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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먹다만사과수집가 Jun 28. 2020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란

여름밤 이 책을 펼치는 데는 어린시절 '전설의 고향'을 기다릴 때 같은 기쁨이 있었다. 어떤 기괴함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앞서 수많은 이들의 추천이 있었다. 10년쯤 전에는 영어 원서로 사서 읽다가 너무 어려워서 포기하고 말았는데, 이번에 이 책을 정말로 펼치게 만든 것은 작가 리베카 솔닛이었다.


 <멀고도 가까운>은 너무 하얘서 새파랗게 보이는, 아니, 약간 새파래서 정말로 하얗게 보이는 종이에 인쇄된, 혈색이 쏙 빠져 파리한 듯 하면서도 희한하게 풍성하고 따뜻한 책이었다. 이 책과 마찬가지로 '북극'이라는 공간 또한, 차갑고 황량하나 그의 치유에 결정적 도움을 준 공간이다. (솔닛이 방문한 곳은 정확히는 아이슬란드이다.)


메리 셸리의 삶과, <프랑켄슈타인>의 무대가 되는 북극이라는 공간에 대한 솔닛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 서늘한 공간에 직접 가 보지는 못하더라도 당장 어떤 종류의 간접 체험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 것이다.


메리 셸리가 이 이야기를 쓴 배경에도 여름이란 계절이 있다. 그의 남편 퍼시 비시 셸리가 쓴 서문을 가져와보자.  


"나는 1816년 여름을 제네바 근처에서 보냈다. 춥고 비가 많은 계절 탓에 우리는 저녁마다 불타는 모닥불 주변에 복작복작 모여 앉았고, 어쩌다 수중에 들어오는 독일 유령 이야기들을 읽으며 즐거워하기도 했다. 이런 이야기들을 접할 때면 우리 마음속에는 모방하고 싶다는 장난기 썪인 욕망이 꿈틀거렸다. 또다른 친구 둘(조지 고든 바이런과 그의 주치의 존 폴리도리)과  나는 초자연적인 현상에 근거한 이야기를 각각 한 편씩 쓰기로 했다.

하지만 날씨가 갑자기 온화해졌다. 내 두 친구는 나와 헤어져 알프스산맥으로 여행을 떠났고, 눈앞에 펼쳐진 장엄한 풍광 속에서 그 소름끼치는 상상의 기억을 까맣게 잊고 말았다. 이 글에 뒤이어 펼쳐질 이야기만 유일하게 완성되었을 뿐이다."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창조한 괴물에는 '이름'이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프랑켄슈타인의 입을 통해 '악마' 또는 '괴물'로 지칭될 뿐이다. 여기서는 '피조물'이라고 불러보자.


내게 가장 충격적인 한 문장은 이것이었다. 프랑켄슈타인이 자신이 만든 피조물을 처음 조우하는 장면이다. "악마!"라고 소리치는 프랑켄슈타인에게 피조물이 말한다.


이런 반응은 예상했다.

나는 피조물이 말을 할 것으로 생각도 하지 못했다. 말을 한다는 게 무엇인가. 자신의 고통을 해석해 내고 전달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의 고통은 창조주 프랑켄슈타인을 비롯한 어떤 인간에게도 가닿지 않는다. 인간과 똑같은 성정과 지성을 갖추었으나 절대로 '이쪽 세계'에 들어올 수 없으리라 판단한 피조물은 창조주에게 하나의 제안을 던진다.


타자로 살아가는 피조물 내면의 고통이 서사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다. 그럼에도 이 부분이 쏙 빠지고 프랑켄슈타인의 서사만 알려진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20세기 수많은 과학소설이 이 책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원자력을 비롯한 과학기술 발전 앞에 두려움을 느낀 이들은 계속해서 다른형태의 프랑켄슈타인 박사를 만들고 불러냈을 것이다.


피조물은 제대로 소환조차 되지 않았다. 피조물이 자신의 입으로 말했던 그 타자성이 증명된 셈이다.


책을 번역한 김선형 박사의 해설을 빌려오자.  


거대한 머리에 툭 튀어나온 이마, 스테입플러로 찍어 붙인 것 같은 이마의 섬뜩한 긴 흉터, 그리고 관자놀이에 비죽 튀어나온 나사못. 만화, 패러디, 심지어 해러윈 분장에 이르기까지 이 프랑켄슈타인의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는 20세기 대중문화사에서 무한 재생산되었다. 이는 1931년 할리우드 흑백 공포 영화에 등장한 배우 보리스 카로프의 얼굴이다(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얼굴이 아니라 그가 창조한 '이름 없는' 괴물의 얼굴이기도 하다.) 원작을 상당 부분 개작해 각색한 이 영화가 원작과 가장 다른 점은 괴물의 대사가 단 한 마디도 없다는 것이다. 19세기 천재 여성 작가 메리 셸리와 그녀가 창조한 능변의 괴물에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는 곧 생명과도 같다. 그런데 너무나 유명해진 이 B급 영화배우의 얼굴은 오히려 원작을 그 강렬한 이미지로 뒤덮어 은폐하고, 풍부한 언어, 문학적 텍스트의 의미를 단순 환원하는 결과를 낳았으니, 아이러니하게도 그 또한 참 프랑켄슈타인의 괴물답다.


