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22-23일 광주챔피언스필드
드디어 기다리던 야구가 시작되었다. 기다림만큼 준비도 잘 되었다고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놀라우리만큼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마치 '여기까진 생각하지도 못했지'라고 날 놀려대는 느낌이다.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현실을 마주하고 나니 흥분이 가라앉고 도리어 마음이 많이 차분해지는 느낌이다.
NC다이노스는 타선에 비해 투수진이 아직까지는 제대로 구축되어 있다고 보기가 어렵다. 즉 NC다이노스가 경기를 가져가려면 타선이 점수를 최대한 많이 뽑아내는 공격야구를 해야만 한다. 특히 KIA타이거즈처럼 타선이 강력한 팀을 만나게 된다면 더더욱 초반에 점수차를 크게 벌려야 한다. 만약 초반에 달아나는데 실패하고 계속 엇비슷한 흐름으로 간다면, NC다이노스는 경기 중후반 이후 역전패를 당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팀이다.
이날 경기 초반은 로건과 네일의 명품 투수전으로 흘러갔다. 2회말 김선빈-이우성-김태군으로 이어지는 하위타선 연속 3안타로 KIA타이거즈가 선취점을 뽑아냈지만 KIA타이거즈의 공격력은 실상 로건의 다양한 로케이션에 눌려 있었다. 특히 3회말 공격에서 나온 김도영의 부상은 경기장 전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중계를 지켜보던 KIA타이거즈 팬들도 모두 머리를 쥐어뜯을 상황이었다. 나도 그랬다.)
네일은 연습경기와 시범경기에서 계속 60-70구 언저리에 다다르면 급격하게 공이 풀려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이건 사실 지난 2024시즌에서도 나타난 모습이었다. 5회를 마치고 투구수가 66개인 상황에서 네일이 내려간 것은 시즌 초반이라 무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네일의 약한 스테미너 문제가 여전히 불안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믿었던 필승조인 곽도규와 조상우가 사달를 일으켰다. 가장 아쉬운 건 곽도규가 김주원을 상대로 결정구를 직구로 가져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유리한 카운트에서 안타를 맞고 나자 곽도규는 후속타자인 손아섭 상대로도 볼넷을 내주고 말았고 조상우로 교체되었다.
문제는 조상우의 컨디션도 정상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아직까지 조상우는 특유의 강력한 속구 구위를 찾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제구 불안까지 겹치며 이날 제대로 된 카운트싸움을 하지 못했다. 결국 박건우에게 2타점 2루타를 내주고 말았는데, 사실 이 타구가 너무 빨랫줄처럼 날아가 펜스 상단을 때리고 튕겨져 나온 것이 NC다이노스의 불운이었다. 이게 넘어가버리거나 싹쓸이가 됐다면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이후 권희동에게도 볼넷을 내주며 이날 조상우는 등판해서 단 한 개의 아웃카운트도 잡지 못하고 강판을 당했다. 시즌 극초반이니만큼 이런 경기가 있을 수도 있겠으나 조상우의 구위회복은 조상우에게나 KIA타이거즈 전체에게 있어서나 관심을 갖고 지켜보아야 할 체크포인트로 떠오르게 되었다.
1사 만루의 극한상황에서 KIA타이거즈가 내세운 카드는 최지민이었다. 최지민이 이 상황에서 두 타자 연속 삼진을 잡고 세레모니를 한 게 이 날 최고의 명장면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NC다이노스는 상대팀과 비슷한 흐름을 갖고 후반으로 돌입하면 이기기가 힘든 팀이다. 그리고 결국 8회가 되자 KIA타이거즈 타선이 대폭발을 일으켰고 갑자기 한 회에 8실점을 한 NC다이노스는 그대로 경기를 내주고 말았다.
8회말 8득점을 하는 상황에서 베테랑 최형우, 김선빈의 적시타 장면이 '왜 베테랑이 필요한가'를 보여주었다고 한다면, 홍 모 씨의 번트실패 장면만큼은 복기를 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그 상황에서 번트를 어정쩡하게 대지도 못하고 빼다가 잘못하면 2루 주자가 횡사를 당할 뻔 한 장면이 노출되었다. 안그래도 상대 NC다이노스의 포수 김형준은 어깨가 KBO리그에서 가장 강한 축에 속한다. 이 장면에서 코칭스태프는 윤도현을 빼고 홍 모 씨로 선수교체를 했는데, 윤도현이 아직 경험치가 부족하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겠으나 어차피 김도영이 부상으로 인해 한달 여 정도 출전이 불투명해진 상황이라면 빠르게 변우혁을 콜업해서 쓰든지, 윤도현을 쓸 바에는 특정 상황에서 윤도현을 빼지 말고 쭉 1군 경험을 쌓게 해주는 편이 낫지 싶다.
최지민의 보더라인 아랫쪽을 파고드는 속구는 솔직히 좌우 가리지 않고 치기 힘든 위력적인 공이다. 이 공만 줄창 던져도 솔직히 30홀드는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2024시즌 영 갈피를 못잡다가 어느새 좌완 1옵션을 곽도규에게 내준 모양새이지만 이날의 투구로 좌완 1옵션 자리를 두고 벌이는 내부 경쟁이 볼만해지지 않았나 싶다.
한줄 요약이 가능한 경기다. 김도영의 빈자리가 너무나도 컸다. KIA타이거즈는 공격의 활로를 제대로 뚫지 못했고 전반적으로 홈런에 의존하는 단조로운 플레이로 일관했다. 그보다 앞서 이 경기에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양현종의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특히나 속구가 중구난방으로 흔들렸고 상대가 유인구에 반응하지 않으면서 카운트 싸움을 계속 불리하게 가져갔다.
2회초 데이비슨에게 맞은 불의의 한 방을 신호탄으로 5이닝 내내 한번도 깔끔하게 마무리 짓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KIA타이거즈 팬이라면 하필 이 경기 이전 양현종의 공식경기가 지난 한국시리즈 5차전 5실점하며 홈런 3방을 맞았던 그 경기라서 더욱 불안감이 커졌을 법 하다. 개인적으로는 양현종이 컨디션을 천천히 올리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그리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4월 중순이 되도록 양현종의 컨디션이 올라오지 않는다고 하면 그때는 이의리의 컴백시점이 앞당겨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본다.
22일 경기에서 불의의 부상을 당했던 김도영의 대체자원으로는 윤도현이 투입되었다. 앞서 22일 리뷰에서도 다뤘다시피 나는 윤도현을 선발로 내세웠다면 아예 한 경기는 통으로 내보내주는 게 맞다고 본다. 현재 KIA타이거즈 타선에서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있는 건 윤도현만이 아니다. 패트릭 위즈덤도 타구를 아예 앞으로 보내지 못하고 있고, 나성범이나 박찬호 또한 제대로 된 결과물과는 거리가 멀다. 전반적으로 타선 자체가 가라앉아 있는 상태라고 보는 게 맞다.
그러나 결국 타선은 언젠가는 제 페이스를 찾아 올라오게 되어있다. 윤도현 같은 선수에게는 심리적 안정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윤도현의 스윙이 너무 안좋다 싶으면 아예 2군으로 내려서 조정을 하든지, 아니라면 끝까지 기회를 주는 게 맞지 경기 후반에 박재현이나 홍종표 등으로 교체한다고 해서 생산성이 급격하게 늘어나진 않는다. (실제로 어제 오늘 윤도현의 대체로 들어온 선수들의 성적도 모두 좋지 않았다.)
2024시즌 3월과 4월 초를 생각하면 김도영도 제 페이스를 아예 찾지 못하고 있었다. 다들 '김도영이 구멍'이라고, '쟤만 살아났으면 좋겠다'고 그랬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폭발을 시작하더니 4월에만 10-10을 기록했다. 윤도현도 김도영 못지 않은 재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아예 박아놓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알아서 하라고 내버려둘 필요가 있다.
가장 아쉬운 장면은 6회 1실점을 하는 장면이었다. 임기영이 올라와서 권희동에게 안타를 내주고 번트로 2루, 깊은 플라이로 3루까지 내어준 상황, 2사에서 김휘집에게 맞은 적시타는 솔직히 말해서 너무 밋밋하게 밀려들어가는 공이었다. 임기영의 공이 스피드는 올라왔다고 하는데 그 대신 변화가 줄어든 느낌이다.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임기영도 조정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결국 1점차 패배를 했기 때문에 더더욱 이렇게 쉽게 점수를 내준 게 아쉬울 따름이다.
NC다이노스가 잘 풀어낸 건 아닌데 KIA타이거즈가 공격에서 제대로 된 활로를 찾지 못했던 경기라서 다시금 김도영의 빈자리가 아쉽게 느껴졌다. 이럴 때일수록 기존 선수들이 제 몫을 조금씩만 더 해주면 되는데 아직까지 타선이 전반적으로 컨디션이 올라오지 못했다 싶다. 시즌 극초반, 고작 두 경기 한 것에 불과하지만 이번 시즌 초반 경기 스케쥴이 지난해 9위, 10위, 8위와 잡혀 있다는 건 만약 이 때 불의의 일격을 당하면 이걸 만회하는데 그만큼 시간이 오래 소요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도 된다. 특히 다음주 키움히어로즈와의 경기는 도리어 KIA타이거즈 쪽에 부담감이 더 심할 수 있는 경기다. 이미 이번 시즌 순위경쟁팀인 삼성라이온즈와 LG트윈스가 개막시리즈 2연전을 모두 이긴 상황이라 더욱 분발이 필요하다.
키움히어로즈의 공격력만큼은 무시할 수준이 아니다. 주축이 신인 위주로 꾸려져 있다고 하지만 신인선수들의 페이스가 떨어지는 건 체력저하가 일어날 시즌 중반 이후의 일이지 지금은 충분한 체력을 바탕으로 더 겁없이 덤벼들 수 있는 상황이다. 특히 3월 26일 등판할 정현우의 경우는 프로 선수들도 쉽게 공략하기 어려운, 까다로운 볼을 던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3연전 전체가 경기 초반 분위기 싸움이 될 가능성이 높은데 KIA타이거즈 입장에서는 전반적으로 가라앉은 타격페이스를 끌어올려 줄 선수가 필요하다.
한 시즌 리뷰 겸 야구일기를 처음 써보는 것이라 계속 포맷이 오락가락하다가 프리뷰보다는 리뷰 위주로 작성해보기 위해 브런치북을 아예 삭제하는 초강수를 던졌다. 야구는 순리로 하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 정작 내 삶은 초반부터 초강수라니, 민망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야구가 시작되자마자 단 하루만에 일희일비를 다 겪고 나니 도리어 살짝 해탈한 기분도 든다. 어제는 김도영의 부상소식을 듣고 옷걸이에 걸어놓은 김도영 유니폼을 보며 괜히 한숨만 쉬느라 이겨도 별로 기쁘지 않더니만, 오늘은 다행히 김도영 선수의 햄스트링 부상 정도가 높지 않다는 소식을 듣고 졌음에도 안도의 한숨만 쉬고 있다. 진짜... 도영아 니땀시 사니까 제발 깨끗하게 나아서 건강하게 돌아오고 오자마자 40-40 시동걸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