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돌이의 사진사가 된 이유

창의적이다, 그런 말 듣고 싶었다.

by 미레티아

초등학교 때, 실과시간에 컴퓨터 교육을 했었다. 무비 메이커로 동영상을 만드는 교육이었는데 사진을 애니메이션 넣고 해서 연결하는 그런 교육이었다. 그래서 선생님이 웬만하면 사진을 가져오랬다. 물론 구글에서 검색해도 되었지만 그건 실과 시간에 다 하기에 시간이 모자를 것 같았다. 그래서 난 사진을 미리 준비해가기로 했다. 가족 사진을 쓰자니, 친구들에게 가족을 전부 공개하는 셈이 되어서 마음에 안 들었다. 그래서 곰돌이, 즉 베폴이를 찍었다.


그런 사진을 학교에 들고 갔다. 그날 집에서 사진을 들고 온 친구는 2명이었다. 다른 친구는 가족 사진이었다. 난 곰돌이 사진이었다. 그리고 무비메이커로 영상을 만든 후, 학급 홈피에 올렸다. 우리집 곰돌이의 생활...이라는 이름으로.


댓글이 달렸다. "오~역시 미레티아는 창의적이야!"(실명을 쓰진 않겠다. 아는 사람이 많긴 하겠지만...) 그 댓글이 너무 좋았다. 마음에 들었다. 그때 한창 창의적 인재 육성이 뜨기 시작할 때였다. 영재교육원 시험도 수학이나 과학 지식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마 그 2년 정도만 영재교육원 선발 방식이 그랬던 것 같다. 그 전과 후에는 수학, 과학 시험이 영재원 선발에 주를 이뤘던 것 같다. 어찌되었든, 그런 분위기에 휩쓸려서 난 창의적이라는 칭찬이 좋았다. 그래서 계속해서 베폴이의 사진을 찍었다. 다른 인형은 찍지 않았다. 베폴이만 찍었다. 나의 소중한 인형, 나와 같이 한 추억이 많은 인형. 기억 속에 남기고 싶은 인형....

베폴이 찜질방.JPG 스킬자수하고 남은 실로 목걸이를 멋있게 만들어주고, 손수건으로 양머리 만들어주고....

그리고 또 다시, 한번 더, 창의적이라는 칭찬을 받고 싶었다. 블로그를 개설해서 운영했다. 그때는 네이버 블로그를 운영했었다. 나중에 티스토리 블로그로 이사를 할 때 글을 옮기는 것이 너무 힘들기도 했고, 몇년이 지나 다시 보니 초점이 나가고 조명문제로 색이 나간 것이 너무 많아서 혼자만 간직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때 이후로 베폴이 사진을 한동안 안 찍었다.


처음 시작은 어이없었지만, 정말 마음에 안 드는 시작이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마음에 드는 결정이었고 소중한 추억이다.


p.s. 문득 떠오르는 건데, 정말 어렸을 때 '나만의 타임캡슐을 만든다면 무엇을 넣고 싶어요?'라는 질문에 생각없이 베폴이를 넣고 싶다고 대답한 적도 있다. 잃어버리고, 잊고 싶지 않다고...


베폴이 사진을 한창 찍을 때에는
어쩌면 조금 강박적으로
창의적이어야 하는데, 똑똑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책도 어려워도, 이해 못 해도 붙들고 읽고,
그냥 찍어도 될 것
어떻게 하면 더 창의적인 사진이 될까 고민하고...
그런 부담감이 올수록
점점 결과물은 별로였던 것 같다.
차라리 그런 부담이 없을 때 더 좋은 생각이 많이 났다.
학생 교육에서 창의성이 중요한 것은 알겠다.
하지만 그걸 평가의 기준으로 삼고
아이들에게 자꾸만 요구할수록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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