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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밈혜윤 May 11. 2023

우리는 우리에게 닿는 이야기를 들을 거예요.

유래있는 채널

   누군가는 보고 듣는다.

   어제 팟캐스트를 함께 하는 친구들과 그런 얘기를 했다. 누가 알까 싶은 우리의 창작물을 누군가는 보고 듣더라고. 우리가 만들고 있는 팟빵/팟캐스트 창작물 외에도, 어딘가에 올려두고 우리는 까먹어버린 글들을 얼굴 모를 사람들이 읽고 위안받고 댓글을 달기도 하더라고. 그게 기쁘면서도 무서울 때가 있다고. 그런 말을 나눴다. 아무래도 각자 콘텐츠(감히 콘텐츠라고 말할 수 있을 내용물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를 만들고, 또 두 친구는 그걸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라 그런 대화를 자주 한다.


   우리가 만드는 음성 방송은 팟빵과 팟캐스트, 두 플랫폼을 통해 송출되고 있다. 해당 방송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하고 있지만 인스타그램을 통한 유입은 없다시피 하다. 애초에 우리도 인스타그램을 통해 청자를 끌어모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기존 구독자들에게 보이는 용이자 스스로를 다독이는 기록용이다. 우리는 이따금씩 우리의 일상에 대한 글을 포스팅하고 방송이 업데이트될 때 새로운 화의 소식을 알리면서, 우리의 멎지 않는 행진을 기록하고 기억한다.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할 수 없다는 걸 배웠다. 우리는, 나는 쉽게 잊는다. 어떤 걸음을 밟아 지금에 다다랐는지, 내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못했는지, 어느 날 가슴 터지도록 일렁이던 사랑과 기쁨, 눈물이 툭 터져 나오던 회한과 아쉬움 같은 것들을. 누구나 겪는 것이기에 특별할 것 없지만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에 찾아들어 기쁨과 슬픔을, 좌절과 격려를 나눠 갖는다. 사람들은 알고 보면 자신의 일상을 사랑하는 것 같다.


   멎지 않는 행진

   내가 브런치를 개설하던 때가 생각난다. 브런치 작가 승인 후 활동 계획에 나는 내 전공인 철학을 살려서 여러 작품을 리뷰하겠다는 둥, 일상을 무너뜨리는 차근하고 차분한 문제들을 탐구하겠다는 둥, 그럴듯한 계획서를 제출해서 승인을 받았다. 사실상 작품 리뷰는 거의 없다시피 하고 장소만 바꾼 일기가 가득하다. 안타깝지만 브런치 팀은 내게 속았다. 하하. 그러나 브런치를 개설할 때 했던 다짐만은 지켰다. 뚝 멈추거나 내팽개치지 않기. 천국, 아니 천국이 아니라도 좋은, 나의 도피처를 찾기. 도망으로 찾으려 들지 않기.


   어제 B는 계단을 오르며 발랄하게 말했다. "나는 결과에 연연하지 않아". 노래를 흥얼대듯이 말하는 B의 말은 우리의 계속된 행진을 예고하는 듯했다. 결과에 연연치 않는 것이 우리의 출범 약속이었다. 나는 그걸 곧잘 잊고 마음이 늙은 개의 귀처럼 추욱 쳐졌다가, 쫑긋 섰다가 하지만. 나도 짐짓 의연한 체하면서 맞장구를 쳤다. 그래그래, 댓글 하나만 달려도 기적 같은 일이야.


   기적. 무엇을 기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영화 같은 운명적인 만남이나 복권 당첨, 소소하게는 청약 당첨 따위를 기적이라 일컫곤 한다. 우리의 작고 보잘것없는(이런 표현은 함께 하는 친구들이 화를 낼지도 모르지만) 방송을 지속적으로 소비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따져보면 영화 같은 운명적 만남, 기적에 수렴하는 사건이라 볼 수 있겠다. 앞으로도 내가 덩치가 작은 기적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길 바란다. 나에게, 또 여러 감정과 글을 나누는 나의 친구들에게, 수많은 이야기가 닿길 바란다. 우리가 계속 기록하고 기억하길 바란다. 바라는 것을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


   언제든지 무엇이든지 이야기를 나누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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