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러닝 네트워크는 사람이 학습하는 법을 그대로 본 따서 만든 인공적인 '신경세포'입니다. 사람의 '정신'은 '신체'라는 물질 속에 깃듭니다. 컴퓨터에서 '정신'은 곧 소프트웨어이며, '물질'은 곧 하드웨어입니다.
사람이 정상적인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신체와 정신이 건강하게 잘 작동되어야 합니다. 세포의 삼투압, 내분비 기관, 호르몬, 무의식적인 반사작용 같은, 신체 안에서 눈에 보이지도 않고 의식할 수도 없는 수많은 것들이 문제없이 움직여줘야 우리는 말도 하고 운동도 하고 경제활동도 할 수 있습니다. 컴퓨터도 마찬가지입니다. 컴퓨터 안에 있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의식할 수도 없는 수많은 장치들이 문제없이 움직여줘야 우리는 비로소 인터넷도 하고 포토샵도 하고 카톡도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인터넷, 포토샵, 카톡이라는 소프트웨어 작동하기 위해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그 어떤 것'을 가리켜운영체제라고 부릅니다. 운영체제가 없다면 우리는 카톡도 할 수 없고 인터넷 거래도 할 수 없고, 인스타그램에 사진도 올릴 수 없습니다. 컴퓨터는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람을 모방해서 만든 발명품입니다.
그러니까, 컴퓨터를 알아가는 과정은 사람에 대해 알아가는 일과 같습니다.
상대방이 쓰는 말을 이해할수록 그 사람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듯이, 컴퓨터를 알아갈 때도 컴퓨터 분야에서 쓰는 말, 즉 컴퓨터 용어를 잘 이해할수록 컴퓨터는 더 쉬워집니다.
그런데, 컴퓨터 용어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왜냐하면 대부분 영어에서 온 말이라 그렇습니다. 컴퓨터를 배우는 건지 영어를 배우는 건지 모르겠다며 포기할까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컴퓨터 용어가 영어 위주라는 것에는 나름대로 장점이 있습니다. 영어가 국제 표준어로 자리매김을 했기 때문에, 컴퓨터 용어도 한 번 배우면 전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큰 어려움 없이 소통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컴퓨터 용어 중에는 컴퓨터가 발명되기 이전부터 일상에서 써 온 말이 많습니다. 그래서, 용어들이 영어로 되어 있어 낯설기는 할지언정 인간 활동의 산물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충분한 설명을 해 준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터넷 분야에서 흔하게 쓰는 protocol (프로토콜)이라는 용어를 보겠습니다. '프로토콜'은 '약속'입니다. 서로 간에 "이렇게 저렇게 하자"라고 정해 놓은 '규정'입니다.
protocol은 프랑스어에서 유래한 말로, 'first page', 즉 '첫 페이지'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책이나 문서의 첫 페이지에는 앞으로 전개될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일련의 약속이 적혀 있습니다. 약속을 하지 않으면 같은 말을 하더라도 서로 다른 식으로 해석할 수 있어서 일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외국에서는 영주권 같은 것을 갱신하게 되면 발급기관에서 '프로토콜'이라는 것을 줍니다. "진짜 영주권이 나오기 전까지 영주권처럼 쓸 수 있다"라고 약속한 문서지요.
수년 전에 '24'라는 미국 드라마가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이 드라마를 보면 주인공 잭 바우어가 유난히 '프로토콜'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프로토콜 때문에 안 돼!", "프로토콜이 없어.", "프로토콜 확인해 봐." 이 드라마에서 '프로토콜'은 '규정'입니다. 대테러 기관인 CTU에서 일하는 잭 바우어는 테러범을 잡기 위해 규정을 밥 먹듯 무시하는 현장요원입니다.
이처럼 '프로토콜'이라는 말도 원래는 컴퓨터가 일상화되기 이전부터 쓰던 말이었습니다.
"1인치 자막의 장벽을 뛰어넘으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다"라고 한 봉준호 감독의 말처럼, 영어라는 1인치의 용어를 뛰어 넘으면 컴퓨터가 작동하는 방식이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