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를 믿었던 자의 마지막을 보며

[별세개반이상만 #88] <두 검사>

by 양미르 에디터

1939년 발표된 김기림의 시 '바다와 나비'에서, 아무도 '나비'에게 바다를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나비'는 청무우밭인가 바다로 날아들었다가, 채 닿지도 못하고 돌아서죠. 1937년 소련의 '코르녜프'(알렉산드르 쿠즈네초프)도 그런 나비인데요. 그는 바다가 바다인 줄 모르고 뛰어들었고, 아무도 미리 가르쳐주지 않았으며, 아마 가르쳐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두 검사>는 '브랸스크 교도소'의 철문이 열리는 소리로 시작하죠. 무거운 자물쇠가 풀리고 닫히는 소리가 영화 내내 반복되는데, 그 소리는 어느 순간부터 단순한 효과음이 아니라 체제의 호흡처럼 들립니다. 철문 안에서 죄수 하나가 커다란 자루를 넘겨받는데요. 자루 안에는 수감자들이 스탈린에게 보내는 탄원서가 가득 담겨 있죠. 죄수는 탄원서를 하나씩 집어 몇 줄 훑어보곤 난로에 던집니다. 그러다 손가락을 멈추게 하는 편지 하나를 발견하죠. 피로 쓰인 쪽지였는데요. 이 노인의 사소한 일탈이 영화 전체의 출발점입니다.

5183_6080_3431.jpg 사진 = 영화 '두 검사' ⓒ 엠엔엠인터내셔널(주)

혈서는 기적처럼 '코르녜프'의 손에 닿죠. 갓 법학대학을 졸업하고 감찰 검사로 부임한 그는 소련의 대의를 믿어 의심하지 않습니다. 혈서의 주인 '스테프냐크'(알렉산드르 필리펜코)는 1917년 혁명에 참여한 볼셰비키 원로이자 법학자인데요. 그는 고문으로 갈비뼈가 부러지고 온몸에 멍이 든 채 '코르녜프' 앞에 나타나지만, 말하는 목소리에는 아직 힘이 있는데요. 그러면서 자신이 당한 폭력을 NKVD 내부의 '사보타주'라 부르죠. 스탈린의 위대한 소련이 이럴 리 없다는, 체제에 대한 마지막 믿음. '코르녜프'는 그 믿음을 이어받아 모스크바행 기차에 오릅니다.


<두 검사>의 탁월한 점은 '코르녜프'의 여정을 영웅의 서사로 포장하지 않는다는 데 있죠. 그는 용감하지만, 그 용기는 체제의 실체를 몰라서 가능한 용기입니다. 교도소에서 모스크바 검찰청으로 무대가 바뀌어도 구조는 동일하죠. 끝없는 대기실, 무표정한 관료들, 정중하게 전달되는 거절. 세르게이 로즈니차 감독은 두 공간을 의도적으로 거울처럼 배치합니다. 감독은 이 구조에 대해 "러시아 민담의 플롯을 가져왔다"라고 밝혔는데요. '가라, 그러나 어디로 가야 할지는 모른다. 찾아라, 그러나 무엇을 찾아야 할지는 모른다.' 동화 속 주인공처럼 '코르녜프'는 눈을 가린 채 세계를 더듬어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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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르 필리펜코가 맡은 1인 2역은 영화의 또 다른 축이죠. '스테프냐크' 외에도 그는 모스크바행 기차에서 '코르녜프'와 마주치는 외다리 참전용사를 연기합니다. 레닌에게 직접 청원하러 갔던 일화를 길게 늘어놓는 이 인물은, 인민의 이름으로 세워진 체제가 인민을 어떻게 대우하는지를 시대를 가로질러 반복 증언하죠. 같은 배우의 육체 위에 두 개의 패배가 겹쳐지는 순간은 영화에서 가장 서늘한 장면 중 하나입니다. 알렉산드르 필리펜코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공개적으로 낸 뒤 리투아니아로 거처를 옮겼는데요. 과거 소련의 폭력을 스크린 위에서 증언하는 그의 선택은, 픽션과 현실이 맞닿는 지점에서 남다른 무게를 갖습니다.

<두 검사>의 촬영감독 올레그 무투는 색채 팔레트에서 '삶의 색'을 의도적으로 걷어냈습니다. 검정, 회색, 갈색, 짙은 남색을 사용해, 컬러 영화임에도 온기가 없죠. 아카데미 비율(1.37:1)의 좁은 프레임은 체제의 압박을 물리적으로 구현합니다. 카메라는 거의 움직이지 않고, 등장인물들은 고정된 구도 안에서 장기판의 말처럼 움직이죠. 참고로 촬영지는 1905년 제정러시아 시절에 지어진 라가의 실제 폐교도소인데요. EU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최근 폐쇄된 이 건물을 택한 것은 단순한 세트 선택 이상의 의미를 갖죠. 감독은 "수세기에 걸쳐 쌓인 고통의 기운과 감옥 특유의 냄새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라고 말했는데요. 배우들이 몸으로 느꼈을 그 공간의 기억이 화면 너머로 전달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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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두 검사>는 '코르녜프'가 결국 어떻게 되는지 직접 보여주지 않는데요. 결말은 충분히 예측 가능하며, 로즈니차 감독은 반전을 노리지 않습니다. 불가피함의 과정을 느린 호흡으로 따라가며, 그 과정이 얼마나 합리적인 외양을 두르고 있는지를 차갑게 드러낼 뿐이죠. 나비는 바다를 몰랐습니다. 더 정확히는, 바다가 바다인 줄 알아도 날아들었을지 모르죠. 그것이 '코르녜프'가 우리에게 남기는 가장 불편한 질문입니다. ★★★☆

2026/04/02 메가박스 군자


※ 영화 리뷰
- 제목 : <두 검사> (Two Prosecutors, 2025)
- 개봉일 : 2026. 04. 01.
- 제작국 :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 러닝타임 : 118분
- 장르 : 드라마
-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 감독 : 세르히 로즈니차
- 출연 : 알렉산드르 쿠즈네초프, 알렉산드르 필리펜코, 아나톨리 벨리, 안드리스 케이슈, 비타우타스 카니우소니스 등
- 화면비율 : 1.37: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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