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이 게으르다는 말은 사실일까? 성미급한 한국인의 분노폭발 크리스마스
나는 민익씨에게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디자인의 목걸이를 선물 받은 이후로 트라우마가 생겼다.
기념일이 되면 민익씨에게 슬그머니 선수 치는 질문을 던지는 버릇과 함께 말이다.
이 말은 네게 갖고 싶은 걸 사 줄 테니 나도 내가 갖고 싶은 걸로 사달라는 의미다.
"글쎄. 자기는 뭐 갖고 싶은데?"
아싸. 걸렸다.
"응. 글쎄... 한 번 생각해볼게! 자기도 한 번 생각해봐."
민익씨에게 목걸이가 맘에 들지 않았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는 진심으로 원통해했다.
8자 모양의 기다란 펜던트에 커다란 진주알이 박힌 목걸이가 도대체 왜 마음에 안 드는지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마음에 안 드는 게 아니라, 정말 고마운데 그저 내 스타일이 아닐 뿐이야. 내가 패션에 있어서는 좀 까다로워서."
"... 그거 그냥 변기통에 흘려보내지 그랬어. 혹시 아직 갖고 있으면 내가 강물에다 집어던질게!"
민익씨가 분개하며 말한다. 미국식 개그는 이런 식이다. 비꼬는 듯한 느낌의 살캐즘(Sarcasm, '빈정대는'과 비슷한 뜻)을 터득하면 미국인이 구사하는 유머의 50퍼센트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너무 높은 구두를 보았을 때,
이 같은 느낌이다.
아재 개그도 소수 마니아 층에게 극도로 사랑받는 것처럼 살캐즘도 토종 한국인인 나에게는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렸다. (아재 개그는 광팬이다.)
흔히 말하는 미국의 블랙 코미디도 일종의 살캐즘이 녹아있는데 이 개그에 적응하고 웃기다고 생각하기에는 시간이 좀 걸린다. 살캐즘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지만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개그 스타일이기도 하다. 나는 가끔 이 개그를 구사하기 위해 애를 쓴 뒤 '흠... 미국인 마인드가 되었는걸...?' 하며 괜히 혼자 으쓱해하기도 한다.
어쨌든 민익씨가 준 선물은 그렇게 그의 트라우마가 되었고, 그 이후 이 남자는 최대한 내가 원하는 선물을 사주기 위해 노력한다. 미안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지만 그가 준 선물을 오래도록 사용하고 싶다는 진실을 앞세워 나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그 와중에 반전인 사실은 민익씨도 그동안 내가 준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선물은 상대방 몰래 서프라이즈를 해주는 거라고 주장하던 그 또한 갖고 싶었던 선물을 고민하고 말해주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킨들이 갖고 싶어."
도통 책을 안 읽는 그가 갖고 싶다고 한 것은 전자책을 읽을 수 있는 기기이다. 의외다.
"책 읽으려고?"
"응."
"오, 무슨 책 읽게?"
"헌터 X 헌터"
만화책이다.
나는 책을 읽는 걸 좋아한다.
외할아버지는 작가셨고, 엄마도 책을 좋아하셔서 우리 집에는 어릴 때부터 내 책이 많았다. 덕분에 어려서는 글도 쓰고 시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여기저기 실리기도 하고 창의적으로 살았다. 그런데 점점 나이를 먹을수록 스스로의 역량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남들과 비교하고, 그들에 비해 내 솜씨가 한없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뒤늦게 시작한 것이 브런치에 글쓰기인데 여기까지 오게 될 줄 몰랐다.
아무튼 만화책을 본다는 민익씨의 소망을 들어주기 위해 내 소망 또한 이야기했다.
100불 남짓의 귀여운 부츠를 봐 둔 것이 있다.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며 모든 물건을 버리다 보니, 겨울용 신발이 없어서 종종 추위에 발가락이 얼어붙는다.
그렇게 우리는 크리스마스 선물에 대해 합의를 봤다.
그리고 나는 한 가지 더 요구 사항을 덧붙였다.
손편지 보내기는 구독자 분이 제안해주신 장거리 연애 아이디어다. 다시 만나기 전에 로맨틱하고 아날로그적인 그 아이디어를 실행해보고 싶다.
그런데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한참 지나고,
이윽고
새해가 밝아도
내 선물은 도착할 생각이 없다.
