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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racle monica May 16. 2024

온전한 삶을 향하여, 최종태조각

 <영원을 닮는 그릇>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신한양식당

잠시 숨이 멎는듯한 압도감과 숭고미를 느끼고 싶다면



형태를 탐구하는 것은 만물의 이치에 대하여 탐구하는 것이며, 온전한 삶을 탐구하는 것이며 바로 자신을 탐구하는 것이다. To study shapes is to examine the order of all things, a sound life, and self.

최종태 Choi Jong Tae (1932- )




 아주 잠깐이라도 온전한 쉼이 필요한 순간이 있습니다. 조금도 쉴 틈 없이 밀어닥치는 전-후반전의 업무, 그리고 그 틈에 놓여 있는 점심시간은 그래서 저에게는 더 각별하고 소중합니다. 보통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기에 그 가치를 잊고 대충 흘려보내기가 쉽거든요.


 굳이 나설 채비 없이도 출근 덕에(?) 도심에 머무르니 좋은 공간, 맛있는 식사를 위해 부지런히 더 나다녀야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시간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가끔은 점심을 희생해 밀린 일을 쳐내야 할 때도 있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같이 환상인 날씨에는 무조건 바깥으로 나가야 하지요.





제일 아래층, 지하 3층의 콘솔레이션 홀에서 바라본 하늘광장과 빛


 이번 점심 아트 산책의 목적지는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입니다. 서소문 밖 네거리는 예로부터 도성을 드나드는 교통 중심지아니라 상업적으로도 번화한 지역이었습니다. 죄에 대한 경각심을 널리 알리는데 적합하다는 이유로 외래 종교인 천주교를 믿었던 다수의 주요 인사들이 처형되고 순교한 국가 참형지가 있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를 기려  해당 지역의 지하에 19년 서소문 성지 역사박물관을 조성했고요. 그 상단부는 도심 속 공원이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역사적 장소성뿐 아니라 아래라는 공간적 위치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요,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은 자연스러운 동선의 흐름으로 지상에서 지하 1층, 2층, 그리고 3층까지 침잠하며 깊숙이 역사를 탐구하며 되새기고, 성인의  희생을 기리는 추모의 하강적 공간감을 잘 구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갈하면서도 웅장한 건축에서 뿜어내는 아우라와 미니멀리즘의 미학. 더불어 상처의 역사가 교차되며 절로 경건함에 고개 숙이게 하는 곳입니다. 또,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오감을 깨우는 현대회화/조각/설치/디지털 아트워크로 마음까지 차분하게 일렁이게 하고요.


 사색과 위안으로 마음이 정화되는 성지이자 좋은 작품도 만날 수 있는 박물관이고 미술관입니다. 공간을 채우는 콘텐츠에 압도당하고, 역사가 주는 깊이감에 절로 숭고함이 들게 합니다. 공원에서부터 천천히 걸어 내려가 보세요. 지하 2-3층의 콘솔레이션 홀과 하늘광장, 하늘길이 압권이니 꼭 한 번 방문해 보기를 추천해 봅니다.



*같이 연결해서 보면 좋을 공공조각

마야 린 Maya Rin의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1982)

"지면을 삼각도로 파낸 것처럼 중심축으로 갈수록 서서히 깊어졌다가 바깥쪽으로 나오면서 다시 얕아지는 모양을 한다. 기념비 벽면을 따라 걷다 보면 사람들은 마치 전쟁의 시간 속으로 들어갔다 나온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 전경. ⓒ Timothy J Brown 워싱턴 DC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을 위에서 본모습 @https://naver.me/xWNi2eqm







<천사>, 나무에 채색, 2009 / <성모>, 브론즈, 연대미상



 지하 1층에서 만난 전시는 최종태 조각가의  <영원을 닮는 그릇 Vessels of Eternity>였습니다. 가장 한국적인 종교 조각을  개척했다고 평가받는 작가는 토속적인 한국 미감을 계승하고 현대화해 가톨릭 교회 미술의 성모상, 성모자상 및 소녀와 여인을 소재로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꾸준히 제작해 왔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종교적 색채가 조금은 덜한  질박한 미의 목조각이 다수 포함되었습니다.  

 

 그중 특히 눈에 띄었던 것은 전시실 중심 좌대에 놓은 연둣빛이 창연한 목조 모자상이었습니다. 무겁고 위압감이 조금은 전해지는 전형적인 금속 재질의 종교 조각에 대한 선입견이 깨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성모와 아기 예수를 상징하는 가톨릭 종교의 대표 도상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소박하게 그렇지만 강렬하게, 나무라는 투박한 재료와 색채적 미감으로 표현해내고 있었습니다.


 작가는 불필요한 것을 덜어냄으로써 가장 순수하고 본질적인 영원에 가까운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또한, 가장 한국적인 미학을 추구함에 있어 토속적인 종교 중 특히 불상의 전통에 대해 깊이 탐구했다고 합니다. 형태나 경계에 대한 집착을 버리니 오히려 종교를 넘어선 보편의 진실을 전해주지요. 위에 소개한 성모상의 경우도 찍찍 대충 그은 4줄의 선으로 표현한 엄마의 표정을 좀 보세요. 심히 '요즘 젊은이MZ들의 미술' 같지 않나요?


 (그 와중에 아이는 정말 천진난만하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어요. 엄마는 지그시 눈을 감고 있고요. 저의 모습인가요. 또르르)


 작가는 구순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온전한 삶을 바라며 이상적인 형태와 형상을 만들어내고자 구도자적인 삶을 지속합니다. 여전히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식사 시간을 빼고 10시간을 작업한다고 하지요. 그의 조각에 배어있는 삶과 종교, 형상의 삼위일체적 오리지널리티는 결코 겉모습으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작가 자신과 세상, 삶의 이치를 탐구해 가는 그 밀도와 깊이에 놓여 있는 듯합니다.


"그렇게 일주일 하면 지쳐서 열흘 쉬어야지. 그래도 몰입하는 동안은 힘든 줄을 몰라. 작품엔 끝이 없고 항상 미완성이지."

(작가인터뷰https://n.news.naver.com/article/025/0003341979?sid=103)

 


셀프로 급히 담느라 볼품없어 보이긴 해도, 멋진 한 상

 전시를 본 후 회사 선배의 추천으로 근처의 백반집으로 향합니다. 신한양식당은 단 돈 8,000원에 제공되는 매일 오늘의 메뉴 한 가지 외에도 김치/순두부/된장찌개를 비롯 제육/소불고기 정석의 점심 고기 메뉴까지 다양하게 고를 수 있는 깔끔한 집밥 같이 기본에 충실한 식당입니다. 86년부터 서울역 앞쪽 광장에서 운영하다가 21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했습니다.


  39년 차 백반집의 내공이 듬뿍 담긴 오늘의 메뉴도 좋지만, 저의 최애 메뉴는 지글지글 꼬들하게 고추장 아주 조금 넣고 슥슥 비벼먹기 좋은 돌솥비빔밥입니다. 소담스럽게 채 썬 당근, 시금치, 무나물, 상추를 젓가락으로 휘휘 저어 먼저 걷어 먹는 맛이 제법이죠. 흔한 메뉴이지만 무심한 듯 놓아진 돌솥과 정갈한 차림새에서 최종태 작가의 조각처럼 투박하지만 물리지 않고, 오래 중심이 서 있는 그 담백한 노포의 미감을 음미해봅니다.  


 이토록 조화로운 공간과 전시, 그리고 식사까지. 오늘의 산책은 그야말로 역대급입니다. 다시 개미 일꾼처럼 조급히 회사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겁기는 해도, 마음만은 가뿐하고 홀가분합니다. 내가 지금 맡은 일이 미미한 점일지라도, 여전히 꿈꾸고 있는 거창한 내일에 비해 오늘은 소박해도 내 안의 도를 닦는 심정으로 또 하루를 잘 일구어 보아야겠습니다.  

 

그럼 다음 글에서 또 뵙겠습니다 :)

★사대문 근처 좋은 전시와 밥집이 있다면 추천은 언제든 환영입니다★





⭐️SEE

⭐️EAT

신한양식당 중림동본점

서울 중구 서소문로 6길 45 1층

https://kko.to/HAI458sdDQ





Mother and Child, Mary Cassatt . 1899 @MET https://www.metmuseum.org/art/collection/search/1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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