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은 두 번 이상 말하지 말라는데…

[양미르의 영화영수증 #166] <프로텍터>

by 양미르 에디터
5167_6044_206.jpg 사진 = 영화 '프로텍터' ⓒ 아센디오

'니키'(밀라 요보비치)는 심문 장면에서 이렇게 말한다. 두 번 이상 말하지 말라고. 한 번이면 충분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영화 <프로텍터>는 그 원칙을 스스로 지키지 못한다. '니키'가 특수부대 출신이라는 걸, 딸을 오래 떠나 있었다는 걸, 72시간이 얼마나 촉박한지를. 내레이션으로 한 번, 대사로 한 번, 다시 다른 인물의 입을 빌려 반복한다. 주인공이 스스로 세운 원칙을 영화가 정면으로 어기는 것, 그게 이 작품의 가장 큰 아이러니다.


미국 특수부대 요원 출신 '니키'는 수년간의 해외 파병 끝에 남편의 죽음으로 전역하고, 딸 '클로이'(이사벨 마이어스)의 곁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오랜 부재가 남긴 간극은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클로이'의 열여섯 번째 생일날, 사소한 말다툼 끝에 혼자 집을 나선 딸은 인신매매 조직 '신디케이트'에 납치된다. 납치 피해자 생존 골든타임인 72시간. '니키'는 시계를 손목에 차고 추격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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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주 차량 지붕 위에 맨몸으로 올라타는 시퀀스는 이 영화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프로텍터>는 30시간을 건너뛰고 본격적인 추격으로 진입하는데, 문제는 그 이후부터다. 장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보여주기'의 자리를 내레이션과 다른 인물들의 설명이 대신 차지한다. 관객이 목격해야 할 장면들이 대사로 요약되어 나온다.

문제는 대사도 내레이션도 그만큼 믿음직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하나의 예로, '니키'가 "킬 박스"의 개념을 설명하고, 그 설명을 행동으로 반복할 때가 있다. 이는 관객의 이해를 돕기보다는 친절한 조교의 설명처럼 느껴진다. 냉혹한 전투 기계이면서 동시에 딸 앞에선 어쩔 줄 모르는 엄마, 그 두 얼굴 사이의 충돌. 밀라 요보비치가 이미 표정과 몸짓으로 구현하고 있는데, 영화는 그 위에 내레이션을 한 겹 더 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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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참신한 장면도 있다. 각본을 쓴 문봉섭 작가는 "밀라 요보비치의 시그니처 액션을 살리면서도 기존에 보지 못한 장면을 만들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스케이트보드를 활용한 시퀀스는 그 의도가 실제로 살아 있는 몇 안 되는 장면이다. <존 윅> 시리즈로 알려진 87노스 프로덕션 무술팀이 설계한 이 장면은 화려한 합이 아니라 관절 공략과 상대 무기 탈취 중심의 실전형 액션으로, 문 작가가 지향한 "엄마라는 인물의 현실감을 중심에 둔" 방향성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이다.

밀라 요보비치는 이 영화를 위해 10kg을 감량하고, 실제 군인들과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전술적 움직임과 심리 상태를 분석했다. 대역이 준비된 고난도 액션도 직접 소화했다는 문 작가의 증언은 스크린 위에서 설득력이 있다. 몸이 말하는 건 확실하다. 밀라 요보비치는 '니키'에 대해 "결점이 많은 인물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군인으로서의 책임과 엄마로서의 본능이 충돌하는 지점을 표현하고 싶었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 의도는 유효하고, 배우의 연기는 그걸 충분히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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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각본이 그 균열을 메워버린다. 빌런들은 납득하기 어려울 만큼 무능하고, 시간 압박은 화면 구석에 숫자만 남긴 채 이야기의 동력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3막의 반전은 영화의 가장 과감한 도박이다. 몇몇 관객에게는 감정의 지층을 새로 읽게 만드는 충격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반전이 힘을 갖기 위해선 앞선 두 막이 쌓아온 것들이 충분히 견고해야 한다. 이것들이 반전의 무게를 받쳐주지 못한다. 후속편을 암시할 것 같은 결말은 미완성의 인상을 더욱 짙게 남긴다.

<프로텍터>가 각본에서 캐스팅, 제작, 배급까지 한국 제작진이 주도한 첫 할리우드 프로젝트라는 사실은 분명히 의미 있는 발자취다. 2024년 아메리칸 필름 마켓에서 80개국에 선판매되고, 2025년 부산국제영화제 '미드나잇 패션' 섹션에 초청된 이력도 그 가능성을 증명한다. K-콘텐츠의 새로운 경로를 개척하려는 야심은 읽힌다. 다만 그 야심이 완성도로 이어지기 위해선, 다음 작품에서 영화가 스스로 믿는 법을 먼저 익혀야 할 것이다. ★★☆

2026/03/29 메가박스 강남


※ 영화 리뷰
- 제목 : <프로텍터> (Protector, 2025)
- 개봉일 : 2026. 03. 25.
- 제작국 : 한국
- 러닝타임 : 93분
- 장르 : 액션
-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 감독 : 애드리언 그런버그
- 출연 : 밀라 요보비치, 매튜 모딘, 이사벨 마이어스, 디비 스위니, 돈 하비 등
- 화면비율 : 2.35: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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