민익씨는 편지 쓰기가 귀찮아서 내 선물을 보내는 것을 계속 미뤄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글쓰기를 싫어한다. 책 읽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철저한 이과 머리에다 영상을 위주로 사는 사람이라 그런지 글 쓰는 것에 엄청난 부담이 있는 것 같다. 대학교 때는 영어 숙제로 에세이를 써 가는 게 있으면 무조건 끝까지 미루다가 대충 몇 줄 써 가거나 안 써갔다고 한다.
비통하다.
편지를 구구절절 써달라는 것도 아니고 오리 발바닥만 한 카드에 몇 줄 써달라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란 말인가.
기분이 좋지 않다. 남친 덕후력이 점차 떨어지고 전투력이 덕후력 하락치의 제곱으로 상승한다.
나는 내 선물 진행상황에 대해 매일매일 물어야 했다.
"오늘은 부쳤어?"
"오늘은?"
"오늘은?"
질문을 던지는 날짜의 일 수만큼 나의 분노 게이지가 올라간다. 엄청난 압박수사에 불안해진 민익씨가 드디어 택배를 보냈다.
하지만 중간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나의 선물은 오랜 시간 동안 오지 않았다.
위장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포효를 꾹 참고, 또다시 그에게 서늘한 조언을 건넨다. 나는 스님도 아닌데 죽으면 사리 비슷한 것이 나올 것 같다.
... 민익씨는 어디다 전화 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한 성향 때문에 그는 자기 방에 있던 에어컨에서 탱크 소리가 나 잠을 이루지 못하면서도 한 달을 버텼고, 한 날은 부엌에 바퀴가 나와서 그의 방만 빼고 온 집안을 점령할 때까지 그대로 두었다.
변기가 고장 나서 3분 동안 물 내리는 레버를 누르고 있어야 할 때도 그랬고, 택배는 환불하기 귀찮아해서 마음에 들지 않아도 갖고 있거나 필요하다는 사람이 가져가도록 한다. 물론 그 사람이 직접 집에 와서 가져간다는 전제 하에 말이다.
인간이 이렇다 보니 바퀴벌레 소동 때는 벌레를 죽도록 무서워하는 내가 도저히 못 참겠어서 바퀴 죽이는 약을 손수 주문해 집안 곳곳에 바르며 관리인에게 직접 말씀을 드렸고, (이건 후회하고 있다. 그가 직접 하도록 시켰어야 하는데... 미덥지 않아서 내가 두 팔 걷어붙이고 꼼꼼히 했다. 쓰면서 생각해보니 다시 후회되지 않는다.) 그가 환불하지 않고 갖고 있던 물건들은 내가 가져다 팔았다.
나의 크리스마스 선물도 내가 직접 미국 우체국에 전화해서 행방을 찾아야 할 판이다.
내가 받고 싶었던 것은 단지 부츠와 사랑과 정성이 묻어나는 손 편지 한장일뿐인데.
너무 열 받고 화가 나서 그에게 폭탄선언을 했다.
"나 선물 받을 때까지 자기 선물 안 보낼 거야!"
내가 생각해도 정말 유치하다.
나는 선물 이야기가 오가자마자 그가 갖고 싶어하던 킨들에 추가로 한국의 특산물(? 과자나 자잘한 것들)을 손편지와 함께 택배로 보낼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 늑장을 부리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니 그럴 가치가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인가 싶어 서러운 눈물이 출렁출렁 차오른다.
거기다 대고 민익씨가 눈치 없이 웃으며 한 마디 한다.
"내 선물을 인질로 삼는 거야?"
이 정도면 민익씨는 우리가 장거리인 것을 감사해야 할 시점이다. 허용적 체벌 감이다.
"응. 어떻게 된 건지 우체국에 전화해 봐."
"알겠어."
드디어 위협을 감지한 그가 대답한다.
다행히 며칠 전, 드디어 선물을 받았다.
대망의 기다리고 기다리던 손으로 쓴 카드도 들어있다. 이를 받기까지 얼마나 천고의 기다림을 거쳤던가. 서러운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카드의 생김새가 지난번 크리스마스에 받은 것과 똑같다. 자초지종을 물으니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 문구점에 나가서 카드를 사기가 귀찮아 아마존으로 100장짜리 카드를 주문한 것이다.
"그럼 앞으로 크리스마스마다 이 카드만 받는 거네?"
"응. 영원히 그 카드만 받게 될 거야."
브라보.
이 남자는 어떤 것을 상상해도 그 이상을 보여준다.
아름다운 장거리 아이디어를 제안해주신 구독자님,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을만한 멋진 로망을 무참히 스릴러 탐정 수사극으로 바꿔서 죄송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