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슈 여행기
숨이 탁 트였다.
며칠 전 3박 4일 일정으로 일본을 다녀왔다. 코로나 이후 첫 해외여행이니 못해도 3년 만의 출국인 셈이다. 감회가 새로웠다. 비행기로 한 시간이면 가는 이웃나라인데도 코로나에 꼼짝없이 발을 묶였던 지난날을 보상받겠다는 마음으로, 전날 밤부터 공항에 가서 밤을 새웠다. 비행기 시간은 오전 9시였기 때문에 그럴 필요는 전혀 없었다. 다만 제대로 만끽하고 싶었다.
인천 공항에 앉아 밤을 새우고 있자니 여행을 자주 다녔던 20대가 생각났다. 내 돈으로 비행기표를 끊고 숙소를 예약하고 내 손으로 일정을 짜는 자유여행이란 걸 처음 해본 뒤로 나는 그 재미에 푹 빠졌었다. 타지에서의 자유여행이 주는 완연한 '자유'에 푹 빠졌던 게 더 맞는 말일 거다. 아무도 내 이름을 모르고 내가 쓰는 언어를 모르는 곳에서 하늘과 구름, 풍경을 보고 있으면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그 자유를 위해 학기 중이면 언제나 아르바이트를 한두 개씩 하고 있었다. 학기 중엔 벼르고 벼르다가 방학하면 곧장 출국을 했다. 돈이 많지는 않아서 멀리, 오래는 못 갔지만 덕분에 일본은 한 때 반년에 한 번씩 제 집 드나들듯 했다. 졸업하고 취준할 때도 돈을 백만 원 남짓 모으면 싸들고 외국으로 포로롱 날아갔다. 부모님께 말하고 가진 않았지만 부모님도 나의 방랑을 대강 눈치챘던 듯하다. 언젠가 엄마가 지나가는 말로 너는 그렇게 사는 게 행복하냐 물었던 적이 있다.
우당탕탕 패키지
이번 일본 여행은 자유 여행으로 가진 못했다. 바쁘기도 했고 일본 비자 면제가 풀리지 않아 패키지 상품으로 결제했다. 불과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비자 면제로 자유 여행이 허용되었으나 구태여 자유여행으로 바꾸진 않았다. 패키지여행은 버스를 대절해서 이리저리 데려다주는 장점이 있고, 규슈는 관광지가 이리저리 분포해서 패키지가 유리하다고 생각한 탓이다.
패키지여행은 아무래도 단체를 받아주는 식당을 예약하느라 밥도 별로고, 여행 시간표를 따라야 해서 여행 내내 시간이 촉박하지만 2일에 걸쳐 구마모토 성과 바바 죠사이엔, 아소산 전망대, 다이칸보, 이케야마 수원지, 쿠로가와 온천마을, 유후인을 모조리 구경했다. 아마 우리가 스스로 버스와 기차를 알아봐서 돌아다녔다면 이렇게까지 많은 곳을 가보진 못했을 것이다. 오랜만에 가는 여행을 패키지로 고른 건 잘한 선택 같다.
게다가 패키지는 (전에 다른 글에도 썼듯) 사람들이 모여서 다니는 여행이기 때문에 사람들, 관계의 양상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나와 내 친구가 함께 한 패키지에는 자매, 모녀, 절친한 사이의 아주머니들, 아저씨들이 있었다. 연령대는 패키지여행이 다 그러하듯 지긋했다. 덕분에 나와 내 친구가 거리의 가게에서 아이스크림 하나만 사 먹어도 "아이고, 젊은 사람들은 역시 다르네"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서른을 넘기고 마음속에 애늙은이가 자꾸만 커져가는 나는 그런 말이 싫지 않았다.
마음속의 애늙은이를 키우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제 나는 20대가 아닌데 이런 것을 해도 될까? 입어도 될까?' 따위의 생각이 자꾸만 덩치를 키우며 움츠러든다. 그런 나에게 깨달음을 준 자매가 있었다. 자매의 나이는 정말 어리게 쳐줘도 40대 이상으로 보였다. 그 자매는 옷차림만 뚝 떼서 20대 사이에 섞어놔도 이질적이지 않을 정도로 트렌디했다. 그들은 '나이 먹고 주책맞게 저런 옷을 입었네'로 보이는 게 아니라 세련되고 멋져 보였다. 나이는 마음으로 먹는 거란 걸 다시금 깨달았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할 용기만 있다면 우리의 오늘은 젊고 푸르른 날이 되는 것이 아닐까.
나와 내 친구는 자유 일정인 3일 차에 후쿠오카의 커다란 쇼핑몰을 가고, 100년 넘은 디저트 가게를 찾았다. 일본어는 하나도 못하는 친구와 더듬더듬 글자만 읽을 줄 아는 나였지만 사람들은 친절했다. 야무지게 야식을 먹고 면세 쇼핑까지 훌륭히 마치고 우리는 한국에 돌아왔다. 4일 만에 한국에 돌아와야 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여행은 돌아가야 할 곳이 있기에 훨씬 자유롭고 아름답다. 일본을 다녀온 추억으로 나는 또 몇 달을 견뎌낼 거다. 그리고 차근히 돈을 모아서, 내 친구 Y가 있는 독일로 또 떠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