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파동을 기억하는가
겨울 동안 너는 다정했었다
눈이 흰 손이 우리의 잠을 어루만지고
우리가 꽃잎처럼 포개져
따뜻한 땅 속을 떠돌 동안엔
봄이 오고 너는 갔다
라일락꽃이 귀신처럼 피어나고
먼 곳에서도 너는 웃지 않았다
자주 너의 눈빛이 셀로판지 구겨지는 소리를 냈고
너의 목소리가 쇠꼬챙이처럼 나를 찔렀고
그래, 나는 소리 없이 오래 찔렸다
찔린 몸으로 지렁이처럼 기어서라도
가고 싶다 네가 있는 곳으로
너의 따뜻한 불빛 안으로 숨어 들어가
다시 한번 최후로 찔리면서
한없이 오래 죽고 싶다
그리고 지금, 주인 없는 해진 신발마냥
내가 빈 벌판을 헤맬 때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우리가 꽃잎처럼 포개져
눈 덮인 꿈속을 떠돌던
몇 세기 전의 겨울을.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 최승자
내가 사는 곳은
온 동네가
지금 백일홍이다.
무더위에
불꽃같이 핀 꽃을 보니
왜 이리 청승시려운지.
동네를 한 바퀴 도는 내내
책 속에 얼핏 읽은 최승자 시가 머리에 맴돌아
집에 들어와서 써 보았다.
노안이 좋다
그리고 지금, 주인 없는 해진 신발마냥
내가 빈 벌판을 헤맬 때
청파동을 기억하는가..에서
내를 네..로 바꿔 읽으니 말이다.
암만,
주인 없는 해진 신발마냥
네가 빈 벌판을 헤맬 때
니가 청파동을 기억해야지!
사랑에서
권력을 쥔다는 건..
덜 사랑하는 것이고
덜 결벽한 것이며
덜 충실한 것이다.
그래서
백일홍마냥 붉은
청승시인이 못되고,
백일홍 사는 어귀에
동네아쥠이 된 나는..
탁월한 선택을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