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한 개새끼에서 연진이의 글로리까지
보는 내내, 시선이 가던 인물은 하도영이었다.
혜정이는 나이쓰 한 개새끼라고 평했는데,
동은이는 왜 하도영을 연진이의 글로리라고 칭했을까 하고.
시즌1이 혜정이가 본 하도영을 설명한 에피들이었다면,
시즌2는 동은이가 본 하도영에 대한 평가에 대한 답들이었다.
정의니, 사랑이니, 명예니,
이런 듣기 좋고, 부르기 좋은 대의들은 너무도 연약하여 홀로 서기 힘든 이름들이다.
그래서 당사자만의 문제로 내버려 두면,
오직 이익으로 똘똘 뭉친 조직적인 양아치 반의어에 백전백일패를 당할 뿐이거든.
끊임없는 시선도 주어야 하고,
내 일 아닌데도 나서 줘야 하고,
먹고살기 바쁜데도 십시일반 해줘야 하는 참 손이 많이 가는 것들이다.
더 글로리에서 진실을 마주하고 난 후의 하도영의 반응은
재벌이라는 아주 비싼 우산에 가려져 있을 뿐,
실상 보통 사람들도 보여 반응과 다르지 않았다.
보통 사람들은 지킬 게 없을까?
자기가 선택한 결혼이고, 아이의 엄마였고, 십 년 세월을 함께 한 삶.
내가 의도하지 않았고, 저지르지 않았지만, 실제 사실이 어찌 되었건 유지하고 싶을 것이다.
한 청년이 이성적 호감을 느끼고, 사랑하고 결혼을 선택하는 과정들은,
아무리 계급사회라 해도, 그 그룹 내에서 이뤄진다면, 그리 논리적이지 않다.
내 마음도 그 사람 마음과 비슷하려니 막연하게 생각할 뿐,
살면서, 가치관 철학 다른 곳의 행실이 어떨지 그리 세밀하게 따지지 못한다.
그래서, 하도영이 보이는 변화의 과정들이 알아도 무척 아픔의 결과였다.
그 아픔은 결론적으로 더 글로리에서 유일하게 캐릭터가 변한 인물이 되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박연진에게 윤소희의 주소를 주면서, 동은이가 요구한 것과 같은 요구를 하는 장면도 그렇고,
동은이가 삼각김밥을 먹던 편의점에서, 홀로 서서 먹어보던 삼각김밥 씬들도 그렇고.
동은이가 처음부터 팩트가 아니라, 사람으로 다가 간 게,
남의 삶을 알 필요도, 이해할 필요도 없었던 한 사람의 시선이 변하게 한 것이다.
우리도 그러하다.
인생의 어느 시기가 지나면, 내 삶과 일상이 충분히 복잡해져서,
남의 삶을 굳이 알려고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돈이 많건, 적건 말이다.
동은이는 여정에게 복수에 필요한 1프로가 되어준다고 했는데,
실상은 그 1프로는 천지에 깔려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정의니, 명예니, 억울함의 해소니...
이런 힘없고 나약하고 게으른 단어들은 끊임없는 1프로를 보태야 숨 쉬거든.
홀로 우두커니 축구장에서 사람들의 수군거림 속에 서 있는 예솔이를
하도영이 불러 안아 주는 장면이 있었다.
지금 일어나는 일들 중에 그 어떤 것도 네 잘못이 아니라면서.
세상에 모든 피해자들에게 대한 말들 같았다.
주의를 환기시키고, 사회를 주목시켜서, 변화를 이끌어내고,
하도영 같던 사람들을 일깨운..
김은숙작가에게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