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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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감각이여
회사 재취직 이후로 단순 알바하던 시절이 그립다! 를 주워섬기는 나날이었다. 회사가 이런 내 마음을 어찌 알았는지? 알바가 구해지지 않아서 알바의 일을 나갔다. 오랜만에 장착한 영업용 상냥 얼굴과 솔톤의 서비스 말투. 어르신들의 반말 공격, '아 그냥 더 줘' 공격에 제가 알바라서 혼나용ㅠ하고 '구라'를 치며 왠지 해방감을 느꼈다.
사원증을 벗고 책임감도 벗고 앉아서 프로 알바인 척 공연 프로그램북을 배부했다. 감사합니다. 즐거운 관람되십시오. 사람들은, 그 얇은 책자 하나에 그토록 기뻐하는 표정을 지었다. 오랜만이야. 고마워요, 말하는 기쁜 얼굴들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많이 본 것은. 아마 수년 후의 나는 오늘을 그립다는 감각으로 떠올릴 테지.
커피의 맛보다 공간과 서비스가 더 중요한 프랜차이즈에서 달칵달칵달칵달칵 샷을 뽑던 때가 기억났다. 필시 허접한 맛이었을 내가 뽑은 샷에도 사람들은 미소 지었다. 주문 실수라도 하면 눈물 날 것 같던 초반. 여름에 빙수 주문이 첩첩이 쌓이면 진짜 눈물 나던 기억. 겨울엔 무아지경으로 우유 데우던 기억. 점심 피크 때 아묻따 아메리카노를 백 잔씩 만들던 때가 그리운 걸 보면… 정신 덜 차렸지?ㅎ
정신을 덜 차린 덕에 나는 하하호호 회사를 재직 중인 것이 아닐까! 진짜 웃기지도 않는 얼굴로 웃을 일이 아닌 것들을 진짜 웃겨하면서 계단을 오르내리고 사다리를 타고 음료 캔을 번쩍번쩍 나르며 내가 회계팀인지 법무팀인지 설비팀인지 모를 마음으로.
인정하자. 나는 회사를 좋아한다.
때로는,
내 세상이 쾅 소리조차 없이 일만 하다가 끝날 것 같다. 적어도 2025년은 그렇게 끝날 것이다. 지구 차원에서 보면 탄소를 꿍짝꿍짝 겁도 없이 태우며 이 별을 뜨거운 종말로 보내는 아득한 짓에 온 인류가 몰두하여서. 몇 푼 되지도 않는 계좌 잔고만 쳐다보면서. 이 지구가 금성처럼 불지옥이 되어 버린다면 한낱 시스템 장난 같은 화면 속 잔고로 도대체 어찌하려고. 그러나 우리는 그런 걸 생각지 않는다.
다만 어차피 푼돈을 만지면서 불지옥 행성 열차에 탄 채로 살 거라면 즐거운 마음을 불사르며 살아야 하는데. 불사를 마음이 없는 삶은 건성 김미연보다 푸석푸석하다. 이 문장은 내 여름의 요약. 인생은 정말 한 치 앞도 모른다더니 영영 불사를 것이 없을 것만 같던 여름은 끝이 났고 이 가을은 이토록 촉촉하게 시작한 것이다.
푸석푸석한 마음으로는 쓸 것이 없었다. 푸석푸석한 마음으로는 사람들에게 보낼 미소가 없었다. 푸석푸석하고 갈라지는 마음 사이에는 물때처럼 미움, 분노, 증오가 꼈다. 미움. 분노. 증오. 그리고.... 권태감. 일이 싫었다. 가만히 천장을 보고 누워 있고 싶었다.
일이 싫었나? 회사가 싫었나? 아니면 내가? 잘 모르겠다. 그냥 건조함을 느끼는 내가 있었다. 근대 철학의 아버지 데카르트 뺨치는 문장이 아닐 수가 없었다. 나는 건조함을 느낀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여하튼 여름의 나는 그랬고, 한 자(尺, 약 30cm) 앞에서 목격한 사람들의 미소를 주단처럼 깔고 입장한 가을은 내가 권태로움을 느끼던 그 모든 것에 칙칙- 안개분사 분무기를 뿌려 되살린 것 같다.
인정하자. 나는 일을, 종종거리는 나를, 좋아한다.
이제 질문에 답해볼까요
이제 당신들께 드렸던 첫 번째 질문에 답해보자면. 그야 당연히 돈보다 중요한 것은 나눠먹는 빵 젤리 떡 같은 것과, 입천장을 인두질하는 뜨거운 꿀이 든 호떡과, 그보다 뜨거운 심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