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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래지기 Apr 11. 2018

외국어 작문은 나를 바꾼다

진정한 작문은 기초 체력을 기른 다음에 시작하는 것이다.



  생각을 적기 위해 두세 단어를 연결할 때부터 작문은 시작된다. 작문은 모국어로 한다 해도 쉽게 풀리지 않는 숙제다. 하물며 모국어가  외국어로 글을 쓴다면? 종이에 쓴 글자는 분명 외국어라 할지라도 그 문법은 모국어의 향권 안에 머무를지도 모른다. 완벽하게 이중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외국어로 글을 쓰면서 모국어의 논리를 버리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새로운 것을 배울 때 우리가 자동적으로 선택하는 방법은 '따라 하기'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은 동서고금의 진리다. 그래서 수많은 예술가, 작가, 운동선수들이 이 방법을 왔다. 개인뿐만이 아니라 심지어 기업까지도 이 방법을 애용한다. 그러나 이 방법은 쉽지 않다. '따라 하기'로 특별한 성과를 이루려면 철저히 따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려운 길이. 우리의 직관은 지름길만을 선택하지 않는다.


  최초의 작문을 완성하고 첨삭지도를 받을 때 느끼는 낯 뜨거운 감정. 부끄럽고 절망스러운 기분이 들더라도 우리는 이 감정에 떳떳해야 한다. 왜냐하면 '첨삭'이란 작문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베풀 수 있는 최고의 방법아니기 때문이다. 문법에 맞게 글을 교정하는 일은 오히려 모국어로 글을 쓰는 사람에게 적용하는 방법이다. 외국어를 배우는 우리는 그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바로 철저한 모방, 다시 말해 '베껴쓰기'다.


  현대 언어는 소리와 문자  말과 글로 이루어져 있다. 글만 베끼는 게 아니라 말도 베낄 수 있다. 동시통역을 잘하기 위해 연습한다는 '쉐도잉 shadowing'이 바로 말을 베끼는 행위다. 피카소도 대가들의 작품을 모사하면서 연습했다. 피카소는 '좋은 예술가는 모방하고 뛰어난 예술가는 훔친다'라고 했는데, 스티브 잡스는 이 말을 인용하면서 한 술 더 떠 "우리는 훌륭한 아이디어를 훔치는 것을 부끄러워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베끼고 훔치는 일이 부끄럽지 않다니? 베끼는 행위로 말한다면 그 규모나 다양성으로 중국을 따라갈 나라는 없다. 누구나 모조품에 대한 불편한 감정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중국이 남의 것을 베끼는 행위를 못마땅한 시선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될 것이다. 철저하게 베끼는 행위가 끝나고 그들만의 개성이 드러날 때 우리는 달라진 새로운 모습을 보고 감탄하게 될지도 모니까. 불편한 감정이 부러운 감정으로 바뀌게 될 가능성을 대비해야 한다. 조승연 작가는 "다 베끼면 짝퉁, 대충 베끼고 내 것을 집어넣으면 새로운 것이 된다"라고 얘기했다. 나만의 것을 넣는 것은 철저한 베끼기가 끝나고 난 뒤의 활동이다. 베끼는 데서만 끝나면 안 된다는 이야기다.


개성과 아름다움은 늘 탄탄한 기초 위에서만 꽃을 피울 수 있다.
- 스케치 쉽게 하기 - 기초 드로잉 / 김충원

  외국어 문장을 베끼는 연습을 하는 동안 우리는 모국어의 논리를 잠시 내려놓게 된다. 이것은 마치 그림을 보지 않고 대상에만 시선을 고정시킨 상태로 그리는 연습과 같다.  연습을 반복하다 보면 우리 뇌에서는 새로운 원리가 생성된다. 내가 연습하는 외국어에 대한 논리가 따로 형성되는 것이다. 그  논리가 만들어지면 우리는 어색한 문장을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이 과정을 통해 새로운 것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게 됨으로써 가지고 있던 편견이나 고집을 발견하고 고쳐 나가는 효과까지 경험할  있다. '일거양득'이다.


어떤 원리를 깊이 이해하면, 관념의 구조가 변해서 틀리게 생각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이 '원리'에 관한 제1명제이다.
- 태초에 철학이 있었다 / 타케다 세이지, 니시 켄 / 홍성태


  그러면 무엇을 베껴 쓰는 게 좋을까? 베껴쓰기는 그 효과가 '근묵자흑', '근자주적'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아무 글이나 베껴 쓰는 건 좋지 않다. 문법적으로 오류가 없는 문장, 논리가 정연한 문장, 감성을 자극하는 문장을 베껴 써야 한다. 처음부터 셰익스피어에 도전하기보다는 일상적인 수필이나 일기, 또는 동화로 시작하는 것이 현명하다. 원어 사전을 베껴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단어를 설명하는 방법을 익힐 수 있다. 연어(영어로 하면 collocation) 사전은 모국어와 외국어의 차이를 직접 보면서 연습할 수 있어서 좋다. 문법이란 말하기가 아니라 글쓰기를 위한 법칙을 모아 놓은 것이다. 문법서에 있는 예문을 베껴 쓰는 것은 정확한 문장을 구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세상은 넓고 베껴 쓸 글은 많다. 너무 많다. 평생 다 쓸 수도 없기에 걸러내야 한다. 잘 걸러내려면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래서 선배들에게 도움을 받는 일을 부끄러워하거나 주저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source : https://drdarkdoom.deviantart.com/


  우리나라는 언제쯤 어벤저스와 같은 작품을 만들어  수 있을까? 마블의 최신 작 하나를 골라 철저하게 베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이 필요한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어떤 인프라가 먼저 구축돼야 하는지에 대한 지식과 방법론을 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 단, 논리와 상상력을 모두 동원하여 베껴야 하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빠짐없이 베껴야 한다는 게 전제다. 물론, 베껴서 만든 영화는 정식으로 상영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 베끼다가 여러 가지 이유로 포기할 확률이 더 높다. 무엇보다 배우들에게 들어가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감당하지 못 할 테니 말이다. 영화와는 달리 외국어 작문을 위해 베껴 쓰는 행위에는 많은 비용이 들지 않는다. 시간만 있다면 어디서든 할 수 있어서 간편하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책 한 두 권 베껴 쓰고 만족해서는 안된다. 가능하면 오랫동안 그리고 다양한 글을 많이 옮겨 적어봐야 한다.


  베껴쓰기가 끝나면 연습한 것을 버리고 나만의 글을 쓰도록 하자. 진정한 작문은 이 과정이 끝난 다음에 시작된다. 그리하여 베껴쓰기를 통한 외국어 작문 연습은 결국에는 나를 바꿀 것이다. 양quantity은 질quality을 바꾼다. 베끼는 행위를 임계점까지 끌고 가 창조성이 비로소 눈을 뜨기 시작한다. 피카소가 경험했고 스티브 잡스가 경험했듯이.


▨ 미래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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