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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먹다만사과수집가 Apr 05. 2020

(1)자전거를 말한다면

대강의 역사

오늘아침 정말로 자전거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잔이 꽉 차서 이제 흘러 넘치고 있는 것 같아 좀 다급해졌다고 할까. 뭔가 끝도 없이 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전거를 잘 모른다. 종류, 부품의 이름, 정비하는 법, 프로의 세계 같은 것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안장 위에 올라타고 발 굴려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안다. 이것이면 충분하다. 중심을 잡고 앞으로 나아갈 수만 있으면 뭐라도 되는 게 바로 자전거인 것이다.


한 발을 페달 위에 놓고 나머지 한 발을 지면에서 착, 착, 굴려 도움닫기해 바퀴를 굴려가면서 다리 쭉 뻗어 안장에 척, 올라타는 그런 것은 아직 할 줄을 모른다. 뒷자리에 누구를 태울 줄도 모른다. 산다는 것은 이런 것들을 알게 될 여지가 있어 좋은 것이다.


내가 나고 자란 경주는 자전거를 타기에 무척 좋은 곳이다. 집에서부터 한 시간쯤 달리면 보문호에 다다를 수 있었다. 호수를 빙 두르는 자전거길엔 나무가 심어져있어, 운이 좋으면  온통 꽃잎으로 덮인 분홍색 길을 달릴 수가 있었다.


안장 위에선 오롯이 혼자다. 비처럼 떨어져내리는 꽃잎을 온 몸으로 맞으며 달릴 때 내가 나랑 온전히 있는 기분이다. 물론 앞사람의 등을 바라보는 것도 좋다. 엄마의 등, 아버지의 등, 동생의 등, 애인의 등... 떠올리면 각각의 느낌이 있다. 모르는 사람의 등도 때로 애틋하다.


경주에서나 서울에서나 엄마와 아버지에게 자전거가 필수품이다. 한두 상자의 감자나 귤 따위가 뒷좌석에 동여매져 집으로 오곤 했다. 엄마는 황성동 집에서부터 성건동, 노동동, 황남동, 사정동 같은 데들을 자전거로 수없이 누볐다. 가끔 엄마의 안장에 올라타면, 엄마의 기분이란 이런 것인가 생각하게 되었다. 영어에서는 남의 입장에 서는 일을 '다른 사람 신발을 신는다'고도 하는데, 엄마에 관해서라면, '엄마 안장에 앉는다'고 쓸 수 있을 것이었다. 한때의 별명 '주렁아지매'에 대해서는 더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3년 전 아버지가 본격적인 서울살이를 시작하자 엄마는 파란 자전거를 장만했다. 살림을 하려면 자전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숙이지 않고 타야 허리가 안 아프다면서, 자신의 은색 자전거와 꼭비슷한 걸 구해다 줬다. 나는 대파를 앞바구니에 싣고 가는 아버지를 망원시장에서 마주쳤을 때  아버지가 평생 살고싶어하던 그 서울에 정말로 오셨구나 하고 비로소 실감했다.


네 식구가 한대씩 자전거를 가진 기간도 꽤 되지만, 늘 그리 길지 못했다. 자전거가 가끔 사라지기 때문이다. 바구니만, 안장만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작가(감독)들도 이 점을 소홀히하지 않는다.(김소진 <자전거 도둑>, 왕샤오슈와이 <북경자전거>)


나는 여러 대의 자전거를 잃어 보았다. 심지어 도둑을 그 자리에서 잡아 자전거를 되찾아온 적도 있다. 하지만 개중에 압권은 북경에서의 일이다. 자전거가 나를 떠났는지, 내가 잊었는지 아직도 모른다.


우다코(五道口) 지하철역 앞에 자전거를 세웠는데, 사정이 있어 그날 바로 타고가지 못했다. 며칠후 돌아왔더니 나의 자전거찾기란 이런 것이 되어 있었다. 개미떼. 마른오징어 냄새를 맡고 모여든 쌔까만 개미떼 가운데 어느 개미가 내 개미인지 찾아내는 일 말이다.


깡마른 씨꺼먼 그모든 자전거 중에 어느 것이 내 것인가 하나 하나 들여다봐도 당최 알 수 없었다. 피아노책을 싣고 다니던 앞바구니는 진작에 도난당했으므로 알아볼 표식도 없었다. 그래도 포기하긴 아쉬워 두어번 더 찾아가 헤집고 다녔으나 수확이 없었다.


북경의 널찍한 자전거도로를 달리는 것은 큰 기쁨이었으나, 3만원쯤 주고 산 내 자전거는 너무나 정직하여, 페달을 굴리는 게 걷는 걷보다 과연 빠른지 늘 좀 의심이 가기는 하였으므로, 미련을 떨치는 덴 도움이 됐다 하겠다.


결혼제도와 가부장주의에 진절머리를 내는 딸은, 노년에 접어든 엄마에게 졸혼을 언급하곤 했다.


그러나 자전거, 엄마 입에서 자전거 얘기가 나온 후로 그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


엄마에게 자전거를 가르쳐준 사람이 아버지였던 것이다. 자전거를 가르쳐서 여기 저기를 "끌고 다녔다" 하면서 엄마가 웃을 때, 나는 이제 말을 아끼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세월을 나는 알지 못한다. 내가 나기 전 남천에 세워뒀던 그 자전거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아버지가 술을 마셔 타고오지 못했는데, 다음날 엄마가 찾으러 가니 이미 없었다고 했다.


이토록 좋은 물건이지만, 보는 것만으로 슬퍼지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테면 사고 같은 것 말이다. 교복 입고 자전거를 타는 남학생을 보면 늘 그애 생각이 난다. 밝고 쾌활하던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 참 순하던 누나는 어찌 살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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