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있는 채널
본 글은 팟빵/팟캐스트 송출 중인 <유래있는 채널>의 시즌4 문학 편 방송 스크립트의 일부입니다.
시즌 4 - 1화: 문학의 유래/내 인생 문학
문학이란 뭘까요? 사전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사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 시, 소설, 희곡, 수필, 평론 따위가 있다’. 문학은 우리가 상상력을 가지고 한바탕 씨름을 벌이는 모래사장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문학은, 인간의 상상력이 있었던 때, 그러니까 인간이 있었을 때부터 항상 존재해왔을 겁니다. 그리고 역시나, 문학의 유래는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최초의 문학은 신화였을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신화는 기원전 20세기경, 메소포타미아의 서사시 <길가메시>입니다. 점토판에 기록되어 있고, 소실된 점토판이 많아 완전한 이야기는 알 수 없지만 커다란 줄거리는 파악할 수 있습니다. 어디 가서 아는 체하기 좋을 정도로 줄거리를 말해드릴게요. 우루크의 포악한 왕, 반신반인 길가메시의 모험기입니다. 길가메시가 이름이에요. 포악한 왕의 버릇을 고치기 위해 신들은 ‘엔키두’라는 인물을 창조해 보냅니다. 길가메시와 엔키두는 한바탕 싸움을 벌이곤 친구가 돼요. 같이 모험을 나서는데… 여기서 이야기가 끝나면 안 되는 걸까요? 신들은 엔키두를 죽여버려요. 죽음의 공포를 갖게 된 길가메시는 혼자서 불멸의 비결을 찾아 기나긴 여정을 떠납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란 걸 깨닫고 우루크 왕국으로 돌아오는 이야깁니다.
그 다음으로 오래된 서사시는 모두 다 알고 계실, 그리고 이야기의 단편 정도는 읽어 보셨을 이야기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호메로스가 쓴 <일리야스>와 <오디세이>죠. 오디세이의 이야기는 정~말 긴데요. 어릴 때 어린이 문학 버전으로 끝까지 읽어본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기억 나는 일화는 사이렌의 유혹 뿐이네요.
문학이 반드시 웅장한 영웅들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아이소포스’라는 남자는 기원전 6세기에 아주 재미난 이야기를 만들어 들려주었습니다. 바로 ‘이솝 우화’입니다. 아이소포스는 심한 말더듬이에 노예였는데 이상하리만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재주가 뛰어나서, 주인이 문제를 겪을 때마다 우화에 빗대 지혜를 빌려주었다고 하죠. 이솝 우화의 대표적인 이야기로 <까마귀와 여우>가 있습니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들로부터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이야기, 혹은 문학이란 것은 우리가 살면서 마주하는 고난과 역경, 죽음에 대한 공포를 통해 반드시 사회와 인간의 단면을 이야기하곤 합니다. 오늘 저희는 각자가 손에 꼽는 문학 인생작을 하나씩 들고 왔습니다.
한 번씩 들어볼까요?
저는 최은영 작가의 <답신>이라는 단편 소설을 들고 왔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문학은 사회의 곪은 부분을 개인의 이야기로 잘 녹여낸 류의 이야기예요. <답신>은 가정폭력을 잘 담아낸 작품입니다. 심지어 2대에 걸친 가정폭력을 다루고 있죠. 더해서 가스라이팅, 어른들이 어린 여학생을 성적으로 이용해 먹는 방식, 질 나쁜 교사의 방치… 많은 사회 문제들이 곁다리로 담겨 있습니다.
주인공은 감옥에서 조카에게 사랑과 자기 고백이 담긴 편지를 쓰고 있어요. 주인공은 언니를 학대하는 형부를 폭행한 죄로 수감되었는데, 아… 정말 너무 가슴 아픈 건 이 부분인 것 같아요. 가정폭력의 피해자인 언니는, 가정폭력의 가해자인 남편의 편을 들어요. 우리가 학대 받는 사람들에게 손 쉽게 “가족과 연을 끊으세요”, “그건 사랑이 아니에요”, 말하지만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학대를 당해서 정신이 무너진 사람들에게는 결국 가해자인 가족 말고는 돌아갈 사람이 없는 것 같은 거예요. 보통 가정폭력은 자기의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무수한 가스라이팅과 함께 이루어지니까요.
가정 폭력 이야기를 해볼까요.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여성가족부가 3년에 한 번씩 가정폭력 실태를 조사하여 발표하고 있습니다. 2022년에 발표한 결과를 보면, 2021년 8월~2022년 7월 사이에 신체적, 정서적, 경제적 폭력 중 하나라도 당한 사람의 수는 조사 대상인 9천 여 명 중에 약 700 명에 육박합니다. 그중 형사소송으로 송치되는 사건은 0.2%, 1%도 안 되는 숫자에 불과합니다. 대부분 가정 내 단순 사건으로 처리되고 있고요, 폭력을 당한 사람들이 신고하지 않는 이유는 '이 정돈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해서', '신고해도 변하지 않을 것 같아서'가 많습니다.
주인공은 조카에게 편지를 쓰고 있지만, 사실은 자기의 인생과 언니의 인생, 그리고 자기는 상상만으로 만날 수 있을 조카의 삶을 상상하고 정리하면서 혼자 읽을 글을 쓰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이 <답신>이란 소설을 읽으며 눈물을 왈칵 흘렸던 구절을 들려드리겠습니다.
“나는 어른이 된 너를 몰라. 너도 나를 모르지. 네 또래의 아르바이트생을 보면 그들이 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곤 해.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 채 카드로 결제하실 건가요, 네, 카드는 이쪽에 꽂아주세요, 네, 안녕히 가세요, 안녕히 계세요, 서로의 눈도 마주치지 않고 인사를 하지. 만약 눈앞의 사람이 너라면, 네가 나를 몰라본대도 좋다고, 그런 식으로라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생각해.”
중간의 여러 이야기를 건너뛰고 제가 생각하는 절정입니다.
“결국 찢어버릴 편지를 쓰는 마음이라는 것도 세상에는 존재하는구나. 마지막 문장을 쓰고 나는 이 편지를 없애려 해. (중략) 오늘은 5월의 따뜻하고 맑은 날, 너의 생일이야. 너의 스물세번째 생일을 축하해. 너의 이모가.”
저 말고도 다른 두 호스트들의 이야기는 팟빵과 팟캐스트에서 들을 수 있답니다. 시즌4 2화가 업데이트되면 2화의 스크립트 일부를 올릴게요.
이제부터 스크립트의 일부를 브런치에 조금씩 옮겨두려고 해요. 제가 어떤 맘으로 어떤 콘텐츠를 만들었는지 한눈에 볼 수 있게요. 소위 '듣보잡' 채널이지만 벌써 30개가 넘는 에피소드를 올렸습니다. 팔로워 수는 적지만 차근히 쌓아올린 시간들, 함께 해준 사람들이 소중하다는 사실에 무뎌지는 때가 있는데, 그게 요즘인 것 같습니다. 마음을 다잡을 시간이 되었네요.
시즌 1은 음식, 시즌 2는 패션, 시즌 3는 레스토랑... 각 시즌과 에피소드를 즐거운 마음으로 만들었지만 시즌 4 문학편은 유례 없이 즐겁습니다. 역시 사람은 좋아하는 것 하고 살아야 하나봐요. 듣보잡 브런치에 와서 이 글을 읽으신 여러분,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