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예술적인 제목
내 제목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야겠다. 제법 훌륭하게 지은 제목이라고 뽐내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 ‘짜쳐 보이는’ 것들은 지금 나처럼 뽐내고 으스대는 것으로부터 그 ‘짜침’이 시작된다.
오늘의 제목은 그 이름도 유명한 <007> 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를 상징하는 한 대사를 패러디한 것이다. 마티니를 주문할 때 본드는 늘 이렇게 말한다.
“Shaken, not stirred.”
숟가락으로 젓는 대신 셰이커에 넣고 강하게 흔들어 만든 마티니를 마시면서도, 그는 매사에 흔들림 없는 요원의 냉정한 균형 감각을 드러낸다. 이 한마디는 결국 제임스 본드라는 인물의 세계 — 즉 어떠한 시커먼 폭풍 속에서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 침착함 — 을 상징한다.
하지만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은 그와는 달랐다. 그의 선율은 따뜻했고, 부드럽게 흔들렸다. 그래서 나는 본드의 말을 살짝 비틀어 제목을 달았다.
-Not shaken, stirred.
나는 예술은 모른다
예술. 나와는 매우 멀리 있는 단어다. 그중에서도 음악과는 특히 데면데면한 편이다. 나는 ‘엔니오 모리꼬네’가 그렇게 유명한 음악가인 줄도 몰랐고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악기의 생김새와 이름도 잘 몰랐다. 그러니 엔니오 모리꼬네가 음악사에 끼친 영향력이나 그의 독보성, 혹은 오케스트라의 구성을 논하는 것은 내 몫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니오의 음악을 들으면서 나는 무언가를 느꼈다. 칸트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배우지 않고도 아름다움을 알아볼 수 있는 ‘보편적 미적 감각’을 타고 난다.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나 같은 무지렁이가 이름도 모르던 음악가의 음악에 흠뻑 젖어서 바람, 언덕 수풀의 바람, 이라고 공연 내내 되뇐 것은.
되뇌지 않으면 그 감각을 잃어버릴 것처럼 계속, 계속해서 생각했다. 이 음악들은 언덕의 듬성듬성한 풀포기를 쓰다듬는 바람 같다고. 건조한 황야의 불이 모든 나무와 동물과 집을 집어삼키게 만드는 괴물 같은 바람이 아니라, 한 마을을 영원히 수장시키는 돌풍도 아니라. 작은 동물, 청운의 꿈을 품은 청년들의 성장기, 청춘을 흘려보낸 사람들의 묵묵한 비탄 혹은 생계를 지켜보는 바람. 누군가의 전생 같은 삶들을 지키며 가끔은 풀을 부딪쳐 연주하고 모래에 작은 돌로 큰 동그라미를 그리겠지.
공연장에서의 충만한 감각은 솜씨 없는 브런치 작가의 손을 통해 맥 빠진 일기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도 내 인생을 지키며 작은 동그라미를 그리는 바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에?
예술가 정신만큼은!
내가 감상한 엔니오 모리꼬네의 공연은 다름 아닌 우리 회사 공연이었다. 공연장으로 뚜벅뚜벅 들어가기 전에 나는 공연 프로그램북을 관람객에게 나누어주는 일종의 알바 역할을 수행한 참이었다.
카톡에 채널 추가를 해야 프로그램북을 주는 이벤트였다. 나이 지긋한 노인들은 망설이다가 휴대폰을 꺼냈다. 한참 헤매는 어르신들을 차마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휴대폰을 받기, 채널 추가 큐알 코드를 읽기, 채널 추가 버튼을 누르기. 프로그램북과 휴대폰을 정돈해서 건네기. 상냥한 미소와 인사를 잊지 않기.
우리 때 이 양반이 얼마나 대단한 스타였는지 몰라. 내가 아가씨 때 정말 좋아했거든... 친절한 젊은이에게 왠지 무안한 얼굴의 노인들은 몇 명이나 말했다. 몰려오는 사람들로 시끄럽고, 내가 그에게 몇 초 이상 시간을 쏟을 수 없는 줄을 알면서도. 하하, 그러셨어요, 짧은 말과 미소로 대화를 끝낼 수밖에 없었으나 그들의 기쁨 어린 눈을 보면서 여러 생각을 했다. 이 분은 몇 살이나 되셨을까. 내가 이 분의 나이가 되면 나는 어떤 음악가의 공연장을 찾을까.
당신들은 아셨나요, 시간이 그리 쏜살같은지. 떨리는 손, 큰 글씨로 설정되어 있는 밝기 최대의 폰, 나는 몰라- 언제 누구에게든 반말을 해도 어색할 것이 없는 노인이 된 당신들. 그러나 즐거움으로 틀림없이 또렷했던 눈. 그 눈이, 젊을 적 즐거움을 간직한 마음이, 제 마음에 바람을 불러일으킨 게 아닐까요. 당신들도 그곳에서 저처럼 뜨뜻한 바람을 떠올리셨나요? 저는 살면서 여러분의 눈과 제 마음의 바람을 잊게 될까요.
어쩌면 나는 엔니오의 음악보다 노인들의 눈빛을 기록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앞서 말했듯 나는 예술과 담 쌓고 살았다. 그러나 글로 성공할리는 만무함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는 마음, 아니 성공 따위를 목전에 둔 적도 없는 글을 계속 짓는 내 마음만은 예술가 정신이라고 쳐줄 만 하지 않은가?
예술가 정신이 어린 오늘 내 기록이 당신 마음을 잔잔히 휘저을 수 있다면 참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