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미르의 영화영수증 #156] <영원>
죽음 뒤에도 선택의 순간은 찾아온다. 데이빗 프레인 감독의 <영원>은 1930~40년대 '할리우드 스크루볼 코미디'의 DNA를 사후세계라는 판타지 설정 속에 이식한 작품이다. 캐서린 헵번과 캐리 그랜트가 주고받던 날카로운 농담과 물리적 코미디, 티격태격 속 피어나는 로맨스의 공식을 죽은 자들의 세계로 옮겨왔다. 빠른 대화 템포, 과장된 몸짓, 그리고 사랑을 둘러싼 혼돈. 이 고전적 장르 문법 위에 A24의 세련된 미학을 얹은 결과물은 분명 매력적이다.
80대 노부부 '래리'(베리 프리머스)와 '조앤'(베티 버클리)은 손주의 성별 공개 파티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낸다. 산과 바다 중 어디로 휴가를 갈지 다투던 그들에게 죽음은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래리'가 프레츨에 목이 막혀 사망한 뒤, '조앤' 역시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뜬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철도 터미널과 숙박시설, 대형 전시장이 뒤섞인 이상한 중간 지대다. 이곳의 묘한 법칙 하나. 죽은 자들은 생전 최고로 만족스러웠던 나이의 외형을 되찾는다.
이 대기실의 규칙은 간결하지만 가혹하다. 일주일 유예 기간 동안 영원히 살아갈 세계를 골라야 하고, 결정 이후 번복은 불가능하다. 광활한 전시장에는 저마다의 낙원을 홍보하는 부스들이 빼곡하다. 해변 월드, 산악 월드, 스파이 월드, 우주 월드를 비롯해 '남성 부재 유토피아'는 예약이 폭주해서 대기자 명단조차 받지 않는 상태다. '래리'(마일즈 텔러)는 '조앤'이 도착할 때까지 대기하며 둘의 미래를 구상한다. 균열은 '조앤'(엘리자베스 올슨)이 나타나면서 생긴다.
'조앤'의 첫 남편 '루크'(칼럼 터너)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한국전쟁 전사자인 '루크'는 이곳에서 술을 따르고 잔을 닦으며 반세기 이상을 홀로 견뎠다. '조앤'과의 재회만을 염원하면서. 이제 '조앤' 앞에는 두 갈래 길이 놓인다. 전쟁이 빼앗아 간 2년의 사랑과, 인생 대부분을 함께 걸어온 65년의 동반자 사이에서.
데이빗 프레인 감독은 사후세계를 1960년대 감성을 품은 거대한 아트리움으로 구현했다. 낮과 밤은 천장에서 내려오는 거대한 커튼으로 구현된다. 이 철저히 인공적인 세계는 영원이라는 개념의 공허함을 시각화한다. 완벽해 보이지만 생명력 없는 공간. 영원 박람회에 등장하는 광고들은 인간의 도피적이고 개인적인 욕망을 탐색하는 장치다. '의술 경력 없어도 가능한 메디컬 월드', '당신도 가능합니다 스파이 월드'가 그러하다.
엘리자베스 올슨은 '조앤'을 클래식 스크루볼 코미디의 히로인처럼 연기한다. 히스테리컬하지만 결코 통제를 잃지 않는, 패닉 상태에서도 품위를 유지하는 여성 말이다. 80대 노인의 영혼이 30대 몸에 갇힌 상황을 물리적으로 구현하는 엘리자베스 올슨의 연기는 탁월하다. 스쿼트를 할 때 무릎이 안 아프다며 신기해하는 장면, 옛 연인 앞에서 소녀처럼 얼굴을 붉히는 순간이 그러했다.
마일즈 텔러가 맡은 '래리'는 평범하고, 투덜대기 좋아하고, 아내를 당연하게 여겨온 남자다. 그는 '루크'의 압도적인 외모 앞에서 위축되는 남자를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루크'를 향한 질투 섞인 농담들, 아내를 다시 유혹해야 하는 상황의 어색함. 마일즈 텔러의 연기는 '래리'를 뻔한 방해꾼이 아닌, 공감 가는 인물로 만든다.
칼럼 터너는 1950년대 스타인 몽고메리 클리프트의 스타일을 통해 우아함과 비극성을 체화한다. '루크'는 완벽해 보이지만 영화는 그에게 균열을 만든다. 수십 년 동안 이곳에서 다른 여성들과 관계를 가졌다는 고백, '조앤'의 자녀 이야기를 들을 때 번지는 질투. 칼럼 터너는 이상화된 첫사랑이라는 관념에 인간적 복잡성을 더한다. '루크'의 정체성엔 한국전쟁 전사자라는 이력이 깔려 있다. 영화는 이를 낭만적 설정으로만 소비하지만, 한국 관객에게 이 배경은 다른 무게로 다가온다. '래리'가 경쟁심에서 우러나온 농담으로 '루크'의 참전 경험을 깎아내릴 때, 그 순간의 가벼움 속에서 일부 관객은 '루크'에게 편을 들지도 모르겠다.
한편, 데이빗 프레인 감독은 작품을 준비하면서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 그는 "뇌 손상, 실명, 심지어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수술의 위험천만한 경고들 앞에서 내 삶에서 진정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라고 말했다. "사후세계를 다룬 영화 <영원>을 찍으며 죽음에 대한 공포를 덜어낼 수 있었다. '조앤'의 대사처럼 삶의 아름다움은 끝이 있다는 사실에서 온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라는 그의 개인적 경험은 영화에 진정성을 부여한다. 선택의 중요성, 유한한 시간의 가치.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명료하다.
그렇게 <영원>은 매력적인 아이디어, 훌륭한 배우들, 세련된 미장센을 갖춘 작품이다. 스크루볼 코미디의 경쾌함과 실존적 질문의 무게 사이에서 완벽한 균형을 찾지는 못했지만, 그 시도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다. ★★★
※ 영화 리뷰
- 제목 : <영원> (Eternity, 2025)
- 개봉일 : 2026. 02. 04.
- 제작국 : 미국
- 러닝타임 : 114분
- 장르 : 멜로/로맨스, 코미디, 판타지
-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 감독 : 데이빗 프레인
- 출연 : 엘리자베스 올슨, 마일즈 텔러, 칼럼 터너, 존 얼리, 올가 메레디즈 등
- 화면비율 : 2.39: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