프랑켄슈타인과 피조물의 목소리를 듣는 와중에, 내 옆에는 입을 꼭 다물고 이 이야기를 쓰고 있는 열아홉의 메리 셸리가 함께했다. 열아홉의 메리 셸리. 한 사람의 삶을 그를 둘러싼 죽음들로만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아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 쓰지 않기로 했다. 일찍이 사랑하는 사람을 차례로 잃는 프랑켄슈타인의 고통을 서술한 그의 곁에 실로 많은 죽음이 예비되어 있었다.


메리 셸리는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그러나 결코 환대받지 못하는 존재를 창조하기로 작정하고 '무엇이 인간인가'를 물어가며 피조물을 빚었다. 빛나는 지성을 갖춘 피조물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보자.


"동포 인간들에게 가장 높이 평가받는 자산은 부와 결합한 귀하고 순수한 혈통이라는 것도 배웠다. 이들 중 하나만 갖고 있어도 존경받고 살 수 있지만, 둘 다 없으면 아주 희귀한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선택된 소수를 위해 자기 힘을 무의미하게 소모해야 하는 방랑자나 노예로 간주되는 것이었다."
"나는 누구일까? 나는 무엇일까? 어디서 왔을까? 내 목적지는 어디일까? 이런 질문들이 떠올랐지만 해답을 찾을 길이 없었다."
"나는 사탄이 내 처지에 더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존 밀턴 <실낙원>에 대해)
"오! 창조주여, 나를 행복하게 해다오! 딱 한 가지 은혜를 베풀어 당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해다오! 나도 내가 다른 존재의 마음에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광경을 보고 싶다!"


요즘 인간과 비인간 동물의 관계를 많이 고민하는 나는 이런 부분들을 의미있게 보았다. 창조주 프랑켄슈타인보다 육체적 능력 뿐만 아니라 지적 윤리적으로도 더욱 성숙한, 오로지 외모가 너무나 흉측한 존재인 피조물은 예컨대 이렇게 묘사된다. "배를 채우기 위해 어린 양과 새끼 염소를 죽이지 않는다. 도토리와 나무딸기만으로도 충분한 영양을 얻을 수 있다."(p.196) 어린 동물을 죽이는 행위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 인간 본성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작가는 봤을 것이다.


인간은 일부 동물에 대해서 유사 창조주의 지위를 확보한 것 같다. (나는 이 단어 조합, 유사 + 창조주를 떠올린 이후 몇 달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먹고 쓰기 위해 기르고 죽이고 낳게하고 길러 죽이기를 반복한다. 피조물에 대한 창조주의 의무란 것은 존재하는 것일까. 피조물은 창조주에 무엇을 요구할 수 있는가.


프랑켄슈타인과 피조물의 관계는 유사 창조주로서의 인간과 이용당하는 동물과의 그것과는 구분되는데, 그것은 프랑켄슈타인이 '이성'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프랑켄슈타인은 최후 고해에서 "이성적인" 존재를 창조했는데도 "행복과 복지를 보장"하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그러나 피조물의 제안을 거부한 것은 끝내 뉘우치지 않는다. 윤리의 의무 범위를 '동포 인류'로 명확하게 제한하면서.


"열정적인 광기로 이성을 잃은 상태에서 나는 이성적인 존재를 창조했으니, 내 능력이 닿는 한 행복과 복지를 보장했어야 합니다. 그게 제 의무였어요. 그러나 이보다 훨씬 더 중요한것이 있었습니다. 동포 인류에 대한 의무가 내게는 더 중요한 관심사였습니다. 훨씬 많은 사람들의 행복과 불행이 달려 있었으니까요."


프랑켄슈타인은 어떤 제안을 받았을까. 혹시 이 책을 읽어볼 분들을 위해 언급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프랑켄슈타인보다는 피조물의 발언으로 글을 맺고 싶다. 제안을 던지는 바로 그 때의 말이다. '의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 흥미롭다. 


사람들은 모두 끔찍한 흉물을 저주하지.
그러니 살아 있는 그 어떤 생물보다 비참한 나를 얼마나 증오하겠는가!
하지만 당신, 내 창조자인 당신이 나를 혐오하고 내치다니.
나는 네 피조물이고, 우리는 둘 중 하나가 죽음을 맞지 않는 한 끊을 수 없는 유대로 얽혀 있다. 당신은 나를 죽이려 하겠지.
감히 당신이 이렇게 생명을 갖고 놀았단 말인가!
나에 대한 당신의 의무를 다하라.
그러면 나도 당신과 나머지 인간들에 대한 의무를 다하겠다.


어휴, 서늘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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