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글 공모전
나의 책
2024년 12월 24일. 자비로 출판한 내 책이 인쇄소에서 집으로 배송 왔다. 브런치에 글을 연재하고, 편집자 친구와 고심해서 퇴고하고, 디자이너 친구와 의논해 가며 어렵게 만든 내 책. 내가 가장 어려운 시기에 내 마음에 한 줄기 빛을 틔워주며 나를 구원한, 내 책.
박스를 뜯는 손이 달달달 떨렸다. 그간 수많은 글을 써왔지만 책으로 묶인 내 글은 처음이었다. 겨우 뜯어낸 박스 밑에 빼곡히 담긴 내 책의 실물을 보자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부모님이 학위 논문의 실물을 받았을 때 눈물이 난다는 얘기를 했었다. 진짜였네, 생각하면서 내 책을 동물 어루만지듯 몇 번이고 쓰다듬었다.
꼬박 3년. 소중한 사람들을 주제로 한 에세이를 책으로 내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나는 각 친구의 글에 인덱스를 붙여 직접 친구들에게 배송을 다녔다. 말로만 듣던 내 책의 완성본을 받아 들고 자신의 편을 읽는 친구들은 볼을 팽팽히 올려 웃었다. 그 하나하나의 얼굴이 나를 또다시 울컥하게 했다.
“이거, 저작권 뭐 그런 거 알아봐야 하는 거 아냐?”
한 친구가 내 책을 한참이나 살펴보다가 말했다. 저작권? 내 책에 저작권?
나의 마음
웃어넘기려는 나에게 친구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농담 아니야. 너에게 소중한 사람들에 대한 기록을 모아놓는 기획이 참 좋아. 나는 누가 표절할까 봐 걱정되는데? 너한테 엄청 소중한 거 아냐?”
그런가. 친구와 한참 웃고 떠들고 헤어지려는 참에, 친구는 다시 한번 말했다. 저작권 관련해서는 꼭 알아봐.
누가 겨우 이런 걸 베끼겠어, 게다가 누구든 친한 사람들에 대해서 쓸 수 있는걸?이라고 생각했었다. 다만 그 밤 이후로 잊고 살다가도 때때로 친구의 말이 생각난다. 가끔 유달리 무겁게 느껴지는 날이면 컴퓨터를 켜서 원고 파일을 다시 열었다. 빨갛게, 파랗게 수정 표시가 더덕더덕 붙어있는 내 워드 파일들을.
누군가가, 예를 들어 매우 유명한 사람이 내 아이디어를 차용해서 책을 내고 대박이 난다면 어떨까? 안 유명한 내가 그 사람의 것을 베낀 것처럼 알려지려나. 가슴이 송곳에 찔린 것처럼 아프다. 누군가의 성공을 질투해서가 아니다. 가족과 친구와 지인을 향한 깊은 애정과 존경과 시간이 담긴 내 마음이 복사본처럼 취급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
당신의 마음
그때 나는 처음으로 저작권에 대해 ‘느꼈다’. 법률이 어쩌고, 소송이 어쩌고, 그런 건 말고. 저작권은 단순히 소유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마음과 시간을 존중하는 약속이다.
그 사실을 느끼고 나니 누군가의 노래, 글, 그림, 영감에 더욱 큰 찬사를 보내게 된다. 때로 작품은 사람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한다. 작품 너머 살아있는 창작자의 눅진한 감정이 진실되게 녹아있는 탓이 아닌가 한다.
나 역시 누군가의 작품을 가지고 내 창작물의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다. 인용도 많이 했다. 하지만 타인의 작품이나 영감을 내 것인 척한 적은 없다. 앞으로도 반드시 없어야겠다. 그건 도둑질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도둑질보다 더한 강력 범죄일 것이다. 나만 해도 그렇다. 내 책과 내 영감을 빼앗긴다면 나는 나를 구원했던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어쩌면 다른 당신도 그렇겠지요?
내가 지키고 싶은 것들을 위해, 그리고 누군가의 마음을 함부로 훔치지 않기 위해, 저작권에 더욱 기민해져야 할 필요를 느낀다. 그리고 변리사 공부를 하는 동생에게 살짝 물어보니 저작권이란 등록주의에 따르지 않기 때문에 쓰는 즉시 내게 귀속되는 것이라고 한다. 왠지 내 새끼 같은 책의 출생신고를 마친 느낌. 든든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