 아닌데 법륜스님의 영상을 많이 봅니당. 마음이 편-안 해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