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여성 주도 스릴러의 귀환과 진화

[양미르의 영화영수증 #155] <하우스메이드>

by 양미르 에디터
5028_5651_96.jpg 사진 = 영화 '하우스메이드' ⓒ (주)누리픽쳐스

1990년대 할리우드는 여성 주도 스릴러의 황금기였다. 캐시 베이츠가 작가를 납치해 감금하는 <미저리>(1990년)를 시작으로, 레베카 드 모네이가 완벽한 가정을 파괴하는 <요람을 흔드는 손>(1992년), 제니퍼 제이슨 리가 룸메이트의 정체성을 훔치려는 <위험한 독신녀>(1992년) 같은 작품들이 극장가를 장악했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흐른 지금, 폴 페이그 감독이 프리다 맥파든의 베스트셀러를 각색한 <하우스메이드>로 이 장르의 부활을 선언한다. 흥미로운 건 폴 페이그 감독이 과거의 공식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내 여자친구의 결혼식>(2011년), <스파이>(2015년), <고스트버스터즈>(2016년), <부탁 하나만 들어줘>(2018년)를 통해 여성 캐릭터를 중심에 두되, 기존 장르의 클리셰를 비트는 연출력을 입증해 왔다. <하우스메이드>는 그 연장선 위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원작 소설은 전 세계 350만 부 이상 팔린 화제작이지만, 폴 페이그 감독은 충실한 각색보다 영화적 재해석을 택했다. 각본을 맡은 레베카 소넨샤인과 함께 그는 소설의 1인칭 서술을 다층적 시점으로 전환했고, 결말부를 영화 매체에 맞게 재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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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시드니 스위니)는 위조된 이력서를 들고 상류층 저택의 가정부 면접장에 나타난다. 안경을 쓰고 단정한 옷차림을 한 '밀리'의 모습은 진지해 보이지만, 면접을 마치고 차에 오르는 순간 안경을 벗어 던지며 한숨을 내쉰다. 모든 게 연극이었다. '밀리'는 살인죄로 15년 형을 선고받았다가 10년 만에 가석방된 전과자다. 보호관찰 조건을 충족하려면 안정적인 직업과 주거지가 필수다. 그렇지 않으면 남은 5년을 감옥에서 보내야 한다.

놀랍게도 '니나'(아만다 사이프리드)는 '밀리'를 고용한다. 화려한 저택을 안내하며 따뜻한 미소를 짓던 '니나'는 '밀리'에게 다락방 침실을 보여준다. 작은 삼각 창문 하나뿐인 폐쇄적인 공간이지만, 차박 생활을 하던 '밀리'에겐 천국처럼 느껴진다. '니나'는 다락방에서 "우리가 무슨 괴물처럼 보이나요?"라며 웃는다. 그 웃음 속에 무언가 섬뜩한 기운이 감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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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출근 다음 날, 상황이 180도 바뀐다. 아침에 내려간 '밀리'는 엉망진창이 된 부엌을 마주한다. 청소를 마치자 '니나'가 나타나 학부모회 연설문을 버렸다며 히스테리를 부린다. 접시가 날아다니고 서랍이 쾅쾅 닫힌다. 전날의 상냥함은 온데간데없다. 이 혼란을 수습하는 건 '니나'의 남편 '앤드루'(브랜든 스클레너)다. 그는 차분하게 아내를 달래고 '밀리'에게 미안하다는 눈빛을 보낸다. '니나'의 광기와 '앤드루'의 자상함이 대비될수록, '밀리'는 이 완벽해 보이는 남편에게 위험한 끌림을 느낀다.

<하우스메이드>의 큰 미덕은 관객의 기대를 계속 배신한다는 점이다. 초반에는 전형적인 '미친 아내' 이야기처럼 보인다. '니나'가 히스테리를 부리고, '앤드루'가 '니나'를 달래며, '밀리'가 둘 사이에 끼어드는 구도다. 1990년대 스릴러라면 여기서 '밀리'가 점점 광기를 드러내며 가정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갔을 것이다. 하지만 폴 페이그 감독은 중반부에 이 모든 가정을 뒤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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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전반부를 사건의 전개로, 후반부를 해설서처럼 구성한다. 관객이 앞서 목격한 장면들을 다른 시점에서 재조명하며,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인지에 관한 판단을 여러 차례 뒤집는다. 이 과정에서 폴 페이그 감독은 <요람을 흔드는 손>이 그랬던 것처럼 여성 대 여성의 대결 구도를 설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여성들이 어떻게 남성 중심 사회의 폭력 시스템에 맞서는지를 보여준다.

'윈체스터 저택'은 또 하나의 캐릭터로 기능한다. 완벽하게 통제된 크림색 인테리어, 웅장한 나선형 계단, 그리고 '밀리'가 머무는 다락방의 폐쇄성은 이 가족의 비밀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특히 다락방 문의 잠금장치가 바깥쪽에 있다는 설정은 권력관계를 명확히 드러낸다. 여기에 치밀한 프레이밍과 조명으로 저택의 이중성을 극대화했다. 인물들이 통제력을 잃어갈수록 공간의 온기는 사라지고 차갑고 위협적으로 변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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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131분의 러닝타임은 다소 여유롭고, 중반부에서 같은 패턴이 반복되는 느낌을 준다. '니나'가 '밀리'를 괴롭히고 '앤드루'가 중재하는 장면이 몇 차례 이어지면서 서사의 추진력이 약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하지만 이런 사소한 흠결들은 영화가 제공하는 장르적 쾌감 앞에서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락 영화로 기능하면서, 그 목적을 훌륭히 달성한다. 그 결과 북미에서 흥행에 성공해 속편 제작이 확정되기도 했다.

<하우스메이드>가 제공하는 건 복잡한 메시지나 깊은 성찰이 아니다. 이 영화는 매혹적인 배우들의 연기, 치밀하게 설계된 반전, 그리고 화려한 미장센이 어우러진 순수한 장르 영화의 즐거움이다. 겨울 극장가에 찾아온 이 스릴러는 팝콘을 들고 즐기기에 충분히 매력적이다. 폴 페이그 감독의 저력은 여전하다. ★★★

2026/02/03 CGV 건대입구


※ 영화 리뷰
- 제목 : <하우스메이드> (The Housemaid, 2025)
- 개봉일 : 2026. 01. 28.
- 제작국 : 미국
- 러닝타임 : 131분
- 장르 : 스릴러, 미스터리
-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 감독 : 폴 페이그
- 출연 : 시드니 스위니, 아만다 사이프리드, 브랜든 스클레너, 미켈레 모로네, 엘리자베스 퍼킨스 등
- 화면비율 : 2.39: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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