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는 누구나 하는 것
작가가 이 드라마를 청불로 등급을 받은 이유를
사적인 복수를 담고 있어서라고 설명하는 걸 들었다.
이제야 배우삘이 나는 거 같은 송혜교도,
물 만난 역할에 노난 임지연도,
나이스한 개새끼 같은 임지연남편 배우의 섹시함도..
잘 짜인 각본, 매 끼니 먹는 삼각김밥처럼 바삭하니 건조한 인물들,
시종일관 무채색인 화면들 중에, 무심하게 아름답던 사계를 담던 공원의 바둑판 정경들도..
다 뛰어넘어, 내 마음에 남는 멘트는 새삼스런 '사적인 복수'라는 단어였다.
맞았다.
적어도 우리 사회에선 사적인 복수는 안 권하고, 금하고, 터부시되고,
아무리 그래도 그라믄 안 돼.. 였던 그런 것이었다.
법률이 '최소한'을 보장하고,
법원이 딱히 정의는 아니라도, 그 비슷한 코스프레라도 할 때,
법과 원칙을 운영하는 엘리트가 그 대상이 되는 국민들을 살피고,
민의와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고자 노력할 때,
아니 아니, 다 필요 없이 그 적용과 처벌에 공정과 공평에 최선을 다 할 때,
기득권은 기득권으로서 권위를 유지하며, 사적인 복수는 그냥 미친 짓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예전의 드라마를 보면, 피해자 말고도 그 누군가가 사건들이 같이 파헤치고 있었다.
경찰이나, 검찰이나, 탐정이나, 사건뒤에 감춰진 억울한 사연에 공감하고,
그 억울한 사연의 주인공이, 가해자가 피해 간 법의 올가미에 대신 들어갈까 봐. 막으려 애쓰며, 같이 뛰었다.
그런 드라마의 플롯은 요새 없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다는 건, 공감력이 없다는 것이고, 공감할 수 없는 스토리는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기존의 대세, 기득권이 가진 곤고한 논리에 편승해서,
힘없는 피해자를 능동적으로 혹은 수동적으로 농락하기는 쉽다.
익숙함은 그것이 개소리일 때에도, 그렇게 귀에 진리스러웁게 들릴 수 없고,
같은 말을 읊조리면서, 주문처럼 저런 일은 절대로 내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외우는 거 같거든.
더 글로리는 능력 있는 작가가 '아무리 그래도... 피해자가 그러믄 쓰나'라는 클리쉐를,
사적인 복수는 잘해도 결국 너 자신마저 파괴시킨다라는,
기득권의 클리쉐를 허물어 뜨리는 새로운 서사를 선 보인 것이다.
와신상담대신 김밥먹방으로 건조함을 유지하는 동은이가,
맞으면서도 여전히 웃을 줄 아는 현남이,
구원이자 파멸로 다가온 동은을 마주한 하도영이,
부디 사적이 복수에 성공하는 서사를 이뤄주길 김은숙 작가에게 바란다.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우리 집 막내아들로 등급을 강등시킨,
용두사망의 대명사 재벌집 막내아들 작가처럼 망하지 말고 말이다.
(일개 사원은 회귀해서, 성공을 누리며, 자신이 원하던 새로운 재벌로 살아가면 어디 덧나나.. 호접지몽이 뭔가)
개인적으로 바람은,
극 중 마지막은 다 잃은 연진에게,
감옥에서 골고루 먹어 화색이 돌고, 날마다 웃음꽃 피어 깔깔거리는 동은이,
매주 옥중서신을 보내는 장면을 보는 것이다.
연진아~자니~~ 연진아~눈이 오네~
또, 다른 바람은 이런 서사가 구축되어서,
앞으로 드라마마다 죄짓고 잘 살던 그들에게
자니~를 시전 하는, 너만 잊은 피해자의 서사가 가득 차길.
법 말고, 법원 말고, 사법체계 말고, 사적인 복수를 찾는 이들이 많아지면,
법도 먹고 살라믄, 간헐적이나마 제정신 들어 뭔 생각을 좀 하겠지.. 하는 헛된 바람도 추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