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미르의 영화영수증 #165] <명탐정 코난: 세기말의 마술사>
1999년 일본에서 개봉한 극장판 <명탐정 코난: 세기말의 마술사>가 27년 만에 국내 극장 스크린에 처음 걸렸다. 투니버스 같은 TV 방영으로만 접할 수 있었던 작품이 4K 리마스터링과 새로운 우리말 더빙을 입고 돌아온 것이다. 팬덤 사이에서 오랜 세월 극장판 <명탐정 코난> 최고작 중 하나로 꼽혀온 작품이다. 실제로 <세기말의 마술사>는 극장판 <명탐정 코난> 사상 최초로 일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영화는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유산인 '파베르제의 달걀', 이른바 '메모리즈 에그'가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세기말 최후의 보물로 불리는 이 달걀을 노리는 '괴도 키드'(신용우/야마구치 캇페이 목소리)의 예고장이 도착하고, '코난'(김선혜/타카야마 미나미 목소리) 일행과 서쪽의 고등학생 탐정 '핫토리 헤이지'(최재호/호리카와 료 목소리), '괴도 키드' 특별 수사팀이 한자리에 모인다. 신출귀몰한 마술 트릭으로 수사망을 농락한 '키드'는 달걀을 손에 넣는 데 성공하지만, 정체불명의 저격수에게 맞아 행방불명된다. 달걀을 되찾은 '코난'은 그 안에 숨겨진 수수께끼를 발견하고, 비밀을 풀기 위해 크루즈를 타고 도쿄로 향한다.
이동하는 선박 위에서 의문의 살인 사건이 터진다. 로마노프 왕조의 비밀, 정체불명의 범죄 수배자 '스콜피온', 그리고 '코난'과 '쿠도 신이치'(야마구치 캇페이/강수진 목소리)의 정체가 드러날 위기까지 세 갈래의 미스터리가 동시에 진행된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숨겨진 비밀이 단계적으로 밝혀지는 구조는 <명탐정 코난>표 추리의 정석을 충실히 따른다. 1999년, 진짜 '세기말'을 배경으로 로마노프 왕조라는 역사적 소재를 택한 것은 감독 코다마 켄지의 선택이다. 극장판이 20세기와 21세기의 문턱에 걸쳐 있던 시대의 분위기를 스토리에 녹여낸 작품으로, 시리즈 안에서도 독특한 시대적 질감을 갖는다.
<세기말의 마술사>의 가장 큰 수확은 '괴도 키드'다. 마술 트릭으로 수사망을 따돌리고, 위기의 순간에도 여유를 잃지 않는 '키드'의 존재감은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1대 '괴도 키드'였던 아버지의 의문의 죽음을 밝히기 위해 뒤를 이어 괴도가 된 고등학생 '쿠로바 카이토'의 서사는 짧지만 뚜렷하게 박힌다. 이 작품이 극장판 역사상 '키드'가 처음 등장한 편이라는 점에서, 이 인상적인 첫 등장은 이후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된다.
'하이바라 아이'(우정신/하야시바라 메구미 목소리), '핫토리 헤이지'도 마찬가지다. <코난> 시리즈를 통틀어 핵심 인물로 자리잡은 이 캐릭터들이 모두 이 한 편에서 처음 극장판 무대를 밟았다. 팬이라면 그것만으로도 다시 볼 이유가 충분하다.
반면 설정은 군데군데 삐걱거린다. 로마노프 왕조의 후예, 정체불명의 저격수, 선내 살인, 파베르제 달걀의 비밀이 한 편에 욱여넣어지다 보니 이야기의 무게중심이 흔들린다. 각각의 요소는 흥미롭지만 유기적으로 맞물리기보다 병렬로 쌓이다가 후반부에 한꺼번에 쏟아진다. 로마노프 왕조와 얽힌 클라이맥스는 특히 납득하기 어려운 비약을 요구하는데, 1999년이라는 시대적 낭만 위에서 기능했을 설정이 지금의 눈으로 보면 무리수로 읽히는 지점이다. 1990년대 말 특유의 세기말 정서와 낭만이 이 영화를 오래 사랑받게 한 동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서사의 허술함을 가리는 데 기댄 부분도 있다.
'신이치'와 '모리 란'(이현진/야마자키 와카나 목소리)의 로맨스는 여전히 유효하다. 고백 이후의 달달함이 아니라 마음이 닿을 듯 말 듯한 팽팽한 긴장감, 그 시절 코난 시리즈 특유의 감성이 이 작품에 가장 짙게 배어 있다. 영화를 감싸는 B'z의 엔딩곡도 그 감성을 완성하는 데 기여한다. B'z는 이후 <베이커가의 망령>(2002년), <침묵의 15분>(2011년) 등에서 주제가를 맡은 바 있어, <코난> 시리즈와의 오랜 인연을 이어간다.
<세기말의 마술사>는 흠 없는 걸작이 아니다. 설정의 과욕과 서사의 비약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괴도 키드'의 첫 등장이 남기는 강렬한 인상, 시리즈의 뼈대를 이루는 캐릭터들이 한자리에 처음 모이는 역사적 편, 그리고 세기말이라는 시대가 만들어낸 낭만의 밀도는 이 영화를 단순한 팬서비스 이상으로 만든다. 극장에서 처음 보는 이에게는 <코난> 시리즈가 어디서부터 지금에 이르렀는지를, 오래전부터 알아온 이에게는 그 시절의 감각을 돌려준다. ★★★
※ 영화 리뷰
- 제목 : <명탐정 코난: 세기말의 마술사> (Detective Conan: The Last Wizard of the Century, 1999)
- 개봉일 : 2026. 03. 27.
- 제작국 : 일본
- 러닝타임 : 92분
- 장르 : 드라마, 코미디
-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 감독 : 코다마 켄지
- 한국어 목소리 출연 : 강수진, 김선혜, 신용우, 이현진, 이정구 등
- 화면비율 : 1.85: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