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에 대한 빅데이터가 없다면
오랜만에 볼만한 드라마가 생겼다.
남배우들은 연령대별로 잘 생기고, 다양하게 매력 있으며,
여배우는 예쁜 척도, 착한 척도, 센 척도, 푼수인척도 안 한다.
이진욱이 뷰티인사이드와 나인의 혼합형으로 나오니, 매력 1 + 매력 1이다.
연기변신이 어쩌고 저쩌고는 잘 생긴 얼굴로 돌아와 준 것만으로 감사한 이진욱 앞에 당분간 닥치기로 한다.
아나운서 강주연 역할의 남배우와 연하남 피디도 각자의 준조연으로 성공적이고, 캐릭터 또한 잘 잡았고,
이쁜 줄은 모르겠지만, 연기를 제대로 할 작정인 신혜선에게는 박수를 보낸다.
무엇보다 주제가 너무도 좋다.
삶에는, 누구의 삶에도, 아무리 애써도 가지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또한, 삶에는, 누구의 삶에도, 결국은 잃어야하는 사랑의 대상들이 있다.
모두 그 뻔히 보이는 결과를 향하여 뚜벅뚜벅 걸어가고, 결국, 예외없이 잃는다.
우리는 그 상실 앞에서 서로 덜 아픈 척하는 게,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는 게
성숙되고, 승리하는 걸로 간주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사랑하는 가족을, 사람을, 대상을 잃어도,
타격 없이 잘 견디고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가길 강요당한다.
그래야 성공한 것이고, 올 바른 것이고, 어른스러운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열심히 살고, 앞으로 앞으로만 나아가면, 자꾸 걸어 나가면,
지구만 둥글뿐이지, 도대체 거기에 무엇이 있다는 건가.
슬픔은 잦아드는 것이지, 뚝 그쳐지지 않는다.
애도는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보내기 위해, 돌이키고, 생각하며 그 자리 그대로 두고 천천히 시간을 들이는 일이다.
사랑의 대상이 사라진 자리는 누군가로 무엇인가로 부지런히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그 빈 공간이 익숙해지는 거 아닌가.
그렇게 익숙해지다 보면,
또 누군가를 위해 마음 한 자락 공간이 생기도 하고 말이다.
대본에 나온 말 중에
기억의 대부분을 잃어서, 실패의 빅데이터가 없으니, 자신감이 넘칠 달까..라는 부분이 있다.
맞는 말이고, 맞아서 아픈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실패의 빅데이터를 축척하느라 반세기를 살아보니,
찐 자신감은 실패의 빅데이터도 이기더라고.
자신감도 진짜만 남고, 껍데기는 가더라는 걸, 갈챠주는 게 또 세월님이시다.
제대로 된 대본과 기획과 연출이 좋고.
위트와 재치가 넘쳐 보는 내내 재미있다.
이런 주제를 폼 잡고, 심각하고, 헷갈리게 그리면,
시청자 기만 털리고, 역시 피하고 싶은 이야기라고 가스라이팅만 당하거든.
주연급 연기 좋고, 어느 구석에도 연기 구멍이 없으며, 반전도 미리 까는 자신감 또한 대단하다.
시청자 뒤통수 갈기는 반전에 반전에 반전은 사실 하수 작가의 허튼수작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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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이기세로나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