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미르의 영화영수증 #40] 강이관 감독의 <바이러스>
"아무리 싱겁다고 엔딩에 그런 도파민을 넣을 필요까지야." 이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는 <바이러스>는 참신한 소재와 호화로운 배우 라인업, 그리고 6년이라는 기다림 끝에 개봉한 작품이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서는 발걸음은 묘하게 허탈했다. 강이관 감독이 그토록 추구했다는 '몽글몽글함'이 오히려 작품의 가장 큰 발목을 잡은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기력도, 의욕도, 연애 세포도 바닥난 일상을 보내고 있는 번역가 '택선'(배두나)은 동생의 강요로 어색한 소개팅 자리에 앉게 된다. 상대는 연애와는 거리가 먼 모태솔로 바이러스 연구원 '수필'(손석구)이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자리를 뜬 '수필'은 다음 날 갑자기 '택선'의 집을 찾아와 돌발 행동과 함께 청혼까지 한다. 당황한 '택선'은 그를 쫓아내지만, 다음 날부터 '택선'의 세상은 온통 핑크빛으로 물든다.
옷장 깊숙이 넣어두었던 화려한 원피스가 끌리고, 항상 무시하던 자동차 딜러 동창 '연우'(장기하)의 영업 문자에도 설레는 마음이 든다. 알고 보니 '택선'은 '수필'에 의해 '톡소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 이 바이러스는 감염자를 사랑에 빠지게 하지만 24시간 이내에 사망에 이르게 하는 치명적인 것이었다. '택선'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죽기 전 '수필'이 남긴 메시지를 통해 바이러스 전문가 '이균'(김윤석) 박사를 만난다. 그렇게 '택선'은 '이균' 박사와 함께 치료제를 찾는 여정을 시작한다.
강이관 감독의 <바이러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동화적 분위기를 유지하며 관객을 '착한 영화'의 세계로 초대한다. 그 자체는 신선한 시도다. 일반적으로 바이러스를 다루는 영화들이 암울하고 종말론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 영화는 감염이 사랑을 가져온다는 역발상을 시도했다. 2010년 출간된 이지민 작가의 소설 <청춘극한기>를 원작으로 하지만, 감독은 실존하는 기생충 '톡소플라즈마 곤디'에서 착안한 '톡소 바이러스'로 이름을 변경하고 등장인물들의 연령대를 높이는 등 나름의 변주를 시도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바이러스>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 7월부터 3개월간 촬영됐다. 그러나 제작사 '에이스메이커'의 경영난과 팬데믹 상황이 겹치며 6년이나 개봉이 미뤄졌다.(후반 작업을 통해 영화에선 팬데믹 상황이 대사로 등장한다) 결국, 배급사가 '바이포엠 스튜디오'로 변경되면서 극장 개봉의 기회를 얻은 것. 김윤석은 인터뷰에서 "영화에 나오는 보호복과 PCR 검사 등이 일상이 돼버릴 줄 상상도 못했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그 익숙함조차 영화 속 부자연스러운 감정선을 극복하게 해주지는 못한다.
<바이러스>의 가장 큰 문제는 감염되면 사랑에 빠진다는 재미있는 설정이 캐릭터 간의 실제 화학 반응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점이다. 영화의 후반부에 갑작스럽게 발전하는 '택선'과 '이균'의 로맨스는 어색하기 그지없다. 이는 연기의 문제가 아니다. 배두나와 김윤석은 모두 자신의 파트에서 굉장히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이지만,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내는 로맨스는 어딘가 억지스럽게 느껴진다.
바이러스 때문에 '택선'이 느끼는 감정인지, 정말 사랑인지 경계가 모호한 것은 의도된 설정이겠지만, 그 모호함은 두근거리는 설렘으로 이어지기보다는 그저 산만한 구성으로 남았다. 강이관 감독이 <바이러스>를 통해 "무미건조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마치 '톡소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처럼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마음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냈다고 했지만, 정작 영화는 그 진정성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우리는 실제로 '바이러스의 공포'를 경험했다. 그 시간 동안 많은 이들이 타인과의 접촉을 꺼리고 고립감을 느꼈다. 그런 경험 후에 보는 <바이러스>는 아이러니하게도 더 큰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잠재력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 결국, <바이러스>는 좋은 의도와 참신한 설정, 훌륭한 배우들을 갖추고도 그것을 조화롭게 엮어내지 못한 아쉬운 작품으로 남게 됐다. ★★★
2025/05/11 메가박스 이수
※ 영화 리뷰
- 제목 : <바이러스> (Virus, 2025)
- 개봉일 : 2025. 05. 07.
- 제작국 : 한국
- 러닝타임 : 98분
- 장르 : 드라마
-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 감독 : 강이관
- 출연 : 배두나, 김윤석, 장기하, 손석구, 문성근, 김희원 등
- 화면비율 : 2.39: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