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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밈혜윤 Oct 16. 2021

혼여행, 그리고 사람을 아낀다는 것

언젠가 여행길에서 느낀 것

 여행을 퍽 좋아하지만 혼자 여행을 한 적은 두 번 뿐이 없다. 두 번의 혼여행을 통해 깨닫고 느낀 건 궤를 같이 하는 것이었다. 사람이 사람과 함께 한다는 것, 그리고 아낀다는 건 불편을 사랑하는 것이다.


 인생의 첫 혼여행은 제주도였다. 운전 면허를 딴 직후에 겁도 없이 차를 달랑 빌려놓곤 제주도로 떠나버렸다. 남들보다 오래 다닌 대학교의 졸업 전 마지막 기말고사를 앞둔 때였다. 대학을 졸업하면 내가 또 언제 이런 공부를 하겠냐며 무려 16학점을 이수하던 치기 어린(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미친) 학생은, 수강신청 때와 다를 바 없는 치기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전공 서적, 프린트, 노트 따윌 함께 챙겨넣은 가방과 차키를 받아든 첫 느낌은 자유로움이었다. 누구의 눈치 볼 것 없이 나 혼자 가고 싶으면 달리고 먹고 싶으면 먹고 싫으면 안 먹어도 그만이었다. 그렇게 무한한 자유는 꼭 처음인 것 같았다.


 자유로운 마음과 별개로 차에 시동을 걸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11월의 제주는 이미 눈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면허를 막 딴 사람이 눈보라 속을 헤집고 운전하기까지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한참의 마음 준비가 끝나고, 작고 낡은 레이와 함께 제주도에 해변이란 해변은 다 휘젓고 다녔다. 묵었던 리조트에 사는 강아지와 눈 속을 산책하기도 했고 아무 노력 없이 숨이 턱 막히는 보랏빛 노을을 얻기도 했다. 처음 이틀은 한없는 자유와 기쁨을 누렸다.


  하지만 차차 자유로움에 반기를 드는 감정이 솟았다. 자유와 고요를 찾아 떠난 여행인데 그게 썩 좋지만은 않았던 거다. 내 온몸에 젖어드는 모순과 한기를 느끼면서 김녕성세기 해변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사람은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혼자서만 사는 것도 아니다. 혼자서도 재밌을 수는 있다. 오히려 편하기까지 하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게 좋은듯 힘겨울 때가 있다. 함께 하는 관계에 그림자처럼 따르는 것들, 시간과 돈과 감정, 약속, 때로는 내가 조금 불편하고 어색한 이야기들, 양방향이지만 왠지 내가 내준 것들이 더 크게 보이는 배려 같은 것들. 하지만 결국 방점은 힘겨움보다 좋음에 찍히는 것 같다. 남는 건 혼자서 누린 편안한 광경이 아니라 남들과 복닥대며 생긴 감정과 사건들이 많으니까. 결국 사람은 타인과 함께할 때 감수해야 하는 약간의 불편함들을 사랑하는 게 아닐까.

 

   이런 '불편함' 속에서 실은 난 행복했던 거구나- 깨달았다. 나를 찾는 사람들, 내가 찾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견딜만 했던 거였다. 내가 잘나서 혼자 행복했던 게 아니라. 보고 싶은 얼굴들이 많이 떠올랐다. 그렇게 제주도 여행이 즐겁고 충만하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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