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기적리뷰] 모욕받는 꿈이라도, 계속 싸워야 해.

넷플릭스의 <POSE>로 이야기해보는 꿈, 젠더

by 밈혜윤

"We pray for strength to keep fighting"

"We have a saying around here: either you get busy living, or busy dying"


넷플릭스의 드라마 <POSE>(이하 <포즈>)는 Ballroom 문화를 주도했던 트랜스젠더, 게이들의 이야기가 주축이다. 드라마의 호흡을 따라가다 보면 여태 트랜스젠더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스스로가 놀랍기까지 하다.


그렇다. 나는 트랜스젠더라는 존재를 생각해본 적 없다. 그 이유는 폭좁은 나의 경험과 시야 탓인데, 쉽게 말해 나는 스스로 남자라고 생각해본 적도, 여자로 태어난 걸 증오해본 적도 없는 탓이다. 태어나면서 부여받은 성별로 사는 게 괴롭지 않았다. 심지어는 내가 여자인 게 좋은 날도 꽤 있었다. 이런 나의 경험이 세상의 절대 다수에게도 동일하며, 태어난 성과 지향하는 성이 달라 괴로워하는 사람을 목격한 적도 없다고 믿었다. '믿었다'고 표현하는 것은, 보았으되 보지 못했다 믿은 여러 가능성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보고도 몰랐을 수 있고, 몰지각하기 때문에 완전히 이해할 수도 없었으리라.


나의 몰지각과 몰이해는 트랜스젠더를 떠올릴 때 반자동으로 머릿속에 던져지는 질문의 수준만 봐도 알 수 있다. 태어난 성별이 아닌 다른 성별로 가고 싶은 욕망 자체는 알겠는데, 다만 어째서 그토록 고통스러운 수술을 감내하는 건지 궁금했다. '그냥 스스로 남자/여자로 정체화하면 안 되는 거야? 수술은 너무 위험하고 아프잖아ㅠ'라는 지극히 단순한 생각으로 깊지 않은 궁금증만 가졌었다.


하지만 <포즈>의 엘렉트라는, 정한아 작가의 <달의 바다> 속 민이는, 또 <퀴어아이>의 어떤 사연자는 입모아 말한다. 가장 간절히 원하는 것에서 탈락한 고통과 받아들일 수 없는 신체에 갇힌 부자유에 대해서. 신체를 볼 때면 불같이 이는 자신을 향산 유서 깊은 분노와 절망에 대해서. 또, 가족과 친구를 잃더라도 되찾아야만 하는 참모습에 관해서. 내 입장에서 '아프고 위험하고 굳이 해야 하나 싶은' 수술은 인간과 철학의 유구한 질문과 맞닿아 있었다. 그들은 거울을 볼 때, 몸을 볼 때마다 물어온 것이다. "나는 누구? 어떤 존재?"


무엇이 되고 싶니? 이 질문에 어떤 아이는 판검사를 대고 어떤 아이는 대통령을 대기도 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여자/남자"를 댈 수도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꿈이 누구보다 간절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었나? 적어도 나는 없었다. 그렇지만 대통령이니 방송인이니 사업가니 하는 것들과 다름 없는 꿈일지도 모르겠다는 걸 어렴풋이 생각해본다.


하지만 다를 바 없는 '꿈'으로 치기에는 우리 사회가 아직 젠더 이슈로 떠들썩하고, 늘 그랬듯이 불완전하다. 누군가는 말한다. 여성이 되고 싶어하는 남성들은 누구보다 '코르셋'에 절어있는 여성 혐오의 방관자, 아니 주체라고 말이다. 손톱을 꾸미고 화장하고 치마를 입기 위해 여성이 되려고 하는 남성들은 진정한 여성이 아니라고 선언한 사람도 있었다.


꾸밈의 문제는 잠깐 치워두고, 꾸밈의 욕구와 올바른 몸을 갖고 싶은 욕구는 전혀 다른 거라고 믿는다. 내것이 아닌 몸, 즉 내 것이 아닌 생식기를 갖고 살아간다는 것과 그 생식기만으로 나의 사회적 역할이 규정된다는 건 참기 힘든 일일 터. 성기로 나의 역할과 행동반경이 결정되었을 때, 이 부당함은 트랜스젠더만의 것이 아니다. 가부장제 하에서 모두 겪어보았다. 이 부분에서 작은 연결고리가 생기고 이같은 고리를 엮어가며 이해와 수용의 폭은 커지는 거라고 본다. 숱한 고통과 예기된 상실에도 불구하고 다른 성이 되어야겠다면, 그것이 그에게 옳은 일이라면 그 선택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포즈>는 또한 트랜스젠더가 겪어야 하는 경제적 고립에 대해서도 여실히 보여준다. 드라마에 출연하는 트랜스 여성들의 직업은 성을 파는 일이다. 먹고 살려면 물질적 지원을 해줄 남성 애인(혹은 스폰서)을 구하거나, 동전 몇 푼에 부스 안에서 옷을 벗고 춤추거나, 은밀히 접근해오는 남자의 차를 타고 호텔로 떠나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 종류의 남자들은 자신이 그런 '이상 취향'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수치심과 분노를 느끼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트랜스 여성들을 폭행하고 죽이기도 한다. 그래도 트랜스 여성들은 갈 곳이 없다. 집에서는 쫓겨났고 거리의 경찰도 그들을 조롱하고 성을 매수할 뿐 지켜주지 않는다.


이는 너무 MTF(Male To Female)에 초점을 맞춘 얘기들이긴 하다. 치우친 이야기임에도 중요한 사회적 문제임에는 틀림없다. 자신의 성을 선택했다는 이유만으로 경제 활동에서 배제되기 십상인 사회 구조는, <포즈>가 배경으로 삼는 1987년과 현재를 비교했을 때 과연 달라졌는가? 성을 선택한 사람들에게, 선택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편견 없이 기회가 주어지고 있는가? 유의미한 연구가 있는지조차 모르겠지만 적어도 'yes'에 가깝지는 않은 것 같다.



성의 선택. 선택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사람이 그들을 완연히 이해할 수는 없으리라. 그러나 그 선택은 무엇보다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욕망하는가'에 충실했으리라 생각한다. 간절함이 곧잘 훼손되고 평가절하됐으리라 예상한다. 그럼에도 <포즈>의 블랑카는 싸웠고, 엔젤은 진출했고, 엘렉트라는 버텼다.


꿈 있는 자들은 모두 선택에 내몰린다. 모욕받는 꿈이라고 지레 포기한 채 죽어가거나, 싸우고 버티면서 살아가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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