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방 하나에서 도시 전체를 인질로 잡은 남자

[양미르의 영화영수증 #162] <폭탄>

by 양미르 에디터
5141_5976_5553.jpg 사진 = 영화 '폭탄' ⓒ (주)제이에이와이이엔터테인먼트, (주)로커스

술에 취해 자판기를 부수고 가게 직원을 폭행한 혐의로 중년 남자가 경찰서에 연행된다. 초라한 행색, 어눌한 말투, 이름 외의 모든 기억을 잃었다는 황당한 진술까지. 형사 '토도로키'(소메타니 쇼타)의 눈에 그는 그저 귀찮은 잡범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사건을 정리하려던 '토도로키'에게 남자는 느닷없이 말한다. "한 시간 뒤에 아키하바라에서 폭발이 일어날 겁니다." 허풍이려니 했다. 그런데 정각, 예언은 현실이 됐다.


이것이 영화 <폭탄>의 출발이다. 재일교포 3세 작가 오승호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나가이 아키라 감독이 연출한 이 작품은 도쿄 연쇄 폭발 테러를 예언하는 남자 '스즈키 다고사쿠'(사토 지로)와 경시청 수사 1과 형사 '루이케'(야마다 유키)의 취조실 대결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두 번째 폭발까지 현실이 되자 사건은 경시청으로 이관되고, 베테랑 형사 '키요미야'(와타베 아츠로)가 먼저 심문에 나선다. '스즈키'는 이상한 '게임'을 제안한다. 폭발 위치를 향한 단서를 던지되, 수수께끼 같은 퀴즈의 형식으로만 답을 허락한다. 한쪽은 도시를 구해야 하고, 다른 한쪽은 누구도 알 수 없는 의도를 품은 채 조용히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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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최하단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인간이, 취조실이라는 가장 좁은 공간에서 경찰 조직 전체를 뒤흔들기 시작한다. <폭탄>의 구조는 이 역설을 정교하게 활용한다. '키요미야'는 노련한 협상가답게 존대와 양보로 '스즈키'를 다루려 하지만, '스즈키'가 던지는 선문답 앞에서 결국 자신의 위선부터 발가벗겨진다. '루이케'는 다른 전략을 택한다. '스즈키'의 논리를 정면으로 받아치는 대신, 그 안으로 먼저 들어가 버린다.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었냐"라는 물음에 "당연한 소리를 한다"라며 황당하다는 얼굴로 응수하는 '루이케'의 방식은, '스즈키'를 무력화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그와 같은 바닥에 서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그제야 '스즈키'의 진짜 속내가 조금씩 표면으로 올라오기 시작한다. 영화 전반부가 이 심리전의 밀도 안에 있을 때, <폭탄>은 꽤 위협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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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을 맡은 나가이 아키라 감독은 취조실 촬영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카메라와 삼각대 사이에 스프링을 끼워 전반부 전체에 미세한 흔들림을 구현하고, '루이케'와 '스즈키'의 본격 대결이 시작되는 후반부에서야 이를 제거해 화면을 고정했다. 두 인물 사이의 벽에 새겨진 균열은 서로를 이해하면서도 끝내 같은 편이 될 수 없는 관계를 시각적으로 새긴다. 조명도 시간이 흐를수록 서서히 어두워져, 관객은 어느 순간 영화관이 아닌 취조실 안에 갇혀있다는 감각을 갖게 된다.

사토 지로의 연기는 <폭탄>의 가장 확실한 자산이다. 코미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이미지를 구축해 온 그가 꺼내든 '스즈키'는 익살스럽고 순해 보이는 얼굴 뒤에 설명되지 않는 공포를 쌓아 올린 인물이다. 사토 지로는 몸을 크게 쓰지 않는다. 의자에 앉아 말을 이어갈 뿐인데, 입술의 움직임과 손가락의 흐름, 대사를 읊는 리듬이 전부 계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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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다 유키의 '루이케'도 충분히 설득력 있다. 첫인상만으로는 엘리트 형사와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누구보다 날카로운 통찰력과 집요한 관찰력으로 사건의 본질에 접근하는 인물이라는 설계는 꽤 잘 작동한다. 그는 원작 소설을 수차례 반복해 읽으며 의상과 말투, 몸짓까지 세밀하게 설계했고, 촬영 현장에서도 대본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이 두 배우의 대결이 <폭탄>의 핵심이고, 그것만으로도 137분을 버틸 수 있다.

문제는 그 버팀의 질감이다. <폭탄>은 '스즈키'가 던지는 도발적인 질문들, "생명은 평등하다는 게 진짜인가요?"라는 추궁을 통해 인간 내면의 위선을 정면으로 들이댄다. 경찰이 무의식적으로 노숙자 급식소보다 유치원 단서에 집중했다는 사실을 '스즈키'가 짚어내는 장면은 이 영화가 가장 날카로워지는 순간이다. 원작자 오승호가 작품 전반에 걸쳐 탐구해 온 "살인자와 함께 살 수 있을 것인가"라는 불편한 물음이 여기서 구체적인 형상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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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영화는 그 예봉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한다. 후반부로 갈수록 감동과 교훈의 코드가 끼어들고, 날이 서 있어야 할 서사가 둥글어진다. 사토 지로가 만들어낸 '스즈키 다고사쿠'는 오래 기억될 캐릭터다. 그 점은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폭탄>은 그 괴물을 끝까지 괴물로 두지 못했다. 어딘가에서 설명하려 하고, 어딘가에서 이해시키려 한다. 폭탄은 터졌지만, 진짜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

2026/03/11 CGV 용산아이파크몰


※ 영화 리뷰
- 제목 : <폭탄> (Bakudan, 2025)
- 개봉일 : 2026. 03. 18.
- 제작국 : 일본
- 러닝타임 : 137분
- 장르 : 스릴러
-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 감독 : 나가이 아키라
- 출연 : 사토 지로, 야마다 유키, 소메타니 쇼타, 와타베 아츠로, 이토 사이리 등
- 화면비율 : 2.39: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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