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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래지기 Apr 14. 2018

알파벳에서 소리가 난다고?

언어란 소리가 의미를 갖는 것이다.



  사람의 언어는 소리와 문자로 이루어진다.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의 관점으로 본다면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다. 소리 없는 글이나 문자 없는 말은 정상적인 언어로 취급받지 못한다. 문자가 발달한 시대에 태어나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모국어 이외의 새로운 언어를 학습한다는 것은 소리, 즉 말만을 배운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비록 '언어language'라는 말이 혀를 뜻하는 라틴어 '링구아lingua'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말이다.


현대인에 문자해독능력literacy이 중요한 가치다. 모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사람도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면 '문맹文盲'자로 차별받는다. '문자를 읽지 못하는 맹인'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수많은 시간과 싸우며 외국어를 배웠다지만 정작 소리로는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는 사람도 흔하다. 이런 사람은 말보다 글로 언어를 익힌 문자해독능력자다. 굳이 표현하자면 '성농聲聾'자라고 불러야 할까?

 


  문맹illiteracy이란 모국어의 '문자'에 대한 문제다. 문맹퇴치 운동은 있어도, 모국어를 못 알아듣고 구사하지 못해서 무슨 퇴치 운동을 한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하나의 언어권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쩌다 글자는 읽고 쓰지 못할 수는 있어도 모국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다. 이런 믿음이나 기대는 '언어란 문자 이전에 소리'라는 가설을 증명하는 사례다. 읽고 쓰기는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배우지만, 말하고 듣기는 주로 가정에서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발달시키는 것이다. '언어 본능'이란 말이지 글이 아니다. 따라서 모국어 학습에 있어서도 언제나 글보다는 말이 먼저인 것이다. 글을 읽고 쓴 다음 말을 하게 된 사람은 그 누구도 없다. 그런데, 외국어를 배울 때는 왜 말보다 글이 앞서는가?

Source : Freepik.com


  영어를 처음 배우는 사람은 흔히 알파벳을 읽는 법부터 시작한다. 영어뿐만이 아니다. 일본어나 중국어는 물론이고 인도어나 아랍어도 그렇다. 모든 외국어 입문서는 그 나라의 언어에서 쓰는 문자를 내세워 읽는 법을 가르친다. 책만 그런 게 아니다. 학교나 학원에서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가르친다. 외국어는 모국어처럼 학습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일까?


영어 알파벳 26개 가운데 모음은 a, e, i, o, u 다섯 개다. y를 모음으로 치면 모두 여섯 개가 된다. 중요한 것은 모음이 단어에 따라 다양하게 발음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lead의 발음은 /li:d/다. 그런데 head는 /hed/로 읽어야 한다. laugh는 /læf/로 읽지만 launch는 /lɑːntʃ/로 읽어야 한다. 모음은 5개지만 단어에 따라 모두 24가지 이상으로 발음된다. 그러므로 단어마다 사전에 나와있는 발음 기호를 잘 보고 읽는 연습을 해야 한다.


포르투갈어는 어떨까? 라틴어에서 파생된 포르투갈어는 크게 유럽 포르투갈어와 남미 포르투갈어로 나뉜다. 마치 영국 영어와 미국 영어가 다르듯이 말이다. 포르투갈어 발음은 영어보다 단순해서 배우기 쉽다. 하지만 읽는 법을 가르치는 방식은 다르지 않다.


알파벳 C는 /ㄲ/ 발음과 /ㅆ/ 두 가지로 발음된다. casar는 /까자르/로 읽지만 cesar는 /쎄자르/로 읽는다. L은 모음 앞에서는 /ㄹ/로 읽지만, 자음 앞이나 단어 끝에서는 /ㅜ/ 발음이 난다. 그래서 bola는 /벌라/로 읽지만, alto는 /아우뚜/로 읽고 azul은 /아주우/로 읽어야 한다. X는 네 가지로 발음된다. 예를 들어 abacaxi /ʃ 아바까시/, exato /z 에자뚜/, fixo /ks 픽쑤/, próximo /s 쁘러씨무/ 같이 경우에 따라 4가지로 소리가 난다. 각각 /ㅅ/, /ㅈ/, /ㄱㅆ/, /ㅆ/ 발음이다. M으로 끝나는 음절은 비음, 즉 콧소리가 난다. 그래서 bom은 /봄/이 아니라 /봉/으로 발음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설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걸음 물러서서 본다면, 마치 알파벳이 여러 가지 소리 값을 가지고 있다가 경우에 따라 그때그때 다른 소리를 낸다는 말로 들린다. 그러니까 알파벳 26자를 이름과 함께 읽는 법을 배운 뒤, 자음과 모음이 음절을 이룰 때 나는 일련의 소리 규칙을 사용해 단어를 읽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식이다. 어느 외국어 입문서를 봐도 이런 설명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은 그 반대다. 그 어떤 알파벳도 조건에 따라 어떤 식으로 읽어야 한다고 미리 정해 놓은 규칙이란 없다. 알파벳이란, 즉 문자란 소리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전달하는 수단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소리다. 소리가 먼저다. 소리가 먼저 존재하고 그다음에 문자는 사회적으로 학습되는 것이다. 외국어를 '모국어처럼 배우려면' 알파벳을 접하기 전에 소리에 먼저 익숙해져야 한다. 그러니까 위의 설명을 이렇게 바꾸어 보는 것은 어떨까? 


영어에서는 /li:d/라는 소리를 'lead'라고 쓰고, /hed/라는 소리는 'head'라고 쓴다. /sti:l/이라는 소리는 '훔치다steal'는 뜻으로 쓰거나 '강철steel'이라는 뜻이 있다. /stɪl/이라는 비슷한 소리가 있는데 이는 '아직도still'라는 뜻이다. 또, 포르투갈어에서 비음은 모음에 ~ 기호를 붙여 비음임을 표기하거나 모음 문자에 M을 붙여 표현한다. 그래서 ['bõw]이라는 말을 글로 적을 때는 'bom'으로 표기하는 것이다.


왜 이렇게 설명하면 안 되는가? 소리에 자신이 생기고 소리만으로 대화가 가능해지면 글을 익히는 것은 더 쉽다. 그 이유는 수많은 소리가 알파벳 26 자라는 제한된 형식으로 구현되기 때문이다. 마치 LP판의 소리가 MP3 포맷으로 변환되면서 소리의 풍부함이 사라지는 경우와 같다. 이는 또한 바이올린의 연속적인 음을 분절화된 피아노의 건반으로 표현하는 것과 같다. 소리가 아날로그라면 문자는 디지털이다. 언어란 문자가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소리가 의미를 갖는 것이다.



  외국어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아무리 시간과 정성을 쏟아 부어도, 모국어를 익힐 때처럼 다시 태어날 수 없다는 점은 극복할 수 없는 한계다. 소리를 보존하는 메커니즘과 병행하지 않고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기약 없는 기다림과 같은 것이라며, 그래서 문자로 접근하는 언어 학습 방식이야 말로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결론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자는 소리를 표현하고 의미를 기록하는 매체 역할을 할 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도록 하자. 언어에 대한 겹시각을 갖는 게 중요하다. 소리를 듣고 받아 적는 일이, 왜 책을 소리 내어 읽는 행위를 완성시키는지 깨달을 수 있다면 외국어를 배우는 시간이 한층 더 즐거울 것이라 믿는다.


▨ mirej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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