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이상하다 했어
성인 아드(흐)드의 발견
요즘 수면 위로 많이 올라오는 단어가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장애 - 이 글에서는 편의상 아드흐드라고 하겠다)' 같다. 아드흐드를 소재로 한 인스타 웹툰도 많고 실제로 주변에서 자신이 아드흐드가 아닐까 의심하는 사람, 아드흐드 약을 먹는 사람이 많다. 그 많은 케이스를 접하면서도 아드흐드가 내 얘기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아드흐드와 아드드(ADD)의 차이는? '과잉행동' 여부의 차이다. 아드흐드라고 하면 매우 산만한, 예를 들면 교실에서 수업 시간인데도 자리를 이탈해 돌아다니며 수업을 방해하는 행동을 쉽게 떠올린다. 그러나 아드드는 이런 눈에 띄는 문제 행동이 없다. 다만 홀로 조용히 주의력을 통제하지 못하는 형태다.
나는 학창 시절까지, 아니 첫 직장에서 일을 할 때까지 내가 아드흐드일 거라고 생각지 못했다. 나는 언제나 제자리에 잘 앉아 있었고, 공부를 잘했으며, 내가 원하는 일에 집중을 잘했다(고 믿었다). 처음 낌새를 느낀 건 전문직 시험공부를 할 때였다. 머리로는 A과목을 공부해야 함을 알았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며, 심지어는 그러고 싶었다. 그런데 자꾸 나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B를 한다거나 책에 이름표 붙이는 일 따위에 홀린 듯이 시간을 쏟았다.
그때는 속 편하게도 공부하기 싫은 사람은 누구나 딴짓을 하기 마련이니까~하고 넘겼다. 본격적으로 이상하다고 느낀 건 현재의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면서다. 현 직장으로 말하면 체계를 잡아가는 단계라서 정돈되고 확립된 절차가 부족하다. 그 말인즉슨 실시간으로 다른 일들이 쏟아지고 우선순위가 바뀐다는 뜻이다. 그때그때 제일 중요한 일로 작업 전환을 해야 한다. 거기서 모든 문제가 시작되었다.
나는 제일 중요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일, 붙잡고 있던 일에 시간을 쏟았다. 차라리 하던 걸 완료하고 다른 작업으로 넘어가면 되는데 (내 생각에) 80% 정도 완성되면 끝내지 않고 또 다른 일을 시작했다. 분명히 해야 할 일을 포스트잇에 적어놓았음에도 그 포스트잇을 어디에 두었는지 잊어버려서 해야 할 일을 까먹곤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상했다.
그럴 줄 알았다
병원에 갔다. 수년 전 우울증, 공황, 수면 장애 트리플 콤보를 겪을 때 자주 찾았던 병원이다. 나의 멘탈 이슈의 히스토리를 잘 아는 곳을 찾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선생님과 약 15분 정도의 질의응답을 했다. 선생님이 뭔가를 물어볼 때마다 내 대답은 '어... 다들 그렇지 않나요?'였다. 그는 부드러운 미소가 담긴 얼굴로 말했다. 용량이 낮은 약을 먹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가장 충격을 받았던 문항은 다음과 같다.
-시작했던 일을 잘 끝맺지 못하나요?
나: 끝맺지 못한다기보다 80% 정도 완료되면 다른 일을 해요. 거의 다 했으니까 다른 일을 하는 거죠.
-그게 끝맺지 못하는 거라는 생각은 안 해봤나요?
나: 어억?
그렇게 나는 약을 먹기 시작했다. 먼저 약을 먹고 있던 친구들의 말을 들어보면, 미미하게나마 집중력을 통제할 수 있게 해주는 약을 참을성 있게 먹다 보면 약효의 지속시간이 조금씩 길어진다고 한다. 아드흐드 또한 신경물질 재흡수에 이슈가 있는 거라서 약으로 재흡수를 도와주다 보면 몸이 습관을 들이는 것 같다나 뭐라나.
아드흐드의 약을 받아 설명을 보면 '아드흐드 또는 조현병의 치료에 쓰이는' 약이라고 되어 있다. 조현병도 아드흐드와 유사하게 신경물질 재흡수 과정에 문제가 생기는 거라서 일부 약이 겹친다는 듯하다. 나도 약사가 아니라 잘은 모르겠다만, 예전에 아드흐드가 아닌데 아드흐드 약을 먹으면 부작용으로 조현병이 발현될 수 있다던 정보를 어디선가 얼핏 읽은 기억이 났다.
어쨌든 아드흐드 약을 먹고 직장에 다녀본 지 어언 2주가 지났다. 몸으로 체감될 정도로 약이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나의 상태를 알게 되었으니 좀 더 대비를 했다. 동생이 사준 작은 체크리스트 노트에 그날그날 할 일을 열심히 쓴다. 우선순위를 매겨놓고 완료할 때마다 형광펜으로 줄을 친다. 작업하던 파일을 종료하고 싶을 때마다 '그게 일을 끝맺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내게 외친다.
무슨 마무리를 하지?
물론 약 먹는다고 갑자기 내가 초집중의 화신이 된 건 아니다. 엊그제도 파일 세 개 열어놓고 다 안 닫고 종료를 누르는 바람에 노한 컴퓨터가 오래도록 꺼지지 않았다.
근데 뭐, 이젠 안다. 그게 그냥 나의 기본 설정이라는 걸. 게으르거나 회피형이라서가 아니라, 유달리 덜렁거려서가 아니라, 신경물질 탓이라는 거지. 그런 하자(?)에도 불구하고 나는 학교에서, 첫 직장에서 일인분을 잘 했고 앞으로도 더 잘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오늘도 체크리스트에 할 일 적고, 형광펜으로 줄 긋고 그런다.
그리고 아드흐드 약을 먹기 전과 후가 그리 다르지 않다. 일 잘한다는 소리도 좀 듣고, 뭐 하나에 빠지면 깊이 몰입해서 아주 그럴듯한 관리용 파일 양식도 만들어 내고, 매우 꼼꼼함을 요하는 일에서는 앗 죄송합니다!를 말해가면서... 야근이 싫다고 입으론 말하지만 사실 일하는 걸 기뻐하면서 그렇게 산답니다. 주의력은 부족하지만, 존재감은 넘치는 걸로 대충 때웁니다.
자녀가, 혹은 자신이 아드흐드라고 해서 그렇게 질색하고 회피할 필요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