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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구원이 될 수 없다지만

(feat. K- 직장인)

by 밈혜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말했다. 사람에게 너무 기대지 마라. 사람은 너의 구원이 될 수 없어.


비슷한 말을 아주 좋아하는 친구가 또 했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뾰족한 이쑤시개로 피부를 긁어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사람을 나의 구원처로 두고 싶었던 탓인가? 혹은 내가 타인의 구원이 될 수 있다는 비대한 자의식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인가.


하지만 세상에 어른들이 영 허투루 하는 말은 없었고 어리고 쉽게 찢어지는 마음의 나는 서서히 깨닫게 된다. 나는 무엇도 구원해 줄 수 없었으며 또한 누구도 나를 깊은 늪과 작별시킬 수 없었다. 모두들 기차역에서 자신의 기차를 기다리며 잠시도 편히 딴짓을 하지 못하는 여행자처럼 서로의 곁을 잠시 서성거릴 뿐이었다.


나는 때때로 사람에게 어디까지 마음을 내주어도 될지 몰랐고 얼마만큼 용서해도 되는지 몰랐다. 누구에게 물어본들 알 수 있었으랴. 질문조차 어려운 일이었다. 서서히 사람들에게서 멀어지기를 선택했었다. 그건 편했다. 아주 잠시의 아늑함이었다.


멀어지는 일은 오래가지 않았다. 차가운 방바닥에서 냉장고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을 때, 나는 어떤 이의 빠른 말투를, 또 다른 이의 졸린 눈을 떠올렸다. 내 팔꿈치를 살며시 잡던 손가락, 기침 소리, 식당에서 부주의하게 나를 툭 차던 발. 고작 그런 게 그리워 귀 끝이 시릴 만큼 외로웠다. 그때 내가 바란 건 구원이 아니라 기척이었다.


어차피 이 그리움도 우리의 관계처럼 영원할 수 없어. 단단히 잠그려고 해도 내 귀는 자꾸 시렸다. 사람은 구원이 될 수 없어.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다시 생각하는 구원

요즘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정말 바쁘다. 출근해서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면 카톡을 할 겨를도 없이 바쁘게 일에 매달린다. 그러고 나면 오후 다섯 시쯤부터는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프다. 그러고도 퇴근 시간을 넘겨 일을 할 때가 많다. 9-6 직장인이지만 보통 8-7, 8-8일 때가 많다.


주말이면 토할 정도로 피곤하다. 언제 내가 불면증이 있었나 싶게 베개에 머리를 대면 기절하고 주말엔 오전 11시 전에 일어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글을 쓰고 팟캐스트를 하는 건 말이 안 되는데, 이상한 마음의 부채감이 있다. 운동 연재는 또 언제 하지.


사람도 마찬가지. 내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살뜰히 챙기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상당히 괴로운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나도 살뜰히 챙기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용서와 양해를 구해야 하는 걸까. 그래도 좀 더 촉촉했어야 했는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곯아떨어지곤 했다.


점점 둔해지는 기분이야. 결코 좋지 못한 기분을 그러안으면서 사는 이런 게, K-직장인의 인생일까? 겨우 이런 내가 타인의 구원자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착각했다는 사실이 믿을 수 없다. 하지만...


책상에 자꾸 젤리나 초콜릿 따위를 몰래 올려놓는 귀여운 팀원들. 회사원 A가 아닌 인간 A를 궁금히 여기는 내 질문에 성실한 마음가짐으로 돌아오는 답변. 인간 민혜윤과 내 책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들. 그런 것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구름다리가 구원까지는 못 되어도 나의 숨구멍 정도는 되어준다. 그런 거면 좋지 않을까.


나는 끊임없이 구름다리 놓기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만지작거리면서 버텨